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차기주자·여권 실세 ‘걸렸다’
▲ 지난달 1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화저축은행 본사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다. 검찰은 핵심 고발내용인 불법대출과 경영진의 횡령·배임 등 개인비리뿐만 아니라 비자금 조성을 통한 금융권 및 정·관계 로비 등을 광범위하게 수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
정치권은 저축은행 부실 사태 책임을 묻기 위한 국회 청문회 증인으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전·현직 금융당국 수장들을 줄줄이 청문회에 세운다는 방침이다. 저축은행 불법 대출 사건이 대형 금융게이트로 확전될 조짐이 일면서 검찰의 사정칼날도 정·관계를 정조준하고 있는 형국이다. 검찰의 거침없는 사정 드라이브에 정관계가 초긴장 모드로 빠져들고 있는 내막을 들여다봤다.
“서민들의 삶을 힘들게 하고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금융비리를 근절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신년사와 간부회의 등을 통해 여러 차례 강조한 발언이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검찰의 금융비리 수사가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금융시장의 부정부패는 물론 금융감독기관의 내부비리까지 파헤치는 전방위 수사로 확대될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실제로 검찰은 저축은행 비리 사건에 대검 중부수를 비롯해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를 투입해 저인망식 수사를 펼치고 있다. 특히 검찰은 일부 저축은행 대주주들이 수백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여야 실세 및 거물급 정치인들에게 로비 자금으로 사용한 정황을 잡고 수사를 확대한다는 내부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사정 칼날이 서서히 정·관계로 향하고 있는 분위기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과 삼화저축은행 불법 대출사건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수백억대 불법대출 혐의로 고발된 부산저축은행을 수사하고 있는 대검 중수부는 4월 7일 박연호 그룹 회장을 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는가 하면 그룹 대주주와 주요 임원 등 10여 명에 대한 1차 피의자 조사를 마무리한 상태다. 검찰은 박 회장을 상대로 그룹 임직원들과 공모해 수백억대의 불법대출에 관여했는지 여부 및 회사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그룹 관계자들을 상대로 부산저축은행이 자기자본 한도를 초과해 특정인에 불법 대출을 하는 과정에서 박 회장이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불법대출 과정에 각종 리베이트 명목 등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는지 여부를 추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이 대전저축은행과 고려저축은행을 잇따라 인수 합병하는 과정에서 여야 실세 및 금융 당국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벌인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사정당국 일각에서는 여야 정치인과 전·현직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들이 부산저축은행 로비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는 형국이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이 2조~3조 원대에 이르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 자금이 투입될 사업의 수익성을 보고 대출해 주는 제도) 등을 이용한 무리한 사업 확장 과정에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 및 금융계 거물들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펼쳤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검찰은 금감원이나 산업은행 출신 금융관료 8명, 전직 국회의원, 교수 등이 은행 사외이사나 감사로 영입된 것과 관련해 이들이 정·관계 로비 창구 역할을 했는지 여부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일각에서는 부산저축은행 고위 임원이 야권의 차기주자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되고 있는 거물급 정치인 A 씨의 ‘스폰서’ 역할을 자임하면서 지속적으로 정치자금을 지원한 정황을 잡고 검은 커넥션 의혹을 은밀히 파헤치고 있다는 소문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수사가 급물살을 타게 될 경우 정치권 전체가 또 다시 격랑에 휩싸일 것이란 관측도 이러한 소문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삼화저축은행에 대한 검찰 수사 추이에도 정·관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삼화저축은행 불법대출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는 지난 1일 이 은행 대주주인 신삼길 명예회장을 전격 구속했다. 신 씨는 지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수백억 원을 불법대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신 씨는 또 거액을 대출해 주는 과정에서 선이자 명목으로 돈을 받아 개인적으로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해 말 신 씨와 삼화저축은행 경영진을 같은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였다. 이 은행은 또 부채가 자산을 500억 원 이상 초과하고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지도기준에 미달해 지난 1월 금융위원회로부터 영업정지 6개월의 경영개선명령을 받기도 했다.
검찰은 금감원 고발 내용을 바탕으로 신 씨가 불법 대출에 개입했는지 여부 등을 파헤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은 특히 불법대출 혐의와는 별도로 신 씨가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에 광범위한 로비를 벌이면서 은행 부실을 속여왔다는 정황을 잡고 수사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검찰은 삼화저축은행의 압수물 분석 과정에서 신 씨가 여권 거물급 정치인의 동생인 B 씨를 비롯해 정·관계와 재계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를 해온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또 신 씨가 지인들을 매개로 정·관계에 전방위 로비를 전개해 왔고, 횡령한 돈으로 조성한 비자금을 은행 구명 로비에 사용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일요신문> 취재결과 신 씨는 B 씨, 대기업 회장인 C 씨와 절친관계인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세 사람은 금감원이 삼화저축은행을 검찰에 고발한 지난해 말부터 강남의 한 퓨전음식점에서 주기적으로 만남을 갖고 대책회의 및 구명 로비 방안 등을 논의해 왔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여권의 유력 정치인 동생인 B 씨가 여권 실세들을 상대로 절친인 신 씨의 구명로비를 전개했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대기업 회장인 C 씨는 여권 핵심실세인 D 씨에게 ‘보험용’으로 정치자금을 은밀히 지원해 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C 씨가 D 씨와의 정치적 인연을 매개로 그에게 신 씨의 구명을 호소했던 정황을 포착하고 사실 관계를 파악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관계자들은 신 씨가 구속된 사실에 미뤄 B 씨와 C 씨의 구명로비는 실패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다만 검찰은 이 두 사람이 D 씨를 비롯한 여권 실세들에게 구명로비를 전개한 정황 및 관련자들의 증언이 확보된 만큼 구명로비 실체에 대한 수사를 병행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씨의 불법대출 및 횡령 의혹 사건이 여권 실세들이 연루된 구명로비 사건으로 확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특히 B 씨의 경우 여권 거물 정치인의 동생이라는 점에서 검찰 수사 추이에 따라 적잖은 정치적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여야 정치권은 저축은행 부실 사태 책임을 묻기 위한 국회 청문회 증인으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전·현직 금융당국 수장들을 대거 청문회에 세운다는 방침을 정한 상태다. 국회 정무위원회 여야 간사단은 4월 6일 ‘저축은행 청문회’ 일정과 증인 대상자를 논의하고 윤 장관과 김석동 금융위원장 등 전·현직 장관급 인사들을 증인에 포함시키기로 잠정 합의한 상태다.
따라서 전현직 금융당국 수장들을 상대로 한 청문회 정국에서 메가톤급 뇌관이 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여야 실세 및 거물급 정치인이 연루된 대형 금융게이트로 확전될 조짐이 일고 있는 저축은행을 겨냥한 검찰의 전방위 수사가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