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K-팝이 씨 뿌리고 음식·뷰티·한글로 확산…영국 고추장 판매 200%, 한글 학습자 78% 증가
최근 영국의 ‘더타임스’는 ‘한류! 한국 문화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류의 인기와 배경에 대해 다루었다. BTS,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의 성공을 통해 한류를 분석한 이 기사는 “우리는 이제 모두 K-팬이다”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오징어 게임’의 인기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한류는 이미 한국 정부가 수십 년간 기획해온 결과물이다”라고 보도했다.
즉,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 공원’이 전세계에서 벌어들이는 액수가 현대자동차가 자동차를 수출해서 벌어들이는 것보다 더 많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정부 차원에서 엔터테인먼트 산업 육성과 수출 계획을 세운 결과였다고 소개했다.
한국의 음식 문화와 뷰티 산업에 대해서는 “한국의 치킨버거는 현재 영국의 거의 모든 펍에서 팔리고 있으며, 뷰티 산업은 2027년 139억 달러(16조 6000억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드라마에 대해서는 “한국 문화산업의 첫 번째 대형 수출품은 드라마”라고 언급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강점은 좋은 품질과 일본 경쟁작들에 비해 저렴한 가격에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이점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 중동, 인도를 휩쓸었고, 이제는 서구 시청자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류가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데는 대기업들의 역할도 있었다. 삼성과 현대차는 BTS(방탄소년단)를 광고 모델로 내세워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이에 관해 ‘더타임스’는 현재 BTS가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규모는 연간 50억 달러(6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영국의 ‘데일리메일’ 온라인판도 한류 열풍에 대한 기사를 통해 한국 문화를 소개했다. ‘한류는 영국에서 어떻게 주류가 됐나’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한국 음식, 패션, 음악, 한국어를 이제 영국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게 됐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당신이 ‘오징어 게임’과 같은 K-드라마를 보든, BTS와 같은 K-팝을 듣든, 저녁 식사 때 김치 한 쪽을 곁들이든 이미 한국 문화를 접한 것이다”라고 했다.
트렌드 전문가인 브렌다 가브리엘에 따르면, 이러한 한류의 문화적 현상은 일시적인 게 아니다. “미국과 영국에서 한류에 대한 관심은 코로나 대유행으로 가속화됐다”고 말하면서 “온라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거나, 한국 콘텐츠가 가득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더 많이 보게 된 데 따른 결과다”라고 분석했다.
먼저 TV 드라마와 영화의 한류 바람에 대해서 가브리엘은 “한류의 인기 상승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은 주요 대중문화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정부는 보조금과 창업 자금 지원을 통해 창조 산업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약속했다”고 상세히 소개했다. 그러면서 “한류 열풍은 소셜미디어와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동영상 공유 플랫폼 덕분에 견인력을 얻게 되었고, 덕분에 한국 연예산업이 전세계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는 영국인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오징어 게임’과 같은 오락물의 광범위한 소비를 가능하게 했다. 이에 대해 가브리엘은 “한국의 TV 쇼프로그램이나 드라마는 한 번 보면 눈을 떼지 못하게 된다. 액션으로 가득 찬 스토리로 이뤄져 있는 데다 대부분 한 시즌으로 끝나기 때문에 끝없이 이어지는 에피소드에 몰두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완벽한 선택이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K-팝에 대해서는 “한류의 씨앗은 처음에는 아시아 전역에서 K-드라마와 K-팝의 인기에 힘입어 1990년대부터 조용히 뿌리 내리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영국의 경우 2012년 발매된 싸이의 세계적인 히트곡인 ‘강남스타일’을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K-팝을 접하게 됐다.
가브리엘은 ‘강남스타일’에 대해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면서 전세계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면서 “‘강남 스타일’의 말춤은 심지어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도 시연했을 정도로 인기였으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강남스타일’의 성공을 전세계 사람들이 한류 문화에 어떻게 빠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로 들었다”고 전했다.
그리고 싸이의 뒤를 이어 등장한 한국의 슈퍼스타인 BTS에 대해서 가브리엘은 “BTS는 지난 수년간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두었고, 대부분 한국어로 노래를 불렀음에도 영국에서 두터운 팬층을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BTS의 성공에 대해서는 “팬들과의 관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연예인 가운데 한 명이다” “코로나 대유행 기간 동안 BTS는 온라인상에서 팬들과 활발하게 교류해왔다”고 분석했다.
또한 BTS는 노래에서 신체적 이미지, 우울증, 불안과 같은 중요한 문제들을 솔직하게 다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롤모델로 여겨진다고 말하면서 “BTS는 연예인이자 롤모델로 간주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영국에서 인기가 치솟고 있는 한국음식에 대해 소개한 가브리엘은 “한국 식당들은 간편하고 맛있으며, 건강에도 좋은 음식들을 판매한다”고 칭찬했다. 이런 인기는 슈퍼마켓의 진열대까지 바꿔놓았다. 최근 몇 달 동안 고급 식료품점인 ‘막스 앤 스펜서’에서 한국 식품의 인기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데일리메일’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영국인들이 집에서 전통 한식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고추장 판매량은 200% 이상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간편식 판매량도 증가했다. 가령 작년 이맘때에 비해 매출이 250% 이상 급증한 한국식 닭강정은 영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음식이다. 지난해 ‘브리티시 하이스트리트’는 이동 중에도 한국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닭강정 메뉴를 출시해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실제 한국식 치킨의 인기는 날로 높아가고 있다. 2020년 한국의 치킨 수출액은 2019년보다 59.5% 증가한 2100만 달러(약 250억 원)에 달했다. 한국산 닭고기 수출 시장 점유율은 미국(162.4%), 홍콩(22.7%), 캐나다(6.7%), 대만(6.2%), 미얀마(2.5%), 호주(2.1%) 순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영국의 고급 식료품점인 ‘웨이트로즈’에서도 고추장과 김치 매출이 급증했다. 이 밖에도 한국식 양갈비, 한국식 치킨, 한국식 볶음밥의 매출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무채가 들어간 ‘웨이트로즈’의 한국식 버거 매출은 무려 106%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분식도 영국인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런던 차이나타운에 있는 ‘분식(BUNSIK)’이라는 이름의 식당은 틱톡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한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하는 긴 줄이 늘어설 정도로 맛집이 됐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한국식 핫도그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인기 높은 길거리 음식이 됐다.
이런 한국 음식의 인기는 런던을 넘어 셰필드, 맨체스터, 에든버러, 버밍엄 등으로 번지고 있으며, 각 지역마다 슈퍼마켓에서는 현재 한국 식재료와 전문매장들이 상당수 입점해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데일리메일’은 “한국 음식점이 늘어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영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한국인 유학생들이 증가한 데 따른 현상이다”라고 말하면서 “현재 약 2만 명이 영국에서 유학하고 있으며, 이는 영국 내 모든 한인들의 3분의 1을 넘는 숫자다”라고 덧붙였다.
인도의 경우에는 한국 라면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라면은 2020년 한 해 동안 164%의 매출 증가세를 보였다. 이에 따라 인도 내 한국 식품 시장은 매년 16%씩 성장하고 있다. 소주도 인기다. 소주는 지금까지 최대 식품 수출품목이었던 김치보다 무려 네 배가량 더 많이 팔리고 있다.
한국의 뷰티 산업과 패션도 젊은 영국인들 사이에서 점점 인기를 얻고 있다. 가브리엘은 “비비크림이라고 알려진 화장품도 한국산이다”라고 소개했다. 이런 인기는 터키와 중동 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 화장품 브랜드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좋은 품질 덕분에 미국과 유럽 경쟁사들의 점유율을 빼앗아오고 있다.
K-뷰티의 급부상으로 드럭스토어인 ‘왓슨스’는 2025년 말까지 중동 전역에 100개의 매장을 열 계획이며, 이미 터키 내 350여 개 매장 가운데 300여 개에서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 전용 코너를 따로 마련해 놓았다.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의 추정에 따르면, K-뷰티 브랜드의 전 세계 매출은 2027년 139억 달러(약 16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글의 인기에 대해서 ‘데일리메일’은 “영국인들은 한국 프로그램을 보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직접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외국어학습 어플인 ‘듀오링고’에 따르면, 9월 17일 ‘오징어 게임’ 방영 이후부터 한국어를 새롭게 배우기 시작한 이용자는 76% 증가했다. 영국의 경우, 현재 한글을 배우는 사람들 수는 전년 대비 78% 증가한 762만여 명이다. 이는 세계에서 10번째로 큰 규모다.
‘듀오링고’가 발간한 2020년 연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어는 전 세계적으로 한류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플랫폼에서 두 번째로 빠르게 성장하는 언어이자 일곱 번째로 인기 있는 학습 언어가 됐다. 이를 통해 전 세계 젊은 세대들은 언니, 오빠, 아이구, 대박,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사랑해 등의 한국말을 일상 대화로 쉽게 사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한국어는 ‘어머’라는 통계도 있었다. 실제 한국 소프트 파워의 영향력이 전 세계적으로 커지는 데 도움을 준 연령대는 1997년 이후에 태어난 MZ세대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한류 열풍이 불게 된 배경에는 지난 10년 동안 주류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스트리밍 플랫폼이 큰 기여를 했다고 분석했다. 소셜미디어와 기타 창구를 통해 콘텐츠를 직접 큐레이션하는 것을 선호하며, 전통적인 방송을 기피하는 젊은 세대의 시청자들에게 한국 콘텐츠를 접할 기회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가 아니라 한국 텔레비전 방송국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아마도 오늘날처럼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한국 콘텐츠가 인기를 끌게 된 배경에는 소셜 미디어 또한 주요 역할을 했다고도 말했다. 트위터, 틱톡, 인스타그램 등 여러 플랫폼을 넘나들면서 콘텐츠, 인사이트 또는 밈을 공유하는 팬들이 한국 콘텐츠의 인기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마지막으로 “한국 미디어 콘텐츠가 당신의 취향은 아닐지 모르지만, 서울에 기반을 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이제는 한류 붐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놀라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즐기면서 그 모든 효과에 대해 고민해 볼 때인지도 모른다”라고 제안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