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술·파티로 3년 만에 10%로 줄고 10년 후엔 파산…“최고의 10년 후회 없어, 그러나 지금이 더 행복”
2002년 970만 파운드(약 160억 원)의 복권에 당첨되면서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로 불렸던 마이클 캐롤(39)의 허무한 인생이 재조명 받고 있다. 영국 노퍽주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었던 19세 청년이 하루아침에 억만장자가 됐다는 사실은 당시 그야말로 사건 중의 사건이었다. 잘만 관리하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을 만큼의 부를 이룬 ‘영 앤 리치’가 탄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불과 3년 만에 재산은 10분의 1로 줄어들었고, 복권에 당첨된 지 10년 후인 2012년에는 완전히 파산하고 말았다. 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그의 인생은 술과 마약, 여자, 그리고 폭행과 사치로 얼룩져 있었으며, 이런 ‘탕진잼’ 인생의 끝은 비참했다.
2002년 1파운드(약 1600원)짜리 복권 한 장을 구입했을 때만 해도 캐롤은 이 복권으로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났고, 그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억만장자가 됐다. 복권 당첨금은 정확히 973만 6131파운드, 우리 돈으로 160억 원가량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를 잃고 여러 명의 계부 밑에서 학대를 받으면서 자랐으며, 난독증까지 있었던 불우한 청년에게는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와 같은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곧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벼락부자가 된 그는 환경미화원 일을 그만둘 수 있었다.
처음 복권에 당첨됐을 때만 해도 그의 꿈은 소박했다. 당시 임신 7개월이었던 약혼녀와 함께 호숫가에 있는 작은 집을 사서 낚시를 하면서 보내는 게 꿈이었다. 당첨 후 가진 인터뷰에서도 캐롤은 “나는 결코 돈을 펑펑 쓰는 유혹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또한 딱히 사이가 좋지 않았던 가족들에게도 아량을 베푼 그는 어머니, 누나, 이모에게 각각 100만 파운드(약 16억 원)씩을 나눠주었다. 이는 당첨금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캐롤은 그후 가족과의 연락이 끊어진 데 대해서 “가족들에게 돈을 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너무 많이 주긴 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한 명당 25만 파운드(약 4억 원) 정도면 적당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도 했다.
남은 570만 파운드(약 92억 원)로 그는 노퍽에 있는 방 여덟 개짜리 집을 구입했다. 당시 매입가는 39만 파운드(약 6억 원)였다. 그리고 수영장과 자쿠지 등을 손보는 데 20만 파운드(약 3억 원)를 더 썼다. 하지만 파산 후 이 집을 되팔았을 때는 불과 15만 파운드(약 2억 4000만 원)밖에 받지 못했다. 매일같이 이어진 방탕한 파티와 난잡한 생활로 집 전체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닥과 벽은 낙서로 뒤덮여 있었고, 집 주변의 땅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행복할 것만 같던 그의 인생은 서서히 타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복권에 당첨된 이듬해 약혼녀인 산드라 에이트캔과 결혼해 딸을 낳았지만 5년 만에 이혼했다. 이유는 캐롤의 방탕한 생활 때문이었다. 에이트캔은 ‘더미러’를 통해 “캐롤은 자신이 거물이라고 생각했다. 돈도 많았고, 주변에 사람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라면서 “그는 돈을 물 쓰듯 낭비했고, 마약에 손을 댔는가 하면, 매춘부들과 바람을 피웠다”라면서 남편을 떠난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 에이트캔이 받은 위자료는 140만 파운드(약 22억 원)였다.
돌싱이 된 캐롤은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졌다. 한 달에 한 번 5만 파운드(약 8000만 원)를 들여 파티를 여는 일이 다반사였고, 파티마다 매춘부들이 단골손님으로 초대됐다. 그렇게 시작된 파티는 결국 모든 사람들이 집안 여기저기서 매춘부들과 잠자리를 가지는 것으로 끝나곤 했다.
이렇게 밤새 난잡한 파티가 계속되자 이웃 주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던 것은 물론이었다. 캐롤은 한술 더 떠 낡은 고물차와 흙 묻은 더러운 자전거들을 집 주변에서 몰고 다니면서 이웃의 화를 돋우었는가 하면, 재미로 주차된 차를 부수면서 이웃들의 분노를 샀다.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 고급 승용차를 타고 노퍽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도로 위의 사람들에게 빅맥과 너겟을 던지곤 했다.
자메이카, 바베이도스, 푸에르토 바누스 등지를 여행하면서 향락적인 파티를 즐기는 날도 많았다. 이 기간 동안 무려 4000명의 여성들과 잠자리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캐롤은 “어떤 날에는 콜걸 여덟 명과 함께 잠을 자기도 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알코올과 마약 중독에서도 헤어 나오지 못했다. 코카인에 쓴 돈만 총 120만 파운드(약 19억 원)에 달할 정도였다. 캐롤은 그때를 회상하면서 “약물에 빠져 지내면서 매일 새로운 여자를 집에 불러들여 돈을 펑펑 썼다.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고, 인생이 늘 불행하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급기야 2004년에는 코카인 소지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가 약물 치료 명령을 따르지 않아서 5개월간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폭행 사건에 연루돼 법정에 선 횟수도 무려 서른 번이 넘었다. 2005년에는 술에 취한 채 밴을 몰고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볼베어링을 창밖으로 던져 도로변의 가게와 주차되어 있는 차량의 유리창을 깨뜨리기도 했다. 이렇게 파손된 가게만 32곳에 달했다. 이 일로 캐롤은 법원에서 벌금형을 비롯해 240시간의 사회봉사 및 ASBO(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동일한 행위를 금하는 명령)를 선고 받았다.
하지만 그의 기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6년에는 페스티벌에서 야구 방망이를 휘둘러 난동을 피우면서 또 한 차례 경찰에 연행됐으며, 이로 인해 9개월 동안 다시 교도소 신세를 져야 했다.
사정이 이러니 계좌가 빠르게 고갈됐던 건 어쩌면 당연했다. 결국 2005년, 회계사는 그에게 “이제 현금이 100만 파운드(약 16억 원)밖에 남지 않았다”며 경고했다. 그리고 2012년, 급기야 당첨금은 바닥이 났으며, 나쁜 평판 때문에 지역 술집에서도 그를 받아주는 곳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복권에 당첨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말 그대로 빈털터리 신세가 된 것이다.
2013년, 결국 파산한 그는 실업자 수당을 받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평판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그는 노숙자 숙소로 이사했다. 그후 비스킷 공장에서 지게차를 운전하거나, 도축장에서 일하면서 월세 500파운드(약 80만 원)의 방 두 개짜리 임대 주택에서 생활하는 등 비참한 생활을 이어 나갔다.
결국 고향을 떠나 2019년, 스코틀랜드로 이주한 그는 현재 시급 10파운드(약 1만 6000원)를 받으면서 석탄과 통나무를 나르는 인부로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있다.
이런 추락에 대해 그는 “잘못된 건 없다. 1파운드로 바꾼 내 인생 최고의 10년이었다. 어떤 후회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또한 “살아 있는 게 행운인 듯싶다. 만약 내가 여전히 돈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 더 나락으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얼마 전에는 전 부인인 에이트캔과 재혼하면서 다시 한 번 화제가 됐다. 다시 합친 둘은 조용히 재혼식을 올리고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인은 “지난 몇 달 동안 모든 일이 매우 빠르게 일어났지만 둘은 다시 사랑에 빠졌고 지금은 정말 행복하다. 과거의 일은 잊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캐롤은 현재 많이 진정된 상태다. 스스로 만족스런 삶을 살고 있으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재기를 꿈꾸고 있는 캐롤은 주급 200파운드(약 30만 원)를 받는 환경미화원에 다시 지원했다. 그는 “가난해졌다고 해서 창피하거나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술과 여자에 빠졌던 과거의 내 모습이 더 부끄럽다”면서 “다시는 그런 부자 인생을 꿈꾸지 않는다. 나는 돈에 대해 아무런 미련도 없다. 오히려 가난하지만 열심히 사는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는 않다. 지금도 충분히 멋지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진짜 내 삶을 되찾았기 때문에 더 행복하다”며 지금의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대박을 꿈꾸면서 오늘도 복권을 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뭘까.
“어떤 일을 하고 있든 절대로 일을 그만두지는 마세요. 비록 하루에 몇 시간일지라도, 일은 꼭 계속 하세요.”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