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식’ 만남았다
▲ 지난 3월25일 계열사 CEO 간담회에서 최태원 회장은 ‘계열사 간의 문화 공유’ 등을 당부했다. 최근 SK그룹은 인사 등을 통해 ‘최태원 체제’를 빠르게 정착시켜 나가고 있다. | ||
외국계 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지난해에 이어 SK그룹 최태원 회장 일가의 오너십에 대한 공격을 예고했고, 사실상 올해가 소버린과 최 회장의 마지막이자 최대 승부였기 때문이다.
SK는 이번 주총에서 외국인 주주를 포함해 지난해보다 더 많은 주주들의 호응을 이끌어냈고 주총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주총에서 승리하자마자 SK그룹은 빠르게 최태원 회장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최 회장이 SK(주) 회장이고, 병보석으로 풀려난 신분임에도 사실상 그룹 회장으로서의 권한을 이번 주총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행사하기 시작했다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난해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SK그룹 CEO 세미나에서만 해도 계열사 독립경영 체제를 강조하던 기조가 SK(주) 주총이 끝난 뒤인 지난 3월25일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에서 열린 계열사 CEO 간담회에서 최 회장은 ‘계열사들의 SK 브랜드와 고객을 공유할 수 있도록 유기적인 의사소통을 강화하고 인사 교류를 통한 시너지(상승) 효과를 높일 것’을 당부했다.
그즈음 단행된 계열사 인사는 사실상 그룹 인사의 성격을 띠었다.
SK텔레콤의 고객관리(CR) 책임자였던 조민래 부문장이 SK텔링크 사장으로 나가고, 홍보실장을 맡았던 신영철 상무도 승진과 함께 SK스포츠단 단장으로 나간 것. 대신 그 자리에 조중래 SK(주) 안전환경경영팀장이 홍보실장에 임명되는 등 SK(주)에서 SK텔레콤으로 두 명의 임원이 부임했다.
이 과정에서 인사 뒷배경을 놓고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오는 등 일부 잡음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이 나서서 “그룹 문화 공유 차원에서 수혈을 받은 것”이라고 직접 해명하기도 했다. 근래에 드물게 계열사간 인사교류가 큰 폭으로 실시된 것은 틀림없다.
때문에 일각에선 최 회장이 SK사태와 구속, 소버린의 공격을 겪으면서 그룹 장악력과 오너 회장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경영권을 보장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바로 자신이라는 점, 그룹 경영의 정점에 놓여있는 회장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고, 10년이 넘게 걸릴 경영수업을 위기상황을 겪으면서 짧은 기간에 이수했다는 관전평도 나오고 있다. 그 깨달음의 하나가 이번 SK텔레콤에 대한 인사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 회장이 보석 이후 조심스러운 행보속에서도 SK(주)에 구조조정본부격인 투자관리실을 만들어 그를 도울 수 있는 전문 스태프진을 배치한 것이나, 법무관리실을 크게 강화하는 등 SK사태를 겪으면서 부각된 그룹의 약점을 강화시켜 나갔다.
지난해 10월의 제주 모임 때 나온 독립경영체제 강화나 투명경영, 윤리경영이라는 슬로건에 이어 이번 오크밸리 모임에서 ‘그룹 문화 공유’라는 점이 추가된 것은 바로 최 회장의 경영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왕권 강화’ 행보로 해석되고 있다.
최근 SK는 투자관리실을 주축으로 소버린과의 주총 대결에서 승리했다. 은행관리에 들어갔던 SK네트웍스도 경영정상화가 됐다. 또 구조조정을 위해 추진했던 워커힐호텔 매각이나 SK생명 매각건도 사실상 물 건너 갔다. 이 모든 게 SK 계열사의 이른 경영정상화 때문에 가능했던 것. 또 SK네트웍스는 경영정상화를 바탕으로 자동차 사업을 확대하고 있고, 그룹의 숙원이었던 카드사업 진출도 하나은행과 공동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등 공세적인 경영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딱 한가지.
최 회장이 아직 보석 상태라는 점이다. 그는 SK글로벌 분식 회계 건 등으로 2심 재판에 회부돼 있고, 최 회장측에선 1심의 유죄가 2심에서 무죄로 판결나기를 바라고 있다. 2심 재판 결과에 따라 최 회장의 공식적인 대관식(그룹 회장)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움츠렸던 최 회장이 더 멀리 뛰어나갈지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