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곡차곡 불리는 게 부자되는 지름길
“불필요한 것은 안 산다. 그러나 꼭 필요한 것은 산다”고 나름대로 기준을 정하면 꼭 준수한다. 택시기사가 거스름돈이 단돈 1백원이라고 해서 안 주거나 하면 단단히 화를 내는 것이 부자들의 단면이다. 반면 희끗희끗해지는 머리칼을 보면서 몸에 좋은 것이 있다고 하면 수십만원이라도 아낌없이 그냥 내는 것 또한 부자들의 모습이다. 다시 안 볼 택시기사에게는 1백원이 아까우나, 자신에게 수십만원을 투자하는 것은 절대로 아깝지가 않은 것이 부자다.
‘신부자열전’ 그 두 번째 주인공으로 소개할 강남 부잣집의 한 사모님 역시 철저한 원칙주의자다. 자신의 중요한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고(여성의 몸으로 힘든 일을 하고), 자신의 헛된 욕구를 절제하려고 상당한 인내를 하는(여성의 입장에서 하기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다.
50대 초반인 O여사의 부모님은 이북에서 월남한 뒤 서울에서 검소한 생활을 했다. 공직에 몸담고 있었던 부친의 영향으로 O여사는 알뜰하면서도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하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부모님은 당시의 일반적인 경향대로 부동산을 재테크 수단으로 삼았고, 무남독녀였던 O여사가 이를 물려받았다.
남편이 전문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한 뒤에도 O여사가 부동산을 직접 챙겼는데, 여성의 몸으로 당차게 관리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부동산 재산을 증식해 나가는 수완을 발휘했다.
집에서는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남편과 함께 1남1녀의 가족을 알뜰히 챙기면서도 O여사는 자신이 직접 세입자 관리도 하고, 환경개선부담금도 걷고, 정화조 청소도 관리하고, 심지어는 빈 점포를 채워넣는 부동산소개소의 일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전체 부자 중 약 35%가 거주한다는 ‘부자특별구’인 서울시 강남구에 아파트와 빌딩을 가졌지만 O여사는 여성으로서 재산관리인 없이 자신이 빌딩 관리를 직접 챙겼다.
세입자들만 족히 수십 명이 넘는 데다 그들을 일일이 직접 상대한다는 것이 상당히 버거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른 빌딩들이 흔히 해오는 식의 중간관리인을 채용하지 않고 직접 나섰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빌딩은 항상 빈 점포 없이 세입자가 꽉꽉 찼고, 그 관계도 원만했다고 한다. 인건비를 줄이는 대신 다른 곳보다 월세를 단 일이십만원이라도 더 싸게 해주고, 또 주인이 직접 매일 관리하면서 챙긴다는 사실이 세입자들에게 믿음을 줬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자녀를 돌봐야 한다는 사명감(성취욕구)을 가지고 여성으로서 힘든 일을 수행했다. 그러나 자신의 생활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다. 필자는 O여사와 대화를 하면서 그의 원칙적인 생활에 감동을 받았다.
“교수님, 저는 제가 얼마를 모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다른 것을 다 줄이면서 꼭 달성합니다.”
“금전 목표를 정해 놓고 성취하신다는 것이 힘드셨을 텐데 몸이 힘들고 정신적으로 피곤하지 않았습니까?”
“아니요. 괜찮아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몇 년 전 IMF다 뭐다 해서 3천만원 정도의 월세 수입금이 2천5백만원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러면 그녀는 약 5백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절반으로 줄이고, 또 나머지 지출을 최대한 줄여서 이 손실금을 보완하곤 했다. “당장 한 달에 5백만원 적게 들어온다고 큰일 날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물어도 그냥 웃기만 한다.
부자들 중에는 초인적인 인내를 하는 이들도 많은데, 심지어는 화장실을 사용할 때도 서너 명이 다녀와야만 물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직접 만나본 서울 평창동의 한 부잣집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필자가 이런 이야기를 O여사에게 하자, “저희도 부부끼리는 그래요”라고 태연하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O여사의 재산 증식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고전적이고 구태의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녀는 전형적인 소극적 방어적 방식의 재테크를 추구한다. 남편의 월급으로 생활하고, 빌딩 임대료 등 수입금은 고스란히 저축한다. 돈이 쌓이면 인근 상가를 분양받고, 그것이 쌓이면 또 작은 빌딩을 하나 인수하는 식이다.
무리하게 대출을 받고 빌딩을 구입하거나, 주식을 하거나 하질 않는다. 이리저리 정보력을 동원해서 분양권을 따내기 위해 쫓아다니고, 또 그것을 금세 되팔고 하는 것도 체질상 맞지 않는다고 한다. 차근차근 불려나가는 재미가 쏠쏠하지, 한꺼번에 왕창 목돈이 굴러오면 왠지 돈이 돈 같지가 않아서 별로 돈 모으는 재미도 없을 것 같다고 한다.
현재 수백억대 재산의 근간이 된 강남역 부근 대형 빌딩 역시 당초 가족이 거주하던 집이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아파트로 이사가면서 그 집을 허물고 작은 빌딩을 짓고, 다시 증축하고 늘리고 해서 지금의 대형 빌딩이 되었다는 것.
O여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 쉬운 강남의 부자 사모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흔히 말하는 사교 모임 같은 것도 없고, 고급 승용차나 명품과도 거리가 멀다. 굳이 모임이라면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신도들과의 모임 정도. 골프나 여행, 쇼핑 등도 그다지 취미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들을 위해서, 살림 장만을 위해서 쓰는 돈은 또 행복을 느끼며 기꺼이 꺼내놓는다.
필자는 기독교의 자선정신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부자들은 청바지를 수십 년씩 꿰매어 입으면서 아낀 돈으로 아프리카에서 페니실린이 없어서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수백만달러씩을 쾌척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저도 아는 분들 소개로 몇 군데에 제가 정한 액수를 보내드립니다”라며 겸손하게 웃었다.
우리나라에 부자는 아무리 많이 쳐야 전체의 5%가 안 된다. 길거리에 걸어다니는 20명의 사람 중에 소위 부자라고 불릴 만한 이는 한 명뿐이라는 이야기다. 20 대 1의 경쟁을 이긴 경제적인 승리자인 부자들은 자신이 세운 원칙에 철저하다. 내 신념이 옳고 그리고 신념에 따른 행동이 옳다는 관념이 강하다.
자신의 원칙에 나름대로 철저하고, 보통 사람이 하기 힘든 인내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자신의 자녀에게는 엄격하게 용돈을 주면서도 불쌍한 타인들의 이야기에 기꺼이 온라인 송금을 하는 부자들도 있다. 반면에 필자는 또 두 시간에 90만원짜리 스파에 몸을 담그고 나서는 8천만원짜리 모피를 입고 불우이웃돕기 행사에 참석해서 1만원짜리 두 장을 내놓는 부자도 실제 목격한 적이 있다.
필자가 만난 O여사는 그 여러 부자들 중 굳이 분류를 한다면 전자에 속하는 유형이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게 되는 ‘강남의 부자 사모님’에 대한 편견을 그녀를 통해 상당히 바꿀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