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하러 힘 빼? 남는 게 없는데…
▲ 선수도 팬들도 외면하는 프로축구 컵대회가 끝내 폐지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6일 프로축구 러시엔캐시컵 울산현대와 부산아이파크 경기에서 설기현이 활약하는 모습.뉴시스 |
누가 봐도 ‘어쩔 수 없이’ 진행한다는 인상이 다분하다. 프로축구를 위해 돈을 낸 스폰서 수익 확보 차원이란 시선이 대다수다.
관중석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지난달 16일 막을 올린 컵대회 1라운드에는 관중이라고 거론하기조차 부끄러울 만큼 적은 숫자의 팬들이 경기장들을 찾았다.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열렸던 대구FC와 경남FC의 대결에는 고작 952명이 찾았다. 가장 관중이 많았던 곳은 포항 스틸러스와 성남 일화의 경기가 치러진 포항스틸야드로 7211명이 스탠드를 메웠다. 이달 6일 벌어진 컵대회 조별리그 2라운드 또한 마찬가지. 관중이 적기로 정평이 난 성남과 경남 간의 탄천종합운동장 승부는 1411명, 부산 아이파크와 광주FC의 부산벌 승부는 고작 1502명이 찾았을 뿐이다.
K리그 사령탑들은 백이면 백 “컵대회는 포기하는 대회”라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일까. 2군들이 출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갈 길이 바쁜 구단들, 특히 순위 다툼에 민감한 팀들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강호로 인정받지 못하고 우승 경험도 전무한 시(도)민 구단들조차 비 주전 멤버들의 실력 향상과 경험을 위한 무대로 삼는 경향이 짙다.
심지어 일부 구단의 경우는 상위 라운드로 진출할수록 영예나 영광이 아닌, 손해라는 부정적 인식으로 가득 차 있다. 지난 시즌 컵대회 결승전에 올랐던 전북 최강희 감독은 최악의 실수로 컵대회 선전을 꼽았다.
전북 프런트도 “그때 우리가 컵대회 결승에 가느라 힘을 빼지 않았다면 정규리그 이후 포스트시즌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며 아쉬워한다.
구단들이 컵대회를 외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런 보상도, 메리트도 주어지지 않아서다.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은커녕, 상금도 많지 않기에 굳이 타이틀을 확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잉글랜드 프로축구에선 K리그 컵대회 개념의 칼링컵이 있지만, 2군들을 모두 투입해 일부러 패하거나 ‘경험을 위해’ 거쳐 가려는 인상은 남기지 않는다. 뜨거운 관중 열기와 미디어 및 팬들의 관심도는 주말에 치러지는 정규리그 못지않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티켓이나 뚜렷한 어드밴티지가 존재하지 않기에 그저 놀라울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축구계는 대회 방식의 차이를 이유로 꼽기도 했다. K리그는 정규 라운드를 모두 소화한 이후에 6강 플레이오프부터 챔피언결정전까지 포스트시즌을 별개로 치르는 반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의 풀리그로만 진행된다는 것. 토너먼트 시스템으로 진행되는 대회를 상대적으로 접할 기회가 적기에 컵대회도 나름 인기를 끌 수 있다는 의미다.
프로야구, 프로농구, 프로배구 등 스포츠 팬들이 즐길 만한 ‘꺼리’가 많다는 것도 컵대회가 외면받는 이유다. 특히 주중 수요일 오후 7시는 국내 인기 스포츠 종목 1, 2위 순위를 다투는 프로야구와 정면충돌할 우려도 있다.
모 구단 감독은 “현 시스템과 형태로 봐서는 프로 2군대회인 R(리저브)-리그와 다를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프로축구연맹도 나름 고민이 많다. 특히 올 시즌 타이틀 스폰서로 선정된 기업이 대부업체인지라 가뜩이나 부정적이었던 컵대회 이미지가 더욱 추락했다.
이러한 연유로 팬들은 물론 신문과 방송들도 스폰서 명칭을 붙여주는 데 인색한 편이다. 사석에서 만난 연맹 관계자는 “시장경제 논리로 보자면 문제없지만 ‘고금리’ 등 좋지 못한 얘기들이 많아서 개운치 않은 느낌”이라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스폰서 금액은 약 9억 원대로 알려졌으나 이미지 실추로 인한 피해는 그 이상일 수 있다는 게 주된 분석이다.
연맹은 AFC 측에 컵대회 우승팀에게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부여하는 방안을 문의했으나 ‘노(No)’라는 대답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서는 흥행 요소가 없다. 일각에서는 칼링컵을 본떠 내셔널리그와 K3 구단들을 일부 참여시키는 방안을 제기했으나 그렇게 될 경우, FA컵과 차별화를 두기 어렵다. 더욱이 방식의 전환은 이미 한 차례 제기됐던 것으로 각 구단 이사회에서 반대표를 훨씬 많이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메리트도 부여할 수 없고, 방식을 바꿀 수도 없다면 마지막 방법은 스타플레이어들의 참여뿐. 하지만 강제할 수 없는 게 솔직한 현실이다.
각 팀들은 나름의 시즌 구상을 갖고 있다. K리그 타이틀과 FA컵, 챔피언스리그까지 3마리 토끼를 두루 쫓는 강호들은 물론, 하위 팀들도 각자 복안이 있다. 특히 시(도)민 구단들은 스쿼드가 얇아 철저한 분리 운용이 필요하다. 대회별로 선택과 집중의 필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대구 이영진 감독은 “우리 팀으로서는 무조건 컵대회는 실력 향상을 위한 장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K리그 초반 잘나가고 있다고 하지만 강팀들이 페이스를 조절해가며 60% 남짓 힘을 쏟을 때 우린 풀 전력을 다하고 있는 형편이다. 벌써부터 부상 기미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고 말했다.
대다수의 인식이 이럴진대 흥미진진한 컵대회를 기대하기는 앞으로도 어려울 듯하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