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 잡는 트윗질에 기업 이미지 ‘방긋’
베일에 싸여 있는 재벌가의 사생활은 늘 대중의 관심사다. 오너 일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 드라마 소재로 활용되고, 사소한 부분까지 모두 화제가 된다. 그런데 최근 들어 벽을 허물고 대중들과 자유롭게 교류하는 오너들이 대세가 되고 있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두산 박용만 회장을 시작으로 CEO(최고경영자)들의 트위터 열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수다를 떨고 취미를 공유한다. 이러한 로열패밀리들의 변화에 대중 반응 역시 뜨겁다. 젊은 세대들은 정용진 부회장을 ‘슈퍼 아저씨’, 박용만 회장을 ‘곰(두산베어스) 아저씨’라 부르며 친근하게 느낀다. 비즈니스의 세계에 벗어나 트위터상에서 ‘보통사람’으로 돌아간 CEO들의 생생한 모습을 엿봤다.
“어제 오전 비서에게 임원 몇몇 점심하자구 연락하랬더니 모두 교육 중이라길래 무슨 교육이냐 그랬더니 비서 왈 ‘성교육이랍니다’ 헐!!! 그 임원들 몇 살인데 그 나이에 무슨 성교육??? 다시 알아보더니 ‘성희롱 예방 교육’이었답니다. 아놔~.”
최근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의 트위터에 올라온 글이다. 이 글에서 엿볼 수 있듯 박 사장의 트위터는 프로필을 살펴보지 않으면 자칫 보통사람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격식에서 자유롭다. 회사 안에서 벌어진 에피소드와 개인적인 감상들이 온라인 신조어와 이모티콘으로 표현돼 올라온다.
트위터 내용은 업무적인 이야기보다 사적인 잡담이 주를 이룬다. 야구 이야기, 관광명소 이야기, 술 약속에 관한 이야기 등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것. 두산 베어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가 있었을 때 “오늘 너무 못 친다. ㅠㅠ 속터져!!”와 같은 글이 올라오거나 “출입기자가 출입처 응원은 안 하고 치사하삼!”과 같이 두산 베어스의 응원을 독촉하는 애교스러운(?) 글로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박용만 회장과 조카 박 사장의 대화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며칠 전엔 약속시간에 늦게 나오는 박 사장을 박 회장이 트위터를 활용해 공개적으로 혼쭐내기도 했다. 박 사장은 “여섯시 반까지잖아요!”라고 대꾸했지만 박 회장은 “여섯시까지잖아. 나 다섯시 오십분에 벌써 와 있잖아!”라고 핀잔한다. 때문에 젊은 세대들은 두산그룹 오너 일가를 두산 베어스 상징인 곰과 연관시켜 ‘곰 가족’이라든가 ‘곰 아저씨’ 같은 애칭으로 부른다. 과거 두산가, 하면 떠오르던 ‘형제의 난’이란 수식어는 낯설기만 하다.
박용만 회장은 재계에선 트위터 선두주자다. 박 회장은 ‘팔로어’(지속해서 메시지를 받아보는 사람) 10만 7541명에, 본인이 ‘팔로어’하는(메시지를 받아보는) 이만 해도 1313명이다. 트위터를 하는 다른 CEO들이 세 자릿수나 두 자릿수의 사람들을 팔로어하고 있는 것과 사뭇 다르다.
다양한 사람과 ‘맞팔’(서로 메시지를 교환하는 것)을 맺다보니 에피소드도 넘쳐난다. 박 회장의 경우 두산그룹 말단 사원들의 트위터에 기습(?)해 웃지 못 할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사원이 “회의 시간인데 졸려 죽겠다”고 글을 올리자 박 회장은 “임마, 넌 쫄병이니까 몰래 잠이라도 자지. 나는 회의실 들어가면 전원이 일제히 날 째려봐!”란 댓글을 달아 두산그룹 트위터리안들에게 일순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고.
살짝 비즈니스 에피소드를 언급하는 일도 있다. 박 회장은 트위터상에서 “오래 전 1조에 가까운 M&A의 마지막 네고(협상)를 하는데 상대가 제시한 금액을 물러 달랬다 마지막 60억을…. 이 말 안 되는 변덕에 딱히 내놓을 논리가 없길래 ‘We use a word Nag(낙) Jang(장) Bul(불) Ip(입).’ 결국 받아냈다!”고 올리기도 했다.
재벌가에 대한 팔로어들의 질문에도 스스럼없이 답한다. 한 팔로어가 ‘회장님, 어머니랑 아침 드라마 보다가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드라마에서 높은 사람이 비서한테 사람 누구 찾아와, 혹은 뒷조사해봐! 하면 다 찾아오는데 회장님 비서님도 다 찾아오나요?’라고 묻자 박 회장은 “푸학! 제 여비서는 착한 애 엄마인데 그런 걸 어케 합니까? 전혀 아니에요. 글쎄요. 그런 걸 부탁하면 인터넷 인물정보 프린트해서 갖다 줄 걸요”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박 회장의 야구 사랑도 트위터에 등장해 팬들의 공감을 산다. 박 회장은 “오늘 성경 공부하는 날인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하느님 뜻이 그러신 것 같아서 야구장서 (성경공부) 하기로 신부님께 건의를 했더니 그렇게 하자고 하신다. 만세!”란 글과 함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게임이 오시며 영광이 안타와 홈런과 도루에게,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란 야구 기도문을 창작해 올리기도 한다.
두산그룹 오너 일가가 트위터를 활용해 친근한 가족 이미지로 거듭나고 있다면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이마트 식품 홍보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다. 정 부회장의 트위터를 관찰하는 팔로어는 10만 7655명이고 정 부회장이 팔로하는 이는 929명이다. 이마트에서 출시하는 식품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고 개선사항을 듣는다. 또 신제품으로 출시할 만한 품목에 대한 반응도 엿본다.
그러다보니 트위터에 올라오는 것은 주로 음식 사진이다. 평일 오후 시간 커피숍에서 찍은 사진, 저녁 시간에 먹은 음식 사진과 감상을 올린다. 이에 대한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한 팔로어는 ‘보통사람이라면 꿈도 못 꿀 호사스런 생활이다’는 비난을 던지고, ‘애 엄마인 나는 이 시간에 헬스장은 꿈도 못 꾼다’는 날선 댓글까지 올라온다.
이에 대해 정 부회장은 피해가지 않고 모든 글에 답변을 다는 편이다. 오너가 직접 밝히는 입장이다 보니 화제가 되는 일도 잦다. 정 부회장이 저가 이마트 피자 판매를 비난하는 한 팔로어의 글에 “본인은 소비를 실질적으로 하시나요. 이념적으로 하시나요?”란 말로 답했다 논란을 빚기도 했다.
트위터상의 발언이 논란이 된 후에도 다양한 불만에 직접 답글을 달고 있다. 정 부회장은 “저 놀기만 하는 거 아니에요. 일도 해요”, “꿈 이야기 했다간 잔다고 달려들 기세, 저녁에 아침 이야기 했다간 지금 일어났냐고 달려들 기세”, “너무 공격적이세요 ㅠㅠ” 등 최대한 유연하게(?) 답하고 있다.
재치 있는 대응도 눈에 띄었다. 한 팔로어가 ‘이마트엔 없는 게 없다고 하는데 왜 남자친구는 안 파는가’라고 묻자 정 부회장은 “대량구매를 할 수 없는 품목이기 때문입니다”고 받아쳤다.
5월 10일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엔 헬스에 열심인 모습으로 대중의 공감을 얻고 있다. 근육이 언뜻 비치는 사진을 찍어 올리고, 맛있는 음식 앞에 결국 굴복했다는 등 다이어트의 힘겨움도 토로해 공감을 얻는다. 예비 신부인 한지희 씨와도 일찌감치 ‘맞팔’을 맺었다. 그러나 열애의 흔적은 트위터상에서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위의 사례들은 태어날 때부터 일찌감치 로열패밀리에 속했던 CEO들의 트윗 얘기다. 이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까지 공개하며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반면 비(非) 오너 CEO들의 경우 트위터 역시 업무의 연장선상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KT 표현명 사장은 후자다. 표 사장의 트위터는 4만 1153명이 팔로어하고 있고, 표 사장이 팔로어하고 있는 인원도 1181명에 달한다. 그러나 일상적인 대화 내용이 아닌 제품에 대한 설명과 홍보가 대부분이다. 주로 애플 관련 제품에 대한 문의가 줄을 잇고 무선인터넷 사용 가능 지역에 대한 피드백이 오고간다. 가까운 아이패드 판매지점과 연락처까지 표 사장이 즉각 응답하자 팔로어들이 놀랍단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표 사장의 경우 트위터 내용을 모두 관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트위터에서 “직접 트위터를 하긴 하지만 전략이나 정책적인 이슈가 아닌, 세부적인 사항은 올레 트위터 관리팀에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카드·캐피탈 정태영 사장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둘째사위로 오너 일가에 속하지만 역시 후자에 속하는 트위터리안이다. 팔로어 2만 5517명이 그를 주시하고 있고 그가 팔로어하는 사람은 129명이다. 그의 트위터에는 금융 관련 이슈보다 클래식 음악이나 여행에 대한 감상과 사진 등이 자주 업데이트된다.
정 사장은 “회사 업무에 있어서 자기 전에 다음주 일정과 아젠다(의제)를 대충 훑어본다.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일주일을 이주일처럼 일할 수 있다. 매일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 조절, 불필요한 약속 없애기, 할 일 리스트 업, 회의시간 단축을 잘 하면 두 배를 일할 수 있다” 등과 같이 CEO서의 마인드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다.
개인 트위터를 통해 세간에 잘못 알려진 내용에 대해 해명하는 CEO들도 있다. 드림위즈 이찬진 대표이사는 최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의 공적 연기금 주주권 행사 관련 인터뷰 내용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트위터에서 “기사에 보니 제가 ‘대기업과 사업하면 안 된다. 다 뺏어간다’라고 말했다는데 전 그런 기억이 없습니다. 곽 위원장님이 제가 강연한 이 행사장에 계셨던 것으로는 기억하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작은 비판일지라도 기업 이미지와 직결될 땐 신경 쓰는 모습도 보인다. 이찬진 대표는 드림위즈가 <조선일보>와 <매일경제>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했다는 점을 근거로 보수적인 IT업체가 아니냐는 인식이 퍼진 것에 대해 “저희를 미워하시던 분들에게 알려드립니다. 저희가 최근 <오마이뉴스> 앱도 개발했습니다. 이제 예뻐해 주시려나요? ㅠㅠ”라고 글을 올렸다.
최근엔 오프라인에까지 만남을 이어가는 사례도 눈에 띈다. 라이코스 임정욱 대표이사는 본사에 다과회를 차린 후 트위터를 통해 팔로어 ‘번개팅’을 제안해 주목받았다. 이찬진 대표 역시 패밀리레스토랑에서 팔로어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이처럼 소셜 미디어(Social Media)의 인기에 올라타 CEO가 직접 기업 이미지 마케팅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지만 재계를 대표하는 삼성 현대차 SK LG, 4대그룹 오너 일가의 흔적은 아직 찾아볼 수 없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