유전자보다는 생활방식이 노화에 미치는 영향 커…스트레스 줄이고 비타민 B12 섭취해 대처해야
하룻밤 새 폭삭 늙는다는 게 정말 가능할까.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난 후 순식간에 머리가 하얗게 세는 증상을 가리켜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이라고 한다. 이는 프랑스의 마지막 왕비인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기 전날 밤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 데서 따온 이름이다. 당시 앙투아네트의 나이는 38세였다. 실제 이렇게 하룻밤 사이 백발이 되거나 폭삭 늙는 경우는 더러 있다. 그럼 이유는 뭘까. 최근 발표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급속한 속도로 진행되는 노화는 대개 생물학적인 요인에서 기인한다. 신체적, 정신적 노화를 가속시키는 요인들로는 충격적인 사건 외에도 비타민 B12 결핍, 수술, 스트레스 같은 것들이 있다.
노화의 요인(본질적으로는 세포의 점진적 손상)으로는 흔히 알려진 친숙한 것들이 있다. 노화 원인의 약 9.2%를 차지하는 흡연, 과음, 과체중, 운동 부족 등이다. 이 밖에도 미국 예일대 연구팀이 2019년 발표한 50세 이상 성인 23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실직, 자녀 사망 또는 말기암 진단과 같은 부정적인 삶의 사건 역시 9%를 차지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히 노화가 진행된다면 사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어떤 외부 요인으로 갑자기 노화가 빨리 진행될 때다. 이런 점에서 최근 ‘슬립 헬스’ 저널에 발표된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요컨대 아이를 출산하고 첫 6개월 동안 하루에 7시간 미만으로 수면을 취한 산모들의 경우, 7시간 이상 수면을 취한 산모들보다 생물학적으로 3~7세 더 늙었다는 사실이다.
23~45세 33명의 산모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 조사는 텔로미어(염색체의 끝부분에 있는 말단 염색체)의 길이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텔로미어는 생물학적 노화를 나타내는 염색체의 끝에서 발견되는 DNA 구조로, 염색체의 손상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출생 후 매년 나이를 먹으면서 짧아지고, 짧아진 텔로미어는 노화와 관련된 쇠퇴로 이어진다. 때로는 세포 사멸과 암세포의 발달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효과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연구 결과는 노화가 때로는 극적으로 빨리 진행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보통 과학자들은 유전자가 노화에 가장 중요한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국 유전학자이자 에든버러대학의 박사인 피터 조시는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그는 “유전자가 노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생활방식과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훨씬 더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40세 넘어 동창회에 나가보면 얼굴의 주름살, 체형, 탈모의 정도, 흰머리 등을 비교해보면 모두가 다른 속도로 늙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짧든 길든 기간에 상관없이 노화를 가속화시킬 수 있는 요인들과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대처 방안에 대한 조언이다.
#충격적인 사건
멜라닌 색소의 감소로 인해 흰머리가 늘어나는 것은 노화의 일반적인 징후다. 그러나 일부의 경우, 특히 쇼크를 받거나 극도로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하룻밤 새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세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이런 경우는 드물게 발생한다(그리고 사실 하룻밤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2020년 ‘네이처’에 발표된 쥐를 대상으로 한 미국 하버드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체의 자동 기능을 조절하는 신경계의 ‘투쟁 도피 반응’이 활성화된다. ‘투쟁 도피 반응’은 긴박한 상황에서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생리적 각성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이런 반응이 활성화 되면 멜라닌 색소의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모낭의 멜라노사이트 줄기세포에 영구적인 손상이 야기된다. 다시 말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경에 의해 방출되는 노르아드레날린이 멜라노사이트 줄기세포의 저장소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혀 머리가 하얗게 세는 것이다.
그럼 스트레스를 줄이면 이를 되돌릴 수 있을까. 최근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내과 및 외과 전문의들은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긴 하지만, 스트레스를 줄이면 그 과정이 역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편 젊은 사람들의 머리가 이른 나이에 하얗게 되는 것은 유전자 혹은 비타민 결핍 때문이라는 연구도 있었다. 에든버러대학 MRC 인간 유전학 연구팀이 ‘디벨로프먼트’ 저널에 게재한 2015년 연구에 따르면, 비타민 D3, B12, 구리가 결핍될 경우 머리가 하얗게 셀 수 있으며, 이런 증상은 보충제를 섭취할 경우 완화될 수 있다.
#수술
마취를 포함해 크고 작은 수술이 몸에 무리를 주어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영국 엑서터대학의 임상 정신의학 교수인 크리스 폭스는 “때로는 수술과 마취가 노화 과정을 가속화시키기도 하며, 간혹 뇌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폭스 교수는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술이나 마취를 받아도 장기적으로 인지력에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와 달리 영향을 받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일부 고령의 환자들은 가벼운 인지 장애를 겪거나, 심한 경우에는 치매 증상이 발현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 폭스 교수는 “치매는 뇌가 늙는다는 징후다.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수술이 뇌의 노화 속도를 가속화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폭스 교수는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을 경우, 마취의 잠재적 위험은 더 커진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집중 치료를 오래 받을수록 장기적으로는 인지력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당뇨나 만성 폐쇄성 폐질환을 앓고 있거나, 평소에는 위험물질이 뇌로 침투하지 못하게 격리시키는 역할을 하는 뇌혈관장벽(뇌와 혈관을 격리시키는 장벽)이 손상된 경우가 그렇다.
캘리포니아대학 의료진들은 최근 ‘미국의학협회저널’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이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몇 가지 예방법을 추천했다. 가령 여기에는 식단 조절과 우울증 및 알코올 중독 치료 등이 포함된다. 고령일수록 더 신경 써야 한다. 런던 왕립 자유병원 및 프린세스 그레이스 병원의 마취 전문의인 제레미 프라우트 박사는 “탈수를 방지하고 가능한 진정제 복용을 줄임으로써 인지 장애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직장 스트레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장시간 근무와 스트레스는 조기 노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2019년 '생물학저널’에 발표된 250명의 수련의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미국 미시간대학의 연구 결과 역시 그랬다. 병원에서 보낸 첫 해 동안 수련의들의 텔로미어는 학부생 그룹의 그것에 비해 노화가 여섯 배 더 빨리 진행됐다.
이 가운데 최장시간 근무한 수련의들의 경우 텔로미어의 수축이 가장 많이 진행됐다. 요컨대 의사들의 일주일 평균 근무시간인 64시간보다 16시간 더 많은 80시간을 근무한 의사들의 텔로미어가 가장 짧았다. 더욱 놀라운 점은 학부생들의 텔로미어는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급격한 체중 감소
사별, 이혼 또는 실직과 같은 스트레스를 받는 부정적인 사건들을 겪으면 급격하게 피부가 노화할 수 있다.
런던 클리닉의 성형외과 컨설턴트이자 연구원인 라지브 그로버는 40~45세 사이의 118명 여성을 9년 동안 추적한 결과 “보통 10년이 걸려 진행되는 피부 노화가 어떤 상황에서는 1년 만에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인생에서 겪는 충격적인 사건들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충격적인 사건은 노화 자체보다는 노화 속도를 결정하는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흥미롭게도 가장 노화가 빨리 시작되는 부위는 볼이었다.
그로버는 “단순히 말해서 우아하게 나이를 먹는 최선의 방법은 요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급작스런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단기간에 무리하게 살을 빼지 않는 게 좋다”라고 말했다.
#사별
폭스 교수는 “진료를 보다 보면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고 6개월에서 1년 후에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나는 환자들을 종종 보게 된다. 아마도 이는 염증이 몸에 미치는 영향 때문일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경우 스트레스로 인한 체내 염증 수치는 배우자가 세상을 떠난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높아지게 된다. 이로 인해 우울증이나 심장병과 같은 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지며, 노화 속도 또한 빨라진다.
이와 관련, 폭스 교수는 “사별을 한 사람들은 극심한 우울증을 겪는다. 이런 경우에는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치료를 받으면 우울증뿐만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조언했다.
사별과 관련된 또 다른 문제는 상심증후군이다. 상심증후군은 일시적인 심장 질환으로, 급성 스트레스 심근증 또는 가슴 통증과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타코츠보 증후군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도 남편 필립공이 세상을 떠났을 때 상심증후군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심한 감정적 또는 육체적 고통이 심장에 무리를 주고 염증을 일으키면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이 다량 분비되면서 발생하는 증상이다. 하지만 이 경우, 심장마비와 달리 동맥은 막히지 않는다.
상심증후군은 주로 폐경기 이후의 여성들에게서 나타난다. 영국 런던 세인트토마스병원과 브리지병원의 심장전문의인 선딥 파텔은 “이 증후군은 종종 24시간에서 48시간 전에 경험한 극심한 감정적 또는 육체적 고통에 의해 유발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제 치료한 환자 가운데는 아들이 전날 체포 후 구치소에 수감돼 충격에 빠진 나이든 여성이나 출산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은 젊은 여성 등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다만 이로 인해 목숨을 잃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상심에서 회복하는 데는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 그리고 치료를 위해서는 때로는 약물 치료와 심장 전문의의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파텔 박사는 “대부분의 경우에는 다시 회복되지만, 때로는 되돌릴 수 없이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아주 빨리 노화가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심장에 무리를 주는 것은 맞다”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비타민 B12 결핍
유제품, 계란, 붉은 고기에 많이 함유된 비타민 B12는 건강한 면역체계와 신경계 기능에 중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다. 특히 비타민 B12가 결핍될 경우 수개월 안에 노화와 관련된 인지 장애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특히 고령일수록 더욱 조심해야 한다. 영국 워윅셔에 있는 ‘H3 맨스 헬스 클리닉’의 제프 포스터 박사는 “노인들의 식단은 일반적으로 불균형이기 때문에 비타민 B12 결핍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혼자 살거나, 균형 잡힌 식사를 하지 않거나, 식사를 거르는 경우에 더욱 그렇다.
포스터 박사는 비타민 B12 결핍에 의한 기억력 감퇴는 노년기에 나타나는 인지 장애와 증상이 비슷하다고 말한다. 다만 다행인 점은 이런 경우의 인지 장애는 보충제나 B12 주사를 맞음으로써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다. 또한 비타민 B12가 풍부한 음식을 꾸준히 섭취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