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난·사생활 침해·쓰레기 투기 등 주민들 피해 호소…“지자체 가이드라인 마련 촉구”
특히 주민들은 관광객들의 성숙한 관광 매너와 이에 대한 지자체의 가이드라인 마련을 요구하고 있지만 매번 작품만 바뀌었을 뿐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관광객의 매너 문제로 갈등이 불거진 곳은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촬영지다. 경북 포항의 한 해변 마을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힐링 스토리에 국내는 물론 해외 시청자들의 눈길까지 사로잡았던 이 작품의 무대는 포항시 북구 청하면 청하시장과 남구 구룡포읍 석병1리, 양포항, 월포해수욕장 등이다. 이 가운데 혜진(신민아 분), 두식(김선호 분) 등 주요 캐릭터의 집이 위치한 구룡포 지역이 특히 문제가 됐다. 실제 주민이 거주 중인 집 안까지 관광객이 드나들면서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는 것.
한 지역 주민은 “원래 작은 동네였는데 드라마 촬영지로 입소문이 나면서 촬영 일정이 잡혀 있다고 하면 맘카페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먼저 공유되고, 마을 주민이 아닌 사람들이 몰려오는 일이 잦았다”라며 “코로나19 우려도 그렇지만 다수의 방문객들이 멋대로 집을 구경하거나 허락을 받지 않고 대문 안까지 들어와서 사진을 찍는 경우가 있어 주민들이 곤란을 겪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처럼 관광객과 주민 사이의 마찰이 잦아지면서 제작진이 중간에서 가옥 출입과 방문 통제에 나섰지만 오히려 ‘제작진의 갑질’이라며 비난을 받아야 했다.
결국 10월 5일 tvN이 공식 SNS 계정에 “극 중 혜진 집, 두식 집, 감리(김영옥 분) 집, 초희(홍지희 분) 집은 저희가 촬영기간 동안 사유지를 임대해서 촬영한 곳이며 현재 주인 분들께서 거주하고 계신 공간”이라며 “좋은 뜻으로 드라마에 힘을 보태주셨는데 방문객들로 인한 일상생활의 피해를 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촬영지 방문 시 당해 가옥들 출입은 자제를 부탁드린다”며 “드라마의 여운을 느끼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포항시의 배려로 청하시장의 오징어 동상과 사방 기념공원의 배 등은 촬영 후에도 유지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해당 촬영 장소는 종영을 앞두고 있는 현재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평일에 방문해도 각 장소마다 관광객들의 긴 줄이 늘어서 있을 정도로 인기다. 외지인들의 연이은 방문에 숙박시설이나 푸드트럭 같은 간이음식점들은 재미를 보고 있지만 주민들은 교통난과 사생활 침해, 쓰레기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고 있지 않다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다. 관광 명소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지자체 차원에서 관광객들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주민들의 이야기다.
이처럼 인기 드라마의 촬영지가 관광 명소로 변하면서 기존에 거주하던 주민들의 피해로 이어지는 일은 늘 있어왔다. 2017년 tvN 드라마 ‘도깨비’의 주요 촬영지와 주변 상점을 연계한 관광 프로모션 ‘인천 도깨비 여행’의 경우도 관광지 지정 후 주민들의 프라이버시를 배려하지 않는 관광객들로 크고 작은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관광객들이 늘긴 했으나 사진만 찍고 떠나는 일이 잦아 실매출로 연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기존 손님들이 관광객들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 일부 주민들의 호소도 이어졌다.
또 주요 촬영지 인근에 실제 거주 중인 주민들도 소음과 주차 문제, 사생활 보호 문제 등을 지적하며 시 차원의 대응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같은 해 KBS 드라마 ‘쌈, 마이웨이’의 촬영지였던 부산시 남구 문현동의 빌라도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비슷한 일을 겪었다. 주민들이 버젓이 생활하는 공간에 관광객들이 오가면서 일부 주민들은 관광객들에게 사생활을 보호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공지를 직접 대문 앞에 붙이기도 했다.
드라마 촬영지와는 다른 결이지만, JTBC 예능 ‘효리네 민박’이나 tvN ‘삼시세끼’ 등도 프로그램 방영부터 종영 이후까지 관광객들로 인한 극심한 사생활 침해 문제가 발생했었다. 이효리 부부의 경우는 아예 제주도 집까지 찾아와 초인종을 누르는 관광객들로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결국 JTBC가 콘텐츠 브랜드 이미지 관리 및 출연자 보호 차원에서 이효리 이상순 부부와 합의 하에 부지를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국은행 제주본부는 '효리네 민박' 효과로 제주도 내 내국인 관광객이 최대 100만 명 가까이 늘었다고 분석했지만 그만큼 출연진은 피해를 본 셈이다.
이처럼 해마다 인기 콘텐츠가 생산되면서 그 인기에 편승해 관광상품을 개발하려는 지자체와 피해를 우려하는 주민 사이의 동상이몽이 반복되고 있다. 앞서 유사한 사례로 피해를 봤던 지역 주민들의 가장 큰 불만은 지자체가 촬영지의 관광상품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장기적인 대책 마련 없이 단발성으로 강행하고 있고, 이로 인한 손해를 주민들에게 떠안기는 것을 당연한 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 드라마 촬영지 거주민은 “드라마의 성공으로 촬영지가 관광코스로 각광 받는다고 해도 해당 지역에 토지를 가지고 있거나 장사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 주민들이 혜택을 보는 일은 거의 없다”며 “드라마 후광은 길어봐야 3년 안에 끝나기 때문에 그 안에 성과를 내고 싶은 지자체가 주민들에게 인내만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매번 반복되는 문제에 대해 드라마 제작업계도 늘 고민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최소한 촬영 진행 중인 기간 동안만이라도 최대한 주민들의 보호를 위해 애 쓰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 사용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지자체와 이야기를 마쳐도 그 지역 주민들과 별도로 개별 동의를 얻는 등 제작진이 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책임을 다 하고 있다”며 “주민들이 최대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방문객들의 좀 더 성숙한 관광 매너와 지자체 차원의 구체적인 관광 가이드라인 같은 것이 곁들여진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