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 단위 M&A로 하만·ZKW 품었지만 코로나19·반도체 대란에 내연차 비중 축소 악재…삼성 “장기적 관점 진행”
#인수합병 통해 전장 사업 확대
삼성전자는 최근 몇 년간 자동차 전장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5년 전장사업팀을 신설했고, 2016년에는 미국 전장 업체 하만을 80억 달러(약 9조 2000억 원)에 인수했다. 이어 2017년, 삼성전자는 3억 달러(약 3500억 원) 규모의 ‘오토모티브 혁신 펀드’를 조성하면서 전장 사업 확대에 나섰다. 펀드의 첫 투자처는 오스트리아 자율주행차 기업 TT테크로 7500만 유로(약 1000억 원)를 투입했다.
삼성전자의 추가 M&A 가능성도 거론된다. 서병훈 삼성전자 부사장은 지난 8월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핵심 역량을 보유한 기업에 대한 전략적인 M&A는 필요하다고 본다”며 “전장 등 여러 분야의 기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LG그룹도 전장 사업에 관심이 많다. LG그룹은 2013년 LG전자에 VS(전장) 사업부를 신설했고, 2018년 8월에는 오스트리아 차량용 조명 부품 회사 ZKW를 인수했다. 인수가는 1조 4400억 원으로 LG그룹 창사 이래 최대 규모였다.
LG전자는 지난 7월 글로벌 3위 자동차 부품 업체 마그나인터내셔널과 전기차 파워트레인 분야 합작법인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을 설립했다. 이 밖에도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회사 알루토와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 알폰소, 이스라엘 자동차 보안 업체 사이벨럼 등을 연이어 인수했다.
#이렇다 할 실적 못 낸 까닭
하지만 삼성과 LG의 전장 사업은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하만을 인수하기 전인 2016년, 하만의 영업이익은 6800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하만의 2017년 영업이익은 574억 원으로 감소했다. 2018년 1617억 원, 2019년 3223억 원, 2020년 555억 원을 각각 기록하는 등 2016년에 비해 실적이 좋지 않다.
LG전자도 비슷한 처지다. LG전자 VS사업부는 2015년 실적을 발표한 이래 올해 3분기까지 2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 누적 영업손실은 8600억 원에 달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전장 사업 실적 악화로 영업권 손상차손까지 발생하면서 재무부담도 가중됐다. 영업권은 M&A 당시 순자산보다 더 준 웃돈을 뜻한다. 영업 노하우, 브랜드 인지도 등 무형자산에 대한 일종의 권리금 개념이다.
국제회계기준(IFRS)에서는 영업권이 발생할 경우 매년 손상검사를 통해 현금창출단위별 회수가능액이 장부가액보다 적으면 그만큼 비용으로 처리한다. 삼성전자는 하만을 인수할 당시 하만의 영업권을 4조 5000억 원으로 책정했고, LG전자는 ZKW의 영업권을 5423억 원으로 결정했다.
삼성전자는 하만의 영업권 손상차손을 2019년 468억 원, 2020년 3640억 원으로 처리했다. ZKW의 지난해 영업권 손상차손은 2372억 원이었다. 2020년 말 기준 하만의 영업권 잔존가치는 4조 1993억 원, ZKW의 영업권 잔존가치는 3052억 원이다. 올해도 하만이나 ZKW에서 영업권 손상차손이 발생하면 삼성전자와 LG전자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장 업계의 현 상황도 좋지 않다. 최근 반도체 공급난으로 인해 자동차 생산량이 줄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알릭스파트너스는 지난 9월 “올해 차량용 반도체 품귀현상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매출 손실이 2100억 달러(약 247조 원)에 달할 것”이라며 “전 세계 자동차 생산량이 770만 대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자동차 업계의 경우 올해 상반기에는 비교적 잘 버텼지만 3분기 실적 하락은 피하지 못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동남아시아 반도체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한 탓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총 76만 1975대로 2020년 3분기 대비 20.9% 줄었다.
#차량용 반도체가 묘수 될까
설상가상으로 자동차 패러다임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수소차로 전환되면서 자동차 부품 숫자도 줄어들 전망이다. 전기차의 부품 수는 내연기관차보다 약 30%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인지 국내 자동차 부품기업 중 적자를 내는 곳이 2017년 99개에서 2020년 190개로 늘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세 단체는 지난 10월 12일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에 친환경차 보급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이들은 “국내 자동차 업계의 2030년 친환경차 누적 생산 능력은 차량·부품 개발, 시설 투자 등을 고려할 때 300만 대 이내”라며 “그 이상의 목표를 설정하면 전기차 등을 대규모로 수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내연기관차 생산이 감소하면서 완성차와 부품 업계의 경영악화와 고용불안이 가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LG전자는 제너럴모터스(GM) 리콜 이슈 이후 신뢰도마저 하락했다. LG전자의 지난 3분기 잠정 영업이익은 2020년 3분기 대비 49.6% 감소한 5407억 원이다. GM의 전기차와 쉐보레의 볼트EV 배터리 화재 리콜 관련한 4800억 원 규모의 충당금을 추가 반영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지난 2분기에도 리콜 충당금으로 2350억 원을 부담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차량용 반도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시영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 10월 7일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1’ 기조연설에서 “차량용 반도체에 활용될 5나노 공정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전장 사업 확장을 위해 차량용 반도체에 투자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공급난을 겪는 차량용 반도체(마이크로컨트롤러)는 저사양·저마진으로 제조사 입장에서는 기피하는 품목으로 전해진다. 그렇지만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는 고성능·초저전력 비메모리 반도체가 탑재돼야 하고, 들어가는 반도체 수도 10배 이상 많아진다. 자동차 업계 일각에서 차량용 반도체를 미래 먹거리로 꼽는 이유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장의 총집합이라 불리는 디지털 콕핏(디지털화된 자동차 조종석)을 위주로 연구·개발과 투자를 꾸준히 하고 있다”며 “단기적인 성과에 집중하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