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콜’ 이건희 ‘쏘나타’ 정몽구
▲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기업체 임원과 증권사 애널리스트, 일반 소비자 4천5백6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지난해에 이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세 그룹에서 모두 존경받는 기업인 1위를 차지했다. 말하자면 통합챔피언 2연패를 이룩한 것.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세 부문에서 모두 2위를 차지했다. 재미있는 것은 지난해 현대차 계열사들이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정 회장이 애널리스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는 점,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정 회장의 순위를 지난해 6위에서 2위로 끌어올렸다. 또 최태원 SK(주) 회장은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지난해까지는 순위권 밖이었지만 올해 8위로 오르면서 ‘오너 경영인 최태원’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2003년 최 회장이 SK사태 여파로 구속되면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것에 비하면 불과 1년여 만에 이미지 개선에 성공한 것이다. SK 관계자도 “최 회장이 지난 1999~2000년 대학강연을 나가던 무렵에 비하면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이미지가 크게 개선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총수들의 이미지는 그냥 생기는 것일까?
답은 ‘아니다’이다. 최근 들어 기업들은 총수 이미지관리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연 1~2회의 조사를 실시하고, 대책을 논의하며 홍보 전략을 수정하는 등 총수 이미지도 관리 시대로 접어들었다.
기업 이미지 관련 PR을 전문으로 하는 한 회사 관계자는 “총수들의 이미지는 기업 이미지에서 전이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건희 회장에겐 애니콜의 경쟁력 강한 이미지가 옮아붙고,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는 현대차 쏘나타의 성공적인 이미지가 전사되는 식이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 회장이 되기 이전에는 단순히 뚝심있는 경영인 정도였지만, 최근 현대차는 ‘품질경영’을 주창하며 현장을 찾아 세계를 누비는 정몽구 회장을 알리기에 열심이다. 대통령 옆에서 하이브리드카를 설명하고, 미국 앨라배마 현지공장을 찾아 ‘품생품사’(품질에 모든 것을 걸었다)를 강조하고 있는 정 회장의 모습에서 말이 어눌하고 터프하다는 과거의 이미지를 찾기 어렵다.
구본무 회장도 LG의 기업광고인 ‘사랑해요 LG’의 로고송 이미지가 고스란히 전이되고 있는 케이스다.
최근 들어 총수 이미지가 드라마틱하게 변했던 경우는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을 들 수 있다. 그는 2003년 SK사태가 나기 전만 해도 시카고대 경제학과 석사 출신의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젊고 활력있는 경영인이었다. 하지만 2003년 SK사태로 그가 구속되면서 그는 일대 시련을 맞았다. 2003년 9월 보석으로 나온 뒤 그의 모습은 변했다.
그는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 재계순위의 자리배치 대신 연배순으로 말석을 차지하는 예의를 지켰고, 사랑의 집짓기 모임에 나와 구슬땀을 흘리며 목공일을 하고, 가족과 함께 어울려 종교생활을 하며 가족을 중요시하는 경영인의 모습으로 자리매김을 다시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시켰고, SK(주)의 경영권을 놓고 소버린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그에게 여론을 우호적으로 돌리는 데 한몫했다.
▲ 지난해 8월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 참여한 최태원 SK(주) 회장. | ||
총수 이미지에 대한 모범 답안을 얘기할 때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4대그룹의 홍보 관계자 중 한 명은 이 회장에 대해 “이미 국가적인 인물로 부상했기 때문에 그가 정기적으로 뉴스에 등장하지 않으면 일반인들이 궁금해하는 인물이 됐다”고 평했다. 삼성그룹에서 이 회장의 뉴스 노출을 꺼려해도 막을 수 없는 지경이 됐을뿐더러 소식이 안 나오면 “이 회장에게 혹시 무슨 일이?”라는 식의 안 좋은 루머만 커진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삼성에선 이 회장에 대한 뉴스를 정기적으로 내보내는 편이다. 사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눈길이 쏠리기 전에 경영인 이건희 행보를 노출시켜 그의 말한마디 한마디를 경영 지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 이를테면 지난 겨울 ‘스키장 경영’이나 최근의 ‘밀라노 디자인 경영선언’ 같은 게 그런 예다.
이 회장의 ‘말씀 자료’를 준비하는 팀이 따로 있는 삼성 구조본은 이 회장의 메시지를 체계적으로 그룹 내에 전파하는 게 큰일 중 하나일 정도다.
하지만 정작 삼성에선 외부전문가에게 총수 이미지(PI) 작업을 맡기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그룹 중 가장 진화한 비서실이라는 평을 듣는 삼성 구조본의 노하우가 총수 이미지 관리나 리스크 관리에서도 앞서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평도 있다.
하지만 일부그룹에서는 총수 이미지 작업을 외부에 발주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 조사기관에 총수 이미지나 기업 이미지 조사를 정기적으로 발주시키는 것은 물론, 좋지 않은 일에 휘말린 기업들의 경우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전문 기관에 위기 상황 대처와 극복에 대한 컨설팅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위기 관리 컨설팅은 이미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지만 총수 이미지 관리작업의 외부 발주가 최근 늘고 있는 것은 새로운 트렌드다.
이런 작업은 여론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관료나 전문경영인,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통해 해당 경영인의 정밀한 이미지를 뽑아낸 뒤 그가 갖고 있는 자질과 능력에서 최대한의 결과치를 끌어내는 전략을 쓴다.
일반에 공개되는 사진의 촬영각도는 물론, 외부 공개행사에서 지어야 할 표정과 제스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모임에 참석할 것인지, 그 행사나 행동이 총수에게 어떤 이미지를 주게 되는지 하나하나 따져서 동선을 짜준다. 물론 이런 작업에는 해당 오너의 공감없이는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끌어낼 수가 없다.
최근 대권 승계를 눈앞에 둔 재벌 2세들도 PI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어 PI 사례는 더욱 늘 것으로 보인다.
능률협회 조사 존경받는 경영인
산업계
1.이건희 삼성 회장(1)
2.정몽구 현대차 회장(2)
3.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3)
4.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4)
5.구본무 LG 회장(6)
6.김쌍수 LG전자 부회장(11)
7.이구택 포스코 회장(9)
8.차중근 유한양행 사장(5)
9.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10)
10.정문술 미래산업 상담역(8)
일반 소비자
1.이건희 삼성 회장(1)
2.정몽구 현대차 회장(2)
3.구본무 LG 회장(4)
4.차중근 유한양행 사장(3)
5.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6)
6.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10)
7.신격호 롯데 회장(9)
8.최태원 SK(주) 회장(-)
9.김쌍수 LG전자 부회장(7)
10.이구택 포스코 회장(12)
증권사 애널리스트
1.이건희 삼성 회장(1)
2.정몽구 현대차 회장(6)
3.이구택 포스코 회장(3)
4.김쌍수 LG전자 부회장(13)
5.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5)
6.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7)
7.구본무 LG 회장(4)
8.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8)
9.김신배 SK텔레콤 사장(-)
10.박정인 현대모비스 회장(-)
※괄호안은 작년 순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