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움츠린 집값…약효는 ‘잠잠’
▲ 정부의 5·1 부동산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반응은 썰렁하기만 하다. 중개업자들은 “매도건 매수건 문의조차 없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지난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U 공인 김 아무개 공인중개사는 시장 분위기를 한마디로 “썰렁하다”고 표현했다. 지난 1일 정부가 양도소득세 감면 기준에 2년 거주 의무를 폐지하는 내용의 부동산대책을 내놨지만 당장 거래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는 투였다. 이번 대책으로 층수 제한이 폐지되는 2종 일반주거지역 재건축 아파트 분위기도 비슷했다.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 인근 T 공인 김 아무개 사장은 “이달 들어 매수건 매도건 문의 전화조차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메이데이’(5월 1일) 부동산대책의 앞과 뒤를 살폈다.
올들어서만 벌써 네 번째 부동산대책이 나왔지만 시장은 조용하다. 지난 5월 1일 일요일 정부와 여당이 갑자기 ‘건설경기 연착륙 및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을 발표할 때 업계는 적잖게 당황했다. 지난 4월 27일 여당의 재·보궐선거 참패의 주요 원인이 부동산 정책의 실패라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부동산 활성화 대책에 대한 예상은 했지만 불과 나흘 만에 나올지는 대부분 예상하지 못했다.
대책에는 획기적인 것도 꽤 포함됐다. 양도세 면제 요건 완화가 가장 먼저 눈길을 끌었다. 사실 1가구 1주택 소유자들은 3년 이상 보유하면 양도세를 내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 2004년 이후 서울과 과천, 5대 신도시(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에서는 2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이 추가됐다. 당시 집값이 폭등한 이유가 투기 수요였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양도세 면제 요건에 실거주 조항을 포함시킨 것이다.
따라서 해당 지역의 2년 실거주 조건을 폐지한 것은 수요를 자극하는 데 꽤 효과를 볼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이들 지역은 집값이 일단 오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급등세를 타기 때문에 양도세 규제 완화가 효과를 볼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유앤알컨설팅 박상언 사장은 “실거주 요건이 사라졌다는 것은 지방에서 서울 및 수도권 주요 지역에 쉽게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와 부동산 펀드, 신탁회사를 주택의 새로운 수요 세력으로 지원한 점도 업계의 환영받았다. 정부는 이들이 서울 및 수도권 아파트로 임대사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종합부동산세 비과세, 법인세 추가과세 배제 등을 통해 세금을 깎아주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지방 미분양주택을 투자하는 한에서만 이 혜택을 줬으나 서울 수도권 미분양 아파트로 대상을 확대한 것이다.
또 이들 리츠 펀드 등 법인도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 법인은 아파트 분양 대상에서 애초에 제외했으나 앞으로는 5년간 임대한다는 조건만 지키면 새 민영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주택을 쉽게 지을 수 있도록 하는 대책도 해당 지역 시장을 들썩이게 할 호재라는 반응이다. 택지개발지구의 단독주택과 개발제한구역 해제 지역의 층수 규제를 완화하고, 평균 18층으로 제한된 2종 일반주거지역의 층수를 없애기로 한 데 따라 해당 지역이 들썩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층수 제한이 완화되면 사업성이 좋아진다. 용적률에 변화가 없더라도 고층으로 지을 수 있게 되면 보다 다양한 설계가 가능해진다. 택지개발지구 단독주택지는 가구 수 규제도 폐지해 사업성이 좋아질 전망이다. 부동산부테크연구소 김부성 소장은 “층수 제한 완화로 택지개발지구 단독주택 지역이나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2종 일반주거지역의 주택이 수혜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이번 대책에 대해 시장의 기대심리는 크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양도세 비과세 요건이 완화된 지역의 시세 9억 원 이하의 아파트는 모두 132만여 가구나 된다. 이들 아파트의 주민들은 거래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아파트값은 0.02% 떨어져 5주 연속 하락했다. 서울은 특히 평균 0.03% 하락했다. 이들 지역에서는 부동산대책 발표에도 관련 문의만 소폭 증가했을 뿐 매도자, 매수자 모두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지속적인 상승세를 타던 수도권 전셋값이 마침내 제자리걸음(변동률 0%)으로 돌아섰다. 지난달까지 학군, 이사 수요가 대부분 마무리되면서 전세시장이 안정세에 접어든 것이다. 투모컨설팅 강공석 사장은 “매매가 하락폭이 크지 않은 곳도 사실 거래량이 없어 하락 추세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뿐”이라며 “침체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분석했다.
사실 양도세는 집값이 올라야 내는 세금이다.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으면 양도세 완화 조치는 아무런 이점이 되지 못한다. 양도세 감면 혜택 조건에서 2년 거주 요건을 폐지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집값이 오를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생겨야 투자수요가 붙는다.
반면 지금처럼 침체 상황에서는 매물만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집값이 어느 정도 오른 곳에선 아직 양도차익이 난다면 2년 거주 요건을 채우지 못했더라도 당장 매물로 내놓을 수 있어서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매도 문의만 나오고 있다. 송파구 가락동 G 공인 이 아무개 사장은 “정부 대책이 주택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내놓은 것이어서 별다른 반응이 없다”면서도 “집을 내놓겠다는 사람들만 늘어나 매물이 쌓이고 있어 집값은 더 떨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층수 제한 폐지 효과도 좀 더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물론 대규모 단지의 경우 평균 층수를 높이면 건폐율(대지면적에서 건물바닥 면적이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 조경면적이나 공원을 많이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층수 제한이 풀린다고 해도 사업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용적률(대지면적에 대한 지상층 연면적 비율)은 그대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주변에 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사업장이나 중소 규모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의 경우 대부분 경관 보호구역이거나 일조·채광 등을 확보하기 위해 이미 지자체가 층수를 임의로 제한하고 있다. 층수규제 완화 효과를 볼 수 없는 지역이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다.
현도컨설팅 임달호 사장은 “2종 일반주거지역의 층수 제한 폐지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아직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이 급하게 5·1 부동산대책을 마련하긴 했지만 효과는 좀 더 기다려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