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인 없이 어린이 수영장 용도 변경해 ‘경고 처분’…육영재단 “임차사업자 간 갈등, 특혜 사실무근”
재단법인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육영재단)은 박정희 전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설립했다. 청소년 복지증진에 이바지하고 유아 보육 및 적당한 환경조성으로 심신 발육을 조장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재단이다. 육영재단은 서울시교육청 관리 아래 재단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수익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부지 안에 있는 어린이 수영장과 눈썰매장은 여름과 겨울을 번갈아가며 대목을 맞는 재단의 대표적인 수익원이다.
두 시설은 육영재단이 민간 업체에 임대를 주는 방식으로 운영해 왔다. 2020년 초까지 두 시설을 임대한 업체는 I 사였다. 임대 계약 기간 중 I 사는 자금난에 허덕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대비용을 미지급했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하게 돌았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I 사는 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한 관계자는 “I 사가 2019년 말쯤 경영난 타개책으로 들고 나온 카드가 반려견 수영장”이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I 사가 반려견 수영장 운영업자와 미팅을 주선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면서 “(처음엔) 육영재단 운영진이 어린이 시설을 반려견 시설로 전환하는 것에 대한 불가 입장을 통보했다”고 했다.
육영재단은 어린이 시설을 반려견 시설로 변환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판단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해프닝도 있었다. I 사가 육영재단과 체결한 시설 위탁경영 계약서를 제시하며 반려견 수영장 운영업체 D 사에 접근한 것이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I 사가 육영재단과 수영장 및 썰매장 시설물에 대한 대관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명시돼 있다. 이 문건 계약 일자는 2020년 2월 20일이다. 국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가 104명일 때다. 이 시점에 I 사는 육영재단과 체결한 대관 계약서를 근거로 D 사에 전전대(임대한 시설을 다른 사업자에게 다시 임대하는 행위) 계약을 시도한 셈이다. 임대료 차익을 노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I 사가 내민 계약서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육영재단이 2020년 4월 I 사와 임대 계약을 해지한 까닭이다. 이어 육영재단은 I 사를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반려견 수영장 운영 계획은 무산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펼쳐졌다. 돌연 육영재단 수영장에 국내 최대 규모 반려견 수영장이 들어섰다. 육영재단은 수영장 시설을 새로운 업체 K 사에 임대했다. K 사는 I 사가 기획했던 반려견 수영장 운영 계획을 행동으로 옮겼다. K 사는 임대한 시설을 반려견 수영장 업체 D 사에 다시 임대하는 이른바 ‘전전대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K 사가 D 사와 맺은 계약서엔 계약 일자가 적혀 있지 않았다. 정확히 어느 시점에 계약이 체결됐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복수 관계자 증언에 따르면 2020년 4월을 전후로 전전대 계약이 맺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 제보자에 따르면 K 사가 전전대 계약을 체결하면서 얻은 임대료 차익 규모는 2020년 2억 원, 2021년 1억 5000만 원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대목은 I 사가 못했던 ‘반려견 수영장 사업’을 K 사는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한 재단법인 관계자는 “K 사가 경쟁입찰이나 수의계약 등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육영재단에 무혈입성했다”면서 “내부 관계자 전언에 따르면 실무선이 아닌 관리자 라인에서 K 사를 밀어 넣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K 사는 육영재단 운영진 비호 아래 땅 짚고 헤엄치는 방식으로 재임대 차익을 내는 ‘승률 100% 사업’을 따낸 격이 됐다”고 지적했다.
제보자는 9월 28일 기자와 만나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인 2019년 말부터 육영재단 내부로부터 ‘반려견 관련 사업이 돈이 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흘러 나왔다”고 했다. 그는 “육영재단이 I 사의 경영난 해결책 아이디어를 그대로 차용해 새로운 사업자 K 사를 통해 반려견 수영장 도입을 완료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 육영재단 운영을 총괄하는 건 조수연 이사장이 아니라, 박지만 EG 회장의 육사 37기 동기인 이진호 상임이사다. 이 상임이사는 육군 장교로 근무하다 ‘마지막 유신 공무원’으로 발탁돼 공무원이 됐다. 그 뒤론 안양시 부시장을 지냈고 박 씨 일가 암투로 임시 이사제에 돌입한 육영재단 상임이사로 임명됐다. 이 상임이사는 현재 명목상 존재하는 이사장을 대신해 육영재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육영재단이 한 차례 거부했던 반려견 수영장 운영 사업이 뜬금없이 ‘OK 사인’을 받은 상황이 됐다.”
제보자는 “K 사 대표이사는 이진호 육영재단 상임이사가 안양시 부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인연을 맺었던 것으로 전해진다”면서 “K 사는 정상적인 입찰 절차를 밟지 않고 육영재단 시설 임대 사업에 입성했다. 그 뒤론 이전 사업자인 I 사가 퇴짜 맞은 계획을 그대로 차용해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는지는 공식적으로 확인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진호 육영재단 상임이사는 “재단 관계자로부터 공식적인 답변을 받길 바란다”고 했다. 이후 연락이 닿은 육영재단 고위 관계자는 “기존 I 사가 임대료가 2억 원가량 연체된 상황에서 새로운 사업체를 찾던 중 수의계약으로 K 사를 선정했다”면서 “K 사가 이진호 상임이사가 고위 공무원으로 재직 시절 인연이 있었던 회사라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재단이 2019년 말부터 반려견 수영장을 계획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면서 “이 상임이사는 취임 이후 수익이 많이 나던 예식장 사업도 포기할 정도로 원칙주의자”라고 반박했다. 그는 “반려견 수영장과 관련한 일련의 사건은 임차 사업자들 사이의 갈등이며, 재단과는 무관하다”면서 “재단이 법률 자문을 받은 결과 K 사가 D 사와 체결한 계약은 위탁 계약이지 전전대가 아니다”라고 했다.
제보자는 서울시교육청이 회신한 민원 답변서도 보여줬다. 답변서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은 “육영재단 정관에 애견 수영장이 수익사업으로 등재된 바 없다”면서 “서울시교육청에서 애견 수영장을 수익사업으로 승인한 바 없다”고 했다. 반려견 수영장 자체가 무허가로 운영되고 있었던 셈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육영재단에서는 법인 설립목적 및 본래 시설 용도에 맞지 않게 수영장을 애견 수영장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임차인이 육영재단 동의 없이 임대차 계약서 상 전대 금지 규정을 위반해 운영한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법인 이사장에 ‘경고’ 처분하고 수영장 임대차 계약 내용에 따라 계약 해지 등 적절한 조치를 하도록 처분했다”고 했다.
이뿐 아니다. 기존 반려견 수영장 아이디어를 최초 제공하고, 전전대 수익을 노렸던 I 사의 경우 ‘육영재단으로부터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고 서울시교육청은 부연했다.
제보자는 “서울시교육청이 정관에 어긋나게 사업 변경을 감행한 육영재단에 대해 ‘이사장 경고’ 조치만 취했다. 내부 사정을 안다면, 합리적이지 않은 조치”라면서 “이사장이 아니라 상임이사가 관리책임을 지고 있는 건에 대해 이사장 경고 조치만 따른다면 사건의 본질을 짚지 못한 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육영수 여사가 어린이를 위해 설립한 재단법인 내부에서 사익 추구를 위한 암투가 난무하는 상황”이라면서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육영재단 측은 “수영장은 수익사업으로 승인이 났고, 반려견 수영장은 (승인을 받은 것이) 아니긴 하다”면서 “반려견 수영장은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원래 수영장으로 운영을 하려다가 수영장 내 코로나19 전파를 우려해 한시적으로 2021년까지만 애견 수영장을 운영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부터 반려견 수영장 사업이 계획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육영재단 측은 “수영장은 재단이 (업체에) 임대를 준 곳이라 임대를 준 업체에서 어떻게 계획을 짜서 세부적으로 진행을 했는지 일정을 상세하게 아는 것은 아니”라면서 “애견 수영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이유는 코로나19 때문이 맞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