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들 ‘비용이 문제더냐’
그런데 최근 이를 악용해 기네스사를 사칭한 국내의 한 사단법인 대표가 경찰에 구속된 일이 벌어졌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기네스사 한국지사를 사칭하며 지자체와 기업체로부터 거액의 부당수익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기네스북 등재를 두고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지난 3월 17일,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한국기록원 대표 김 아무개 씨(42) 등 총 3명을 사기 혐의로 검거했다. 김 씨는 곧바로 구속 처리됐고, 함께 검거된 기록관리실장 이 아무개 씨(42)와 사무총장 민 아무개 씨(47)는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008년 3월경부터 영국의 기네스사 상호를 사칭해 지자체와 기업들을 상대로 총 5억여 원의 부당수익을 챙겼다. 더불어 기네스사 본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입장에서 신세계백화점과 새만금사업단 등으로부터 로고 사용료 5700만여 원까지 받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들은 2001년 기네스사 한국 지사가 기록인증 남발로 문을 닫자 2005년 행정안전부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아 유사단체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기록원에 기네스북 등록 대행 업무를 맡긴 지자체와 기업들은 적지 않았다. 강원도 양구의 ‘최고가 해시계’와 울산 울주군의 ‘최대 크기 옹기’, 부산 사하구의 ‘최대 바닥 분수’, 광주 광산구의 ‘최대 크기 우체통’, 강원도 영월의 ‘최장 길이의 섶다리’, 경북 예천의 ‘세계 최초의 재산 있는 소나무’ 등이 대표적이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이들은 실제 기네스북 등재에 필요한 비용인 800만 원보다 많게는 20배 이상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진행 중인 경찰 수사 내용에 따르면 피해 지자체와 기업들은 한국기록원에 큰 사기를 당한 셈이었다.
하지만 한국기록원 측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기자와 통화한 기록원의 한 관계자는 혐의 사실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극구 부인했다. 그는 “경찰이 주장하고 있는 기네스사 사칭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리는 지자체나 기업과의 계약 당시 필히 대행사임을 밝혔다. 지사라고 속인 적이 없다. 다만 예전에 직원의 실수로 기네스사 로고가 들어간 명함을 판 적이 있는데 바로 시정 조치했다. 모든 것이 오해다.”라고 주장했다.
‘기네스북 등재에 들어간 실제 비용(약 800만 원)에 비해 대행수수료가 지나치게 비싼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우리가 각 지자체나 기업에 내민 계약서의 비용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싼 편이다. 우리는 등재비용뿐 아니라 동영상 제작 등 홍보·행사 비용과 해외 출장비용도 포함된 것이다. 로고사용료 역시 우리가 받긴 했지만 영국에 정상적으로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비용과 관련한 계약사항을 볼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현재 가지고 있지 않다. 외부에 보여줄 수는 없다”고 말끝을 흐렸다.
취재결과 한국기록원의 기네스북 등재비용은 각 지자체마다 큰 차이가 났다. 경북 예천의 ‘세계 최초 재산 있는 소나무’의 경우 1600만 원이었고, 세계 최대 규모의 방조제 부분인 ‘새만금 방조제’의 경우는 1억 8500만 원에 이르렀다. 똑같은 기네스북 등재업무인데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금액은 제각각 이었다. 비용책정의 일관성이 결여돼 보였다.
그렇다면 한국기록원과 기네스북 등재업무를 진행한 지자체들의 반응은 어떨까. 대부분 실제 비용과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계약비용에 대해 놀랍게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최대 크기의 우체통’을 한국기록원을 통해 기네스북에 등재한 광주 광산구 관계자는 “현재 우체통은 기네스북에 등재된 상태다. 출장비나 숙박비 등록수수료 등 여러 항목으로 작성된 견적서를 받았지만 비용에 대한 상세한 검토는 사실상 없었다”고 답했다.
이들에게 가장 많은 비용을 지출한 새만금 사업단 역시 “우리는 피해본 것 없다. 정상적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답했다. 이들에게 많은 비용을 건낸 다른 지자체 관계자들 역시 비슷한 답변을 늘어놨다. 여러 지자체와 계약을 맺은 한국기록원 대표인 김 씨가 부당수익을 챙긴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었지만 정작 피해자는 피해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이 사건은 현재 경찰조사가 진행 중이다. 아직까지 김 씨가 부당수익을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챙겼는지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다. 기네스사 사칭에 대해서도 한국기록원 측은 그런바 없다며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다. 따라서 김 씨의 부당수익 수수와 기네스사 사칭 혐의에 대한 진위 여부가 드러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명확한 혐의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지자체들의 무분별한 기네스북 등록 경쟁이 화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많다. 지자체들의 지나친 경쟁주의적 전시행정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네스북 등재를 위해 지자체들은 국민들의 혈세를 들여 기념물 제작에 나서고 있고 등록비를 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과 관련한 지자체들 대부분은 등록비에 대한 별다른 조사 없이 문제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특히 일부 지자체는 한국기록원을 통해 기네스북에 등재된 경우도 있는 만큼 부당하게 혈세가 들어갔는지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