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위상 높인 이회창 대권 도전까지 수직상승…취임 앞둔 최재해 원장 의외로 ‘첫 내부 출신’
감사원의 뿌리는 심계원과 감찰위원회다. 심계원은 1948년 7월 제헌헌법에 따라 설치됐던 대통령 직속 헌법기관이다. 대한민국 건국 초반 국가 수입과 지출 결산에 대한 검사·보고 및 국가기관의 회계 감독을 맡았다. 심계원은 5·16 군사정변 이후인 1961년 9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산하로 편입됐다.
1948년부터 1963년까지 존재했던 심계원의 수장 자리는 명제세(1대) 함태영(2대) 등 북한 출신 독립운동가들이 맡았다. 3대 심계원장은 변호사 출신 노진설 초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맡았다. 4~5대 심계원장은 ‘친일파 오명’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조선총독부 관료 출신인 최하영 전 의원, 일제강점기 경성지방법원 판사를 지냈던 김세완 전 국민학원 이사장이다. 군부가 실권을 잡고 국가재건최고회의 산하로 편입된 다음 부임한 마지막 심계원장은 군인 출신 이원엽 전 의원이었다.
감찰위원회는 제2공화국 시절인 1961년 3월 28일 출범했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행정기관 사무와 공무원 비위 조사를 하는 조직이었다. 다만 군에 대해선 참모총장 소명 없이 감찰을 할 수 없는 한계를 지녔다. 국영기업체나 국가가 지분 절반 이상을 가진 법인 사무 및 임직원 비위조사를 담당하기도 했다.
제2공화국이 초대 감찰위원장으로 임명한 인물은 광복 이후 국회 법제위원장을 맡았던 민영수 변호사였다. 일제강점기 군산, 평양, 함흥 등에서 판사로 재직했다. 5·16 군사정변 이후 헌정 중단기엔 군인 출신이 2~3대 감찰위원장을 지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최재명 전 보병학교 참모장과 채명신 전 제2작전사령관이다. 채 전 사령관은 베트남 전쟁에서 많은 전공을 세운 군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건국 초기부터 존재했던 심계원과 4·19 혁명 이후 제2공화국 때 출범한 감찰위원회는 1963년 3월 20일 감사원으로 통합, 출범했다. 감사원은 국가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에 대한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 직무에 대한 감찰을 위해 설립된 독립적 헌법기관이다. 대통령 직속 감사기관이지만 대통령은 감사원 업무에 관여할 수 없게끔 돼 있다. 직무와 기능에 있어 독립적 활동성을 보장받는 까닭에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의 지휘·감독 범위 밖에 있다.
감사원은 감찰기관임에도 계좌추적권, 출석요구권, 자료제출요구권 등 수사기관에 준하는 권한을 지닌다. 이와 더불어 자체적인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어 권력의 심장부와 사각지대까지도 긴장하게 만드는 파워를 갖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를 통틀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평가를 받았던 국가안전기획부, 국군기무사령부, 대통령 비서실 등까지 침투했던 ‘현대판 어사대’가 바로 감사원이다.
감사원장 임기는 4년이다. 감사원 출범 초창기 원장 직은 군인 출신들 몫이었다. 이원엽 초대 감사원장과 한신 제2대 감사원장, 이주일 제3·4대 감사원장, 이석제 제5·6대 감사원장은 모두 군 출신이다.
제4공화국에서 임명된 신두영 제7대 감사원장은 최초의 비군인 감사원장이었다. 그는 이승만 정부 당시 국무원 사무처 차장 출신으로 공무원 연금법을 제정한 인물이다. 이한기 제8·9대 감사원장은 제4공화국과 제5공화국으로 가는 과도기에 원장 직을 맡았다.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 출신 법학자다. 정희택 제10대 감사원장은 검사 출신이다.
제5공화국 말기엔 다시 군인 출신 감사원장이 등장했다. 황영시 제11·12대 감사원장이다. 그는 육군 참모총장 출신으로 감사원장 직을 수행했다. 이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제6공화국이 출범했다. 첫 직선제 대통령으로는 노태우 씨가 취임했다. 노태우 정부에선 법관 출신을 감사원장으로 등용했다. 김영준 제13·14대 감사원장이다.
김영삼 정부에선 감사원의 운명을 바꾼 감사원장이 등장한다. 대선에만 세 번 도전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총재다. 이회창 전 총재는 제15대 감사원장을 지내며 감사원 대격변을 일으켰다. 1993년 2월 25일 감사원장으로 취임한 이 전 총재는 “감사원은 직무상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된 위치에 있다”면서 “그러므로 어느 누구의 부당한 간섭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 전 총재는 감사원장 공관이 너무 넓고 화려하다는 이유로 공관 입주를 거부했다. 이후론 청와대 비서실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통해 권력 심장부에 칼을 댔다. 그는 ‘성역’이라 불리던 율곡사업까지 건드렸다. 평화의댐 비리에 대한 국가안전기획부 감사까지 실시했다. 평화의댐 감사 당시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서면조사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감사원 복수 전·현직 관계자들은 이 시기를 ‘제6공화국 수립 이후 현재 감사원의 위상을 설정한 때였다’고 되돌아봤다. 감사원장 재임 중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이 전 총재는 ‘대쪽’이란 별명을 달게 됐다. 감사원장 재임 10개월 만에 이 전 총재는 김영삼 정부 국무총리로 영전했다. 그 뒤로 그는 일약 여당(신한국당) 대선주자로 부상했다.
이회창 전 총재 후임자는 ‘법조계 스테디셀러’ 저자였다. 사법고시생이라면 한번쯤 봤을 책인 ‘신민사소송법’ 저자 이시윤 제16대 감사원장이다. 법관 출신인 이 전 원장은 헌법재판관으로 재임하며 대한민국 헌법재판 시스템 초석을 놨다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김대중 정부에선 ‘민변’ 창립을 주도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권변호사 출신 한승헌 제17대 감사원장을 등용했다. 그의 후임자론 법무부 차관,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등 엘리트 코스를 거친 이종남 제18대 감사원장이 부임했다. 노무현 정부에선 경제 관료 출신이자 김대중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 출신 전윤철 제19·20대 감사원장이 부임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엔 김황식 제21대 감사원장이 취임했다. 대법관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 감사원장이 된 그는 2년 만에 국무총리로 영전한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회창 전 총재에 이어 ‘김황식’이란 이름이 대권주자 하마평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2011년엔 양건 제22대 감사원장이 부임했다. 이명박 정부 초대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낸 인사였다. 그는 2013년 8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4대강 사업 감사 논란에 휘말려 감사원장 직을 사임했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당시 현직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감사원장으로 깜짝 발탁해 화제를 모았다. 황찬현 제23대 감사원장이다. 현직 법원장이 감사원장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그를 둘러싼 사법부 독립성 훼손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탄핵 정국 이후 수립된 문재인 정부도 법관 출신을 감사원장으로 발탁했다. 최재형 제24대 감사원장이다. 최 전 원장은 2대의 원장용 차량을 운용하는 것에 대해 불호령을 내리며 ‘규정에 없는 것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려 화제를 모았다. 각종 미담으로 ‘미담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20년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와 관련한 감사를 통해 문재인 정부와 대립하면서 최 전 원장은 야권 대선주자 하마평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2021년 6월 감사원장 직에서 사퇴한 최 전 원장은 7월 정계 입문을 선언하며 대권 출마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정치 제도권의 벽은 높았다. 최 전 원장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2차 컷오프에서 탈락하며 평당원 신분으로 돌아갔다. 이후론 홍준표 캠프에 합류했다.
한 야권 관계자는 “‘포스트 이회창’으로 관심을 모았지만, 정치권에서 유의미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사실상 잊히는 카드가 됐다. 특히 캠프 해체라든지 그가 했던 시도들은 정치권 기본 문법에서 완전히 어긋나 있는데, 그런 부분들에 대한 계산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최 전 원장을 바라봤다.
최 전 원장은 감사원장 직을 사퇴한 지 10일도 되지 않아 정계 입문을 선언해 감사원장의 정치 중립성 훼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최 전 원장이 물러난 지 네 달이 지난 11월 문재인 정부는 제25대 감사원장 후보자로 최재해 감사원 감사위원을 선택했다. 최 후보자는 11월 2일 청문보고서 채택 절차를 마쳤다. 감사원장 취임이 임박한 상황이다.
청문보고서에 따르면 여야 국회의원들은 최 후보자에 대한 아쉬운 점을 명시하기도 했다. 보고서엔 “청문 과정에서 후보자는 전임 감사원장(최재형)의 정치 중립성 논란,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에 대한 성남 주민의 공익감사 청구 및 성남시·성남도시개발공사에 대한 감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지적, 청와대의 감사원 인사 관여 의혹 등에 대해 소신 있는 입장을 밝히지 못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여야 청문위원들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감사, 서울시교육청 중등 교육공무원 특별채용에 대한 감사, 대우조선해양 매각과 관련한 재감사 필요성 등에 대해 답변이 불충분했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