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어넌 댈러스에 모여 ‘JFK 주니어 부활’ 행사 갖고 “트럼프 재선 조력자로 나설 것” 황당 주장
다음 미국 대통령선거까지는 아직 3년여의 시간이 남았지만 벌써부터 미국 정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75)의 정계 복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의 재기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이유는 지난 2일 치러진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 결과 때문이다. 미 대선 풍향계로 여겨졌던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공화당 후보인 글렌 영킨(54)이 당선됐기 때문이다.
직접 소셜미디어(SNS) 기업을 세우는 등 정치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트럼프가 이번 선거 결과를 발판 삼아 앞으로 더욱 광폭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정치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진짜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고 말한다. 바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극우 음모론 단체인 ‘큐어넌’이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한 것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집권한 2009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조 바이든 대통령(79)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10%포인트(p) 이상 따돌리면서 압승을 거둔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바이든 정부에 대한 민심을 평가하는 바로미터로 여겨졌던 선거에서 패하자 민주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으며, 미 언론들은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이유가 인프라 법안 등 바이든 정부의 정책 실패 때문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세웠던 ‘아메리카 퍼스트’가 아직도 미국 백인 유권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실제 선거 내내 영킨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를 통해 보수 성향의 지지자들을 결집시켰고, 그 결과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의 98%가 이번 선거에서 영킨 후보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조사됐다.
선거 결과에 한껏 고무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마가(MAGA)가 없었다면 영킨은 15%p 이상 뒤졌을 것”이라면서 이번 승리에 자신의 공이 컸음을 은연중에 뽐냈다. '마가'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구호였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의미한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날이 갈수록 상승하고 있다. 공화당 내 차기 대선주자들 가운데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으며, 하버드대 미국정치학센터와 여론조사기관인 ‘해리스’가 공동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들과 무당파 사이에서 47%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것으로도 나타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탄력을 받기 시작하자 큐어넌 추종자들의 움직임도 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믿기로 유명한 큐어넌이 최근 주목한 인물은 다름 아닌 1999년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존 F. 케네디의 장남인 JFK 주니어다. 요컨대 JFK 주니어가 사실은 죽은 게 아니라 어딘가 숨어 지내고 있으며, 다음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하기 위해 모습을 나타낸다는 주장이다.
JFK 주니어의 부활을 믿는 수백 명의 큐어넌 추종자들이 지난 2일 텍사스주 댈러스에 집결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이들이 모인 곳은 1963년 케네디 전 대통령이 총을 맞고 암살됐던 AT&T 디스커버리 플라자였다. JFK 주니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트럼프 지지 구호가 적힌 티셔츠를 입거나, 손에는 ‘트럼프 케네디’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있었다.
약속된 오후 12시 30분이 다가오자 흥분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미국을 축복하라” “JFK!”를 목청껏 외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다 됐는데도 JFK 주니어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흥분이 가라앉은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남아있던 수십 명은 “모두에게 슬픈 일이다. 우리는 이제 집단으로 거짓말쟁이가 됐지만, 그래도 믿음을 지키자”고 말하면서 이내 다른 예언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날 저녁 열리는 롤링스톤스 콘서트에 JFK 주니어가 로빈 윌리엄스 등 고인이 된 다른 유명인사들과 함께 나타난다는 주장이었다. 물론 그런 일은 역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JFK 주니어일까. 왜 JFK 주니어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조력자라는 걸까. 이렇게 주장하는 큐어넌 추종자들은 JFK 주니어가 사실은 큐어넌의 숨은 지도자라고 믿고 있다.
이런 믿음은 2019년부터 시작됐다. JFK 주니어가 큐어넌의 핵심 인물일 뿐만 아니라, 트럼프의 비밀 대변인으로 온라인에서 은밀히 활동하고 있는 ‘Q'라는 것이다. 이런 믿음은 2018년, 극우 성향의 온라인 익명 게시판인 ‘4챈’에 ‘R’이라는 필명의 인물이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그는 트럼프와 JFK 주니어가 함께 찍힌 사진 한 장을 올리면서 JFK 주니어는 살아 있으며, 현재 비밀리에 트럼프를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부터 큐어넌 신봉자들은 JFK 주니어가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고 믿기 시작했으며, 언젠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가 되리라 확신했다. 심지어 일부 광신도들은 자신이 JFK 주니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일부 음모론자들은 이런 근거 없는 믿음을 더욱 부추기기 위해 텔레그램의 채널을 이용했다. ‘네거티브48’ ‘위플래쉬347’ 등의 채널이 바로 그렇다. 이 채널의 운영자들은 JFK 주니어 부활과 관련된 예언으로 온라인상에서 수십만 명의 팔로어를 모았으며, 반복해서 케네디 가문의 구성원들이 11월 초에 부활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기를 도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네거티브48' 채널을 통해 10만 명이 넘는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는 마이클 브라이언 프로츠만은 케네디 가문이 예수 그리스도의 후손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1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또 다른 텔레그램 채널에는 다음과 같은 음모론도 올라왔다. 요컨대 2024년 대선에서 JFK 주니어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당선되면 얼마 지나 트럼프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 JFK 주니어에게 권력을 이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JFK 주니어는 그의 아버지가 196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또 다른 페이스북 사용자는 JFK 주니어가 1999년 자신이 직접 창간한 정치 대중문화 잡지 ‘조지’ 6월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주장했다. “만약 나의 소중한 친구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그의 멋진 억만장자 라이프스타일을 희생하기로 결심한다면, 그는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가 찬성하는 궁극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거대한 힘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났다. 이런 인용문은 잡지에 실린 적이 없으며,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이를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JFK 주니어와 함께 ‘조지’에서 근무했던 한 소식통은 “그런 인용문은 잡지에 실리지 않았으며, 트럼프에 대한 당시 JFK 케네디의 생각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비록 JFK 주니어가 이런 말을 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생전에 두 사람 사이에 분명 친분은 있었다. 1999년에는 둘이 함께 NBA(프로농구) 뉴욕 닉스 농구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1996년 트럼프 소유의 마라라고를 방문한 JFK 주니어는 이 자리에서 정계 진출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오히려 자신보다는 트럼프가 적임자라고 말을 돌리기도 했다. JFK 주니어의 사업 파트너였던 마이클 버먼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JFK 주니어는 그런 질문은 트럼프에게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큐어넌이 JFK 주니어가 사고로 죽지 않았다고 믿는 이유는 뭘까.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정치 성향을 바꾼 JFK 주니어는 힐러리 클린턴의 정치 경력에 방해가 되는 인물이었고, 이 때문에 민주당에 의해 살해되었다.
큐어넌 추종자들은 JFK 주니어가 비행기 사고를 당하고 바로 다음 해에 힐러리가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JFK 주니어는 생전에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적이 없었으며, 힐러리와 맞붙을 계획 역시 하지 않았다. 다만 주위의 권유에 따라 상원의원에 도전해볼 생각은 잠시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 큐어넌 지지자의 페이스북에는 이런 글도 올라왔다. “1999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정부기관과 협력해서 JFK 주니어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JFK 주니어가 정부를 전복시킬 계획을 세운다고 믿었다. 암살 계획을 눈치챈 JFK 주니어는 죽음을 위장하고 몸을 숨겼다. 그리고 수년간 ‘Q프로젝트’를 계획해 왔다.”
그렇다고 큐어넌의 모든 구성원이 JFK 주니어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건 아니다. ‘신과 나라를 위한 큐어넌: 패트리어트 더블 다운’ 협의회를 조직한 존 세이벌은 이런 믿음이 큐어넌 운동을 ‘완전히 미친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도 모른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현재 퍼지고 있는 신성모독적인 쓰레기 홍보의 또 다른 예가 여기에 있다. 이 가운데 무엇도 우리의 진정한 움직임을 대변하지 않으며, 우리는 이에 대해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또한 그는 ‘왕 중의 왕’은 오직 한 명이다. 주님이자 구세주 예수, 예수 그리스도다”라고 거듭 주장했다.
그는 덧붙여 “JFK 주니어가 죽었든 살았든 우리에게는 도움이 안 된다. 그보다는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고, 모든 모임에 참석하고, 여러분의 목소리를 들려주라”고 호소했다.
이런 가운데 미 언론들은 "무엇보다 지금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극단적인 성향의 큐어넌들이 다시 활개를 치게 될 경우"라고 말하면서 "만일 이들이 다시 고개를 들게 될 경우 올해 초 벌어졌던 국회의사당 점령 폭력 사태가 다시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라고 염려했다.
‘케네디가의 저주’ 1999년 JFK 주니어 사망 사고는?
큐어넌 추종자들이 믿는 것처럼 JFK 주니어는 정말 살아 있을까. 물론 아니다.
JFK 주니어는 1999년 아내인 캐롤린 베셋, 처형인 로렌과 함께 사촌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경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던 중 비행기 추락사로 사망했다. 바다 위로 추락했던 비행기 잔해는 18시간의 수색 끝에 발견됐고, 세 구의 시신은 3일이 지나서야 수습됐다.
JFK 주니어의 추락사에 대한 최종 보고서에서 미국 교통안전위원회는 사고 원인에 대해 “야간 비행 도중 비행기가 중심을 잡지 못해 흔들렸고, 이로 인해 방향 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사고에는 연무가 짙게 낀 흐린 날씨와 칠흑같이 어두운 밤도 한몫했다.
당시 JFK 주니어가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케네디가의 저주’가 다시 시작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