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음지’ 나와야 ‘양지’로 간다
▲ 지난 8일 ‘라미드 HM’ 사업설명회 자리에 참석한 썬앤문그룹 문병욱 회장. | ||
지난해 10월 서울고법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지 5개월 만에 스캔들의 주인공이 아니라 썬앤문의 자회사인 호텔 매니지먼트사 ‘라미드HM’의 사업설명회 자리에 나타난 것. 당초 문 회장이 직접 설명회에 참가해 질의에 응답하겠다고 밝힌 것과 달리 문 회장은 처음 인사말을 한 뒤 사업설명회 도중 사라졌다.
그동안 썬앤문은 자본금 5백억원대의 중소기업으로서는 지나친 세간의 관심을 받아왔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인 문 회장의 대선 불법 정치자금 제공·감세청탁·횡령 혐의 때문이었다.
호텔업계에서 잔뼈가 굵어온 문 회장은 대선자금 폭풍 이후로 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이 꽤나 부담스러웠다는 후문이다. 때문에 새로운 사업을 알리는 동시에 그간의 부정적인 시각을 벗기 위해 공식적인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라미드HM은 최초의 한국형 호텔 매니지먼트 업체를 표방하고 있다. 호텔 매니지먼트 사업은 수익성이 악화된 호텔의 경영 컨설팅, 해외 브랜드와의 제휴를 원할 경우 이를 연결해주는 매니지먼트,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는 직접 투자를 하게 된다.
특히 초특급 호텔에 비해 인적, 물적으로 취약한 특2급 호텔 등 비즈니스 호텔을 주력 고객으로 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이런 중급호텔 체인은 호텔신라 등 국내 특급호텔에서도 사업검토를 하기는 했지만 이를 실행에 옮겨 수익을 낸 것은 썬앤문 계열의 호텔 체인이 거의 처음이다.
라미드HM의 신상균 사장은 “비즈니스급 호텔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시설이나 서비스가 초특급 수준에 도달하면서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 가격경쟁력이 충분한 데도 매니지먼트의 부재로 고전하고 있다”며 “인사관리·마케팅 등 경영전반에 걸친 썬앤문의 매니지먼트가 가세할 경우 단기간내 경영을 정상화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처럼 한국에 처음 도입되는 호텔 매니지먼트 사업에 대해 주변에서는 의구심을 보내기도 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썬앤문이 갖고 있는 경영노하우가 무엇인지를 밝히라는 것이다. 또 그간 썬앤문이 호텔을 인수합병할 때마다 잡음이 나왔던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이에 대해 썬앤문측은 호텔 매니지먼트 사업에 대한 노하우를, 그동안 쌓아온 ‘문병욱식 경영’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 회장은 현대건설을 거친 뒤 여관업과 소규모 호텔업을 하다 91년 빅토리아 호텔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문경영인에게 전권을 위임했는데 적자가 계속 나자 문 회장이 직접 경영에 나섰다고 한다. 그는 우선 빅토리아 호텔 나이트클럽을 키우는 일에 주력했다. 연예인을 대거 출연시키고 스포츠신문에 돌출광고를 내면서 점차 나이트클럽이 강북의 명소로 떠오를 정도로 유명해졌다. 덩달아 객실 매출도 오르면서 빅토리아 호텔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빅토리아 호텔을 통해 호텔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된 문 회장은 이후 호텔 인수합병을 통해 호텔업계의 중견 경영인 반열에 올라섰다. IMF 시기 호텔 매물이 많이 쏟아지자 이천 미란다호텔을 경매로 낙찰받은 것이 그 시초. 미란다는 리노베이션과 구조조정을 통해 영업이익 흑자로 돌아섰다.
이 과정에서 문 회장은 일본의 호텔경영기법을 많이 적용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같은 규모의 호텔이 한국 호텔에 비해 절반의 인력으로도 운영이 되는 것을 본 뒤, 직원들을 멀티플레이어로 교육시켜 인력조정을 감행했다.
그러나 높은 노동강도 때문에 직원들이 불만의 소리를 내기도 했고, 호텔 인수과정에서 기존 직원들과 잡음을 빚기도 했다.
호텔 내 식당 등 부대시설이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직영이 아닌 임대로 전환해 경쟁력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뉴월드호텔은 라마다서울로 이름이 바뀌기 전 안마시술소로 ‘유명’했었다. 하지만 라마다 체인에 가입한 뒤에는 유명 나이트클럽인 돈텔마마를 입주시켜 호텔 분위기도 일신하고 유명세도 유지하고 있다.
미란다 호텔의 경우 온천뿐만 아니라 여름에는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워터파크를 만들어 비수기를 없앤 것처럼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처럼 문 회장은 이천미란다호텔, 송도비치호텔, 라마다서울을 인수해 경영을 정상화시키면서 호텔경영에 대해 전문가가 되었다.
최근 불황으로 중저가 호텔 매물이 많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호텔을 인수해달라는 요청이 문 회장에게 올 정도다. 또 개인적으로도 문 회장에게 호텔경영에 대한 자문을 구하러 오는 사람도 많아지자 ‘차라리 컨설팅 회사를 차리는 것이 어떠냐’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면서 호텔 매니지먼트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호텔 매니지먼트는 인력 중심의 회사이기 때문에 자본금도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 썬앤문의 설명이다. 항간에 ‘무슨 자금으로 사업을 하느냐’는 의구심이 쏟아지자 썬앤문쪽에선 매니지먼트는 자본보다는 인력이 핵심인 직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다른 외국 호텔업계에 20년 가까이 일했던 인재들이 많기 때문에 경쟁력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라미드HM은 서울, 경기, 부산, 개성공단 등 15개 업체와 물밑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중국의 두 업체와도 곧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후 5년 내 국내외 1백 개의 호텔과 제휴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썬앤문측의 주장대로 문 회장의 독특한 경영 노하우가 해외에서 인정을 받을지는 두고봐야 알 것이다. 한국의 기업풍토와 해외의 기업풍토는 다르기 때문이다. 문 회장의 경영기법이 성공을 하게 된다면, 문 회장은 인맥을 동원한 로비로 성공했다는 불명예를 벗고 세계 호텔시장의 큰손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