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마피아 게임’으로 오프라인 인맥 쌓기 창구…저작권 침해·자극적 내용 등 부작용도
스크립트 킬은 2010년대 초부터 유럽에서 시작된 게임이다. 참가자 중 한 명은 ‘살인자’로 지정된다. 다른 사람들은 토론, 추리, 단서 등을 종합해 살인자를 찾아내야 한다. 한국의 일명 ‘마피아 게임’과 흡사하다. 2014년에 처음 중국으로 들어왔고, 2016년 예능 프로그램 ‘스타명탐정’이 선보이면서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온라인과 모바일 앱을 기반으로 게임이 이뤄졌다. 그러다가 2018년부턴 오프라인 점포들이 빠르게 생겼다. 18~40세 사이의 젊은 층이 주요 소비층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온라인 게임이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직접 만나 즐기는 스크립트 킬은 여기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스크립트 킬의 온라인판 역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온-오프라인 모두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2019년 12월 스크립트 킬 오프라인 점포는 대략 1만 2000개로 파악됐다. 2019년 1월 대비 9600개가 늘어난 규모다. 2021년 4월 스크립트 킬 점포는 4만 5000개까지 늘었다. 단지 수만 늘어나는 게 아니고, 참가자가 늘어남에 따라 서비스 품질과 시설 업그레이드 등도 뒤따랐다.
아이미디어컨설팅이 발표한 ‘2021년 스크립트 킬 업계 발전’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시장 규모는 7% 증가했고, 금액으로는 117억 4000만 위안(2조 1646억 원가량)으로 집계됐다. 올해는 170억 2000만 위안(3조 1380억 원가량)으로 전망된다. 2021년 상반기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오프라인 엔터테인먼트 순위에서도 스크립트 킬은 영화(38.3%), 스포츠 피트니스(36.4%)에 이어 36.1%로 3위를 차지했다.
또 다른 보고서에 따르면 ‘스크립트 킬’ 이용자의 70%가 30세 미만이다. 또한 이용자의 40%가 매주 1번 이상 게임을 한다고 나타났다. 그야말로 ‘광풍’에 가까운 현상이다. 스크립트 게임을 자주 한다는 20대 여성은 “각본에 미리 정해진 것이긴 하지만, 적어도 그 게임 안에선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산다”고 했다. 한 블로거도 이렇게 썼다.
“일단 게임 자체가 재미있다. 살인자를 찾아내는 게 그리 쉽진 않지만 흥미로운 과정이다.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고 여럿이서 협조해야 쉽게 풀린다. 스트레스가 해소될 뿐 아니라 인맥 확대에도 좋다. 스크립트 킬을 하다가 친구가 되거나 연인이 되기도 하는 사례가 많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시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창구가 바로 스크립트 킬이다.”
베이징대학교 치우위쟈 교수는 “어떻게 보면 스크립트 킬은 ‘골치가 아픈’ 게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주 하고 있다. 도대체 그 매력이 무엇일지 고민해봤다”면서 “이 게임은 마치 어른들의 소꿉놀이와 비슷해 보인다. 캐릭터에 몰두해 사건을 추리하고, 살인자를 찾으면서 쾌감을 느끼고 있다. 신경생물학적으로 봤을 때 사람을 끌어당기는 요소들이 무궁무진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오프라인 점포에서 접할 수 있는 스크립트 킬 게임은 단순히 살인자를 찾는 수준이 아니다.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음식, 장소들이 실제 게임에 등장한다. 스토리 역시 보다 세밀해졌다. 웬만한 드라마나 영화보다 스토리 라인이 좋다고 평가받는 스크립트 킬도 많다. 참가자들은 시나리오를 고르고 골라 게임에 참가한다. 게이머들이 감동을 받거나 감정이 복받쳐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도 종종 목격된다.
참가자 중 상당수는 게임 후에도 인연을 이어간다고 한다. 스크립트 킬 동호회에 속해 있다는 30대 남성은 “게임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우리들은 게임을 하는 몇 시간 동안은 그야말로 한 팀이 돼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낸다”면서 “일상으로 돌아와도 그런 관계를 계속 유지한다. 서로의 호칭은 게임 캐릭터가 된다. 일부 동호회는 직접 시나리오를 만들어 게임에 적용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참가자가 늘어나면서 이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저작권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수요가 단기간에 크게 늘었지만 정작 시나리오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스크립트 킬 전문 작가인 순 씨는 “어렵게 대본을 써서 기획사에 보냈는데 별다른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후 내가 썼던 시나리오가 오프라인 영업장에서 쓰이고 있었다”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미 유명세를 탄 시나리오를 공공연하게 표절하거나 불법 복제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온라인상에는 기존 작품을 표절해 만든 시나리오들이 싼값에 돌아다닌다. 한 전문가는 “아직 시장이 초기 단계다. 제대로 된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다.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면서 “시나리오 작가는 반드시 정규 배급사를 선택하고, 저작권 등록을 해야 한다. 텍스트를 법률로 보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게임이 지나치게 자극적인 내용 위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살인자를 찾는 게임이다 보니 ‘공포’가 밑바탕에 깔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갈수록 도가 넘는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한 참가자는 자신의 개인 SNS에 게임에 참가했다가 아직도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 참가자는 다른 7명의 게이머들과 함께 원탁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불은 꺼져 있었고, 앞에는 촛불만 켜져 있었다. 그때 갑자기 테이블 밑에서 누군가가 다리를 움켜쥐었다. 그는 너무 놀라서 기절할 뻔했다고 전했다. 도저히 게임을 마칠 자신이 없어 중간에 나왔고, 운전을 해서 오는 내내 놀란 가슴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혼자 방 안에 있기가 무섭다. 누군가를 갑자기 놀라게 하는 게 살인자를 찾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스크립트 킬은 추리보단, 보다 더 자극적이고 잔인한 쪽으로 변질됐다”고 했다. 사용자들 중 일부는 “갑자기 불을 끄는 식으로 공포를 조장하는 것 역시 게임의 일환”이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연령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스크립트 킬의 무분별한 폭력과 공포는 지양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오프라인 게임에서 참가자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거나 폭력적인 언사를 들어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배경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