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불똥’ 선긋기 동시에 이재명 캠프 향한 경고…유력 차기주자와 정면 충돌 가능성은 낮아
민주당 경선 2차 슈퍼위크(10월 3일)를 앞두고 있던 10월 2일 여권 복수 관계자들은 ‘청와대가 대장동 의혹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표명할 것’이란 소식을 전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고, 이 지사를 향한 비판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이 돌았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접촉했던 당청 인사들은 “경선이 한창인데 청와대가 그런 입장을 내놓을 리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사흘 뒤인 10월 5일 쏟아지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지켰던 청와대가 입을 열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엄중하게 생각하고,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놀라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앞서의 당청 인사 답변처럼 청와대가 여권 유력 대선 후보 이름이 거론되는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정적이란 분위기가 우세했다고 한다.
청와대와 이재명 캠프는 세간의 억측에 대해 선을 긋고 나섰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말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고 했다. 청와대 정무 라인에서는 민주당 측에 국민들 관심사가 워낙 높아 더 이상 모른 체하기가 어려워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명 캠프 측 민형배 의원도 10월 6일 CBS 라디오 ‘한판승부’에 나와 “큰 사건이 벌어지면 늘 쓰는 그런 표현이어서 특별한 의미가 담긴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하지만 파장은 컸다. 대선 경선 막바지라는 민감한 시기에 이재명 지사와 관련된 민감한 내용이 청와대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의중이 담겨있다고 봐야한다는 견해에 설득력이 실리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고위직 출신의 한 전직 국회의원은 “이 정도 건이면 대통령이 직접 문구를 고민했다고 봐야한다”고 잘라 말했다. 문 대통령이 대선 소용돌이에 빠질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는 의미다.
친문 핵심 모임인 ‘민주주의연구원 4.0’ 소속 한 초선 의원은 “문 대통령 심경에 변화가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는 “문 대통령에게 부동산은 뼈아픈 분야다. 자신의 뒤를 이을 수 있는 대선 후보가 부동산으로 공격받고 있는 부분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제2의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로 번지면 청와대가 힘들어진다”면서 “대장동 의혹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긋겠다는 의지로 읽힌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캠프를 향한 경고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민주주의연구원 4.0’ 소속 재선 의원은 “청와대 ‘엄중 발언’은 원론적인 게 아니다. 문 대통령 스타일상 굉장히 센 수위로 보는 게 맞다”면서 “(청와대는) 이 지사가 ‘현 정부에서의 부동산 폭등으로 화천대유 이익이 커졌다’는 식으로 말하는 등 본인이 살기 위해 자꾸 문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공격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걸 곱지 않게 보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재명 캠프 내부와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청와대를 향한 강경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캠프 한 의원은 10월 8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과 이 지사는 연일 국민의힘 게이트를 공격하고 있다. 도대체 청와대는 무엇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말인가. 주어가 빠졌지만 이 지사만 콕 집어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국민의힘 정치공세에 청와대가 지원사격을 한 모양새가 됐다. 이래서야 대선을 앞두고 당청 ‘원팀’이 가능하겠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 지사 지지자들은 청와대가 이낙연 전 대표로의 후보 교체를 그리고 있다는 ‘음모론’을 주장한다. 청와대 ‘엄중’ 발언이 평소 이 표현을 자주 쓰던 이 전 대표를 염두에 두고 나왔다는 얘기를 하면서 말이다. 이재명 캠프 또 다른 의원은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이번 청와대 메시지를 검찰이 잘 못 이해할 경우다. 이 지사가 검찰 타깃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부 친문이 주장하는 ‘후보 교체론’도 여기서부터 시작된다”면서 “그렇게 되면 청와대와 이 지사 관계는 되돌리기 힘들어진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청와대 입장 발표 후 이낙연 캠프 공세도 한층 거세졌다. 이낙연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인 설훈 의원은 10월 7일 KBS 라디오 ‘최강시사’에 출연해 “(이재명) 후보가 구속되는 상황도 가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설 의원은 “(대장동 의혹에 대해) 결정적인 제보가 있다”고도 했다. 이낙연 캠프 관계자는 “청와대 엄중 발언은 본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패배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정가에서는 청와대와 이 지사 측이 정면으로 충돌하진 않을 것으로 점친다. 후보 교체라는 경우의 수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임기 말임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40%안팎을 지키고 있는 현직 대통령과 유력한 차기 주자가 서로에게 총구를 들이댈 가능성은 낮다는 이유다. 미래권력에 힘이 쏠리는 게 통상의 ‘여의도 문법’이지만 이 지사가 ‘콘크리트 지지층’을 구축한 문 대통령과 대립각을 지고선 대권을 쥐기 어려울 것이란 게 정가의 우세한 관측이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대장동 메시지’를 살펴보면 청와대 의도의 윤곽이 그려진다. 청와대 정무 라인 출신 민주당 관계자는 “대선 정국에서도 문 대통령이 국정 장악 그립을 놓지 않겠다는 속내가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이 지사가 대장동 의혹에도 불구하고 경선 압승을 거두자 여권 지형이 급속도로 이재명 중심으로 재편됐다”면서 “경선 마지막 관문인 3차 슈퍼위크(10월 10일)를 앞두고 문 대통령이 제대로 존재감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친문 인사들 머릿속엔 ‘이재명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따라다닌다. 그들이 정권 초부터 ‘포스트 문재인’을 준비했던 것이나 ‘이재명 대안’을 찾으려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문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퇴임 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청와대가 지금 대장동 의혹을 손 놓고 있겠느냐. 아마 그 어떤 곳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핵심 친문들은 그것을 ‘보험용’으로 활용 것이다. 이 지사에게 전하고자 했던 진짜 메시지는 아마도 이게 핵심일 것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