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보내는’ 슬픔에 ‘죽음에 대한 불안’ 있지만 내면의 충실 꾀하는 ‘노년적 초월’로 상당수 행복감 느껴
일본 정부는 노인복지법이 제정된 1963년부터 초고령자의 통계를 집계해왔다. 첫해만 해도 153명이었던 100세 이상 인구는 1981년 1000명을 넘어섰고, 1998년에는 1만 명을 돌파했다. 이후 증가 속도는 무섭게 빨라졌다. 5년 후인 2003년 2만 명을 넘었으며, 2019년에는 드디어 7만 명을 초과했다. 급격한 증가세를 이끈 것은 여성의 ‘장수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의하면 “100세 이상 고령자의 약 88%인 7만 6450명이 여성”이라고 한다.
일본인 여성 중 최고령자는 118세의 다나카 가네 할머니로 알려졌다. 1903년생인 그는 ‘세계 최고령자’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현재 후쿠오카 시내의 고령자 복지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120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것이 목표”라고 전해진다.
남성 최고령자는 111세로 1910년생인 우에다 미키조 할아버지다. 장수 비결을 묻자 그는 “특별히 오래 살려고 노력한 것은 아니라”며 “조급해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놔뒀더니 어느새 이 나이가 됐다”고 미소 지었다. 노래 부르기가 취미인 우에다 할아버지는 하루 3끼를 완식할 정도로 건강하다고 한다.
일본 매체 제이캐스트는 “의료기술의 발전과 노인간호제도 확충, 정부에 의한 건강수명 연장 사업 등이 평균 수명을 크게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100세 이상 고령자 수도 급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일본 정부는 매년 ‘경로의 날(9월 셋째주 월요일)’에 100세를 맞은 국민에게 총리 명의의 축하장과 함께 기념품으로 은배(銀杯·은잔)를 증정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2016년부터 순은이 아닌 은도금으로 사양이 변경됐다. 그도 그럴 것이 100세를 넘긴 ‘백수자’가 맹렬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산에 따르면 “일본은 2067년경 100세 이상 인구가 56만 6000명으로, 신생아 수(54만 7000명)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여태껏 인류가 경험한 적 없는 ‘극단적 초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있는 셈이다.
#‘100세 시대’ 노인들이 말하는 미묘한 감정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건 기쁜 일이다. 실제로 건강한 상태로 오래 살고 싶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인생이 길면 행복을 느낄 기회도 늘어난다. 하지만, 반대로 다른 사람이 경험하지 않은 힘든 사건과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 일본 매체 ‘주간겐다이’가 100세 이상 장수하고 있는 고령자들을 만나 솔직한 심경을 들었다.
도쿄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서 화제를 모은 하코이시 시쓰이 할머니는 올해 104세다. 그는 “여전히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1934년 18세에 이발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래 지금까지 현역 이발사로 일해오고 있다.
실은 ‘그만둬야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골손님의 예약을 거절할 수가 없고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가능한 가위를 들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하코이시 할머니는 “건강 비결 중 하나는 손님과 즐겁게 대화하는 것”이라며 “자칫 손이 떨릴 수도 있기에 가위를 들 때는 항상 긴장하며 집중한다”고 전했다. 덧붙여 “미국에서는 108세까지 이발사를 했던 고령자도 있었다”며 자신은 109세까지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100세 이상의 장수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는 고령자도 있다. 아담 스미스 연구로 유명한, 102세의 미즈다 히로시 나고야대학 명예교수는 “학문의 깊이를 더 파고들고 싶지만 신체가 따라주지 않아 속상하다”고 털어놓는다. 100세를 넘겼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라고 하겠지만, 학자인 그에게 있어 연구는 즉 삶이다. 그는 “손을 들기조차 힘들 때가 많다. 그럼에도 최후까지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고 전했다.
100세 이상 노인은 오랜 세월 함께한 배우자를 잃고, 자식을 앞서 보내는 슬픔도 맛보게 된다. 지바현에 거주하는 104세의 나미카와 마사지로 할아버지는 15년 전 아내와 사별, 5년 전에는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낮에는 멍하니 앉아 마당의 잡초를 뽑는 일밖에 할 일이 없다”며 “며느리가 찾아와 돌봐주고 있지만, 마치 자신이 족쇄가 된 것 같아 미안함도 든다”고 한다.
올해 100세를 맞이한 가와사키 요시에 할머니(가명·도쿄도 거주)는 66세 때 하반신 불수가 됐다. 설상가상 얼마 지나지 않아 치매도 앓기 시작했다. 33년간 요시에 씨를 간호해오고 있는 차녀는 “10년 전부터 어머니의 치매가 심해져 딸인 저조차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본인이 100세를 맞이한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다. 차녀는 “언론에서 보도되는 ‘건강한 100세’란 소수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며 “치매가 악화된 상태로 오래 사는 것이 과연 행복한지 묻는다면 솔직히 쉽게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고 밝혔다.
103세로 생을 마감한 정신과 의사 다카하시 사치에는 마지막 저서에서 “인생은 불안과 공생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평상시에는 “100세가 넘었으니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막상 열이라도 나면 ‘드디어 죽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안감이 덮친다는 것이다. 그는 “죽음과 생에 대한 집착을 동시에 가지는 모순을 안고 있다”고 털어놨다.
#초고령자들의 행복감이 강한 이유
언뜻 ‘나이가 들면 더욱 우울해질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연구에 의하면 “오히려 반대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오사카대학 인간과학과의 곤도 야스유키 교수는 ‘초고령자의 행복감’에 대해 약 20년간 연구를 해오고 있다. 그가 초고령자들과 청취조사를 거듭해 얻은 결론은 “행복감은 신체 능력과 달리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10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지금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상당히 많은 초고령자들이 “행복하다”는 대답을 했다. 곤도 교수에 의하면 “특히 65~75세의 전기 고령자 시기를 건강하고 즐겁게 보낼 경우 75세 이상의 후기 고령자가 되어서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다”고 한다. 요컨대 “몸의 기능은 90세가 되면 급격히 저하되지만, 마음의 건강은 유지되어 현상을 보다 긍정적으로 파악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초고령자들은 늙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면의 충실을 꾀함으로써 행복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노년적 초월’이라고 부른다. 곤도 교수는 “마음이 건강한 초고령자의 경우 물질적 풍요에 대한 관심이 감소하고, 사회적인 지위와 역할에도 집착하지 않게 된다”면서 “현재를 온전히 즐길 수 있기 때문에 행복감을 강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