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랩·바타비아 ‘투 트랙’ 전략, 방향성 옳지만 수익성 우려…CJ “체감할 수 있는 투자 이어질 것”
CJ제일제당은 지난 10월 29일 마이크로바이옴(장내 세균·바이러스 등 미생물) 중심 바이오 기업 ‘천랩’의 인수 작업을 완료했다. 천랩 지분 43.99%를 약 982억 원에 사들여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이로써 천랩은 CJ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천랩은 국내 최대 규모의 실물균주(5600여 개)를 보유한 바이오업체로 면역항암·장질환·신경질환 등의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전 세계 마이크로바이옴 시장 규모는 매년 7% 이상 성장해 2023년 약 130조 원까지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CJ제일제당의 천랩 인수는 ‘레드 바이오(의료·제약)’ 분야 진출로 풀이된다. CJ제일제당은 2018년 CJ헬스케어를 매각하면서 제약 부문에서 발을 떼는 듯했다. 대신 ‘그린 바이오(식품 소재·첨가물)’에 집중하면서 사료용·스페셜티 아미노산 시장에서 글로벌 1위 수준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 해양 생분해성 플라스틱인 PHA 개발 등을 통해 화이트 바이오(친환경) 사업 역시 강화하고 있다. 즉 천랩을 통해 그린·화이트·레드 바이오 등 바이오사업 포트폴리오를 완성하려는 포석이다.
CJ제일제당은 “천랩 인수는 전 세계적으로 차세대 기술로 여겨지는 마이크로바이옴의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전략적 투자”라며 “글로벌 최고 수준인 그린 바이오와 고부가가치 화이트 바이오에 이어, 레드 바이오 분야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CJ제일제당은 또 지난 8일 네덜란드 소재의 바이오 기업 ‘바타비아 바이오사이언스(바타비아)’를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바타비아 지분 75.82%를 약 2677억에 취득해 내년 1월부터 운영할 예정이다. 바타비아는 레드 바이오의 일환인 세포·유전자 치료제 위탁개발생산(CGT CDMO)을 하고 있다. 같은 날 CJ제일제당은 레드 바이오 역량 강화를 위해 사업 일체를 천랩에 양도한다고 공시했다. 양도가액은 61억 4700만 원으로, 이 역시 내년 1월에 영업 및 자산 양도가 이뤄질 계획이다.
CJ제일제당의 레드 바이오 진출에 대해 시장에서는 긍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박은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바타비아는 백신 및 벡터의 효율적 제조 공정을 개발하는 독자 역량과 자체 시설 보유가 강점”이라며 “사업 확대로 향후 나타날 가시적 성과는 이후 CJ제일제당에 새로운 가치 부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제약사업 특성상 수익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 박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새롭게 진출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성 확보에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그룹의 전반적인 투자 확대 기조와 CJ제일제당의 신규 사업분야 진출은 전사 수익성 개선 가시성을 일부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CJ제일제당의 바이오 행보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밝힌 중장기 비전과 맞닿아 있다. 앞서 이재현 회장은 지난 3일 CJ의 현 상황을 ‘성장 정체’로 규정하면서 4대 성장엔진으로 문화·플랫폼·웰니스·지속가능성을 꼽았다. 그중 ‘웰니스’에는 구체적으로 레드 바이오와 CDMO가 포함됐다. 즉 이 회장 발표 5일 만에 CJ제일제당이 레드 바이오 진출을 본격화한 셈이다.
CJ그룹 관계자는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 초점”이라며 “구성원은 물론, 고객과 투자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기업 인수·신규 투자 조치가 곧바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CJ제일제당은 내년 1월을 기점으로 천랩과 바타비아, 양축을 통해 신약 개발과 CDMO를 동시에 추진하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다만 신약 개발은 R&D(연구개발)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며, 최종 임상까지 성공 여부도 미지수라는 약점이 있다. 반면 CDMO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이후 국내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 SK바이오사이언스 등을 중심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신약 개발에 비해 안정적인 현금 유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기업의 새로운 ‘캐시카우’가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황주리 한국바이오협회 미래성장부문장은 “R&D와 제조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며 “바이오에 대한 정부 지원이 늘면서 국내 R&D 기업 수가 비약적으로 늘고, 세포·유전자 치료 개발업체도 생겼지만 그것에 비해 제조시설은 적었기 때문에 CJ도 거기에 합류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황 부문장은 “신약 개발은 성공한다는 가정 하에 출시까지 보통 10년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엑시트(투자금 회수)도 그만큼 어렵다”며 “반면 CDMO의 경우 생산시설이 완비되고 GMP(우수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 인증만 받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바이오사업이 분화되면서 핵심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CJ제일제당은 올해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CJ대한통운 제외)이 각각 4조 2243억 원, 3222억 원으로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그중 바이오사업 매출과 영업이익은 1조 442억 원, 1274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5.4%, 61% 증가했다. 특히 그린 바이오 매출은 올해 누적 3조 원을 넘길 것으로 추산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그린 바이오가 CJ제일제당의 글로벌 인프라와 연계되면서 안정적인 성과가 도출되고 있고, 친환경 플라스틱 부문은 이제 막 성과를 내고 있는데 레드 바이오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라며 “자칫 잘못하면 본사의 우수한 실적을 레드 바이오 계열사들이 디밸류에이션(평가절하)하는 모습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균형감 있는 리스크 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화이트 바이오 사업 확장에도 귀추가 주목된다. CJ제일제당은 레드 바이오에 앞서 지난 3월 화이트 바이오 부문을 CIC(사내 독립 기업) 체제로 개편하고 초대 수장으로 화학 전문가인 이승진 전 롯데BP화학 대표를 영입하는 등 조직을 확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화이트 바이오가 별도법인으로 분사될 가능성도 언급됐다. 다만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전혀 정해진 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앞의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바이오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 그린·화이트·레드 각각을 확대하려는 것이지, 어느 하나를 도외시하거나 비중을 줄이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며 “지금처럼 그린 바이오를 중심에 두되 화이트 바이오 CIC와 레드 바이오의 두 계열사를 통해 각각의 성장 동력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또 레드 바이오의 수익성과 관련해서는 “원천기술 개발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자명한 일이고, 그래서 더욱 투자가 필요한 것”이라며 “인수한 CDMO 기업의 경우 성장 가능성도 높지만, 기존에 거래처가 있고 안정적으로 실적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R&D에만 치중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성욱 기자 nmd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