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력 계열사 매각하고 한진관광·칼호텔네트워크는 동행…시너지 효과 물음표
#한진칼의 한진관광 지원 왜?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은 최근 한진관광에 100억 원 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한진관광은 한진칼이 지분 100%를 소유한 여행사로 최근 코로나19 영향으로 재무 상황이 악화됐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한진관광은 2020년 115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2020년 말 기준 부채비율은 1429.89%에 달한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한진관광의 경영 사정이 안 좋지만 내버려 둘 수는 없어서 유상증자를 진행한 것”이라고 전했다.
한진칼의 한진관광 지원은 최근 행보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간 한진그룹은 비주력 계열사에 대해 지원이 아닌 정리를 택해왔기 때문이다. 실제 한진관광은 최근 몇 년간 적자를 기록 중인 데다가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 않다. 앞서 한진그룹은 지난해 대한항공 기내식 사업부(현 대한항공씨앤디서비스)와 제동레저를 매각했고, 왕산레저개발 매각도 추진했다. 왕산레저개발의 경우 칸서스자산운용을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협상을 진행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해 무산됐다.
한진그룹이 비주력 계열사를 매각하는 이유는 2020년 5월 채권단에 제출한 자구안 때문이다. 당시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대한항공에 1조 2000억 원을 지원했다. 이에 대한항공은 1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 송현동 부지 매각, 계열사 매각 등의 자구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그룹 내부에서는 한때 한진관광 매각도 고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진칼은 앞서 2020년 6월에도 한진관광에 80억 원 규모 유상증자를 진행했고, 이후 언론을 통해 추가 유상증자 계획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한진관광을 원하는 업체가 없어 매각이 쉽지 않고, 재무는 갈수록 악화해 결국 다시 지원을 했다는 것이 그룹 측의 설명이다.
#같은 듯 다른 처지 칼호텔네트워크
한진칼이 지원하는 또 다른 계열사는 칼호텔네트워크다. 한진칼은 2020년 11월 칼호텔네트워크에 1년 만기로 200억 원을 대여했고, 최근 대여금 만기를 1년 연장했다. 올해 9월 말 별도 기준 한진칼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638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00억 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칼호텔네트워크의 지난해 매출은 545억 원으로 대한항공 매출(2020년 7조 6062억 원)의 1%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칼호텔네트워크와 한진관광의 상황은 다소 다르다. 칼호텔네트워크의 2020년 말 기준 부채비율은 112.07%로 한진관광에 비하면 재무 상황이 양호하다. 뿐만 아니라 스타로드자산운용과 제주칼호텔 매각 협상도 진행하고 있다. 매각이 완료되면 유동성에 여유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칼호텔네트워크가 수년째 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장기적인 대책은 필요한 상황이다.
대한항공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코로나19로 업황이 어려운 상황에서 한진관광과 칼호텔네트워크를 매입할 곳은 찾기 어렵고, 그나마 호텔은 부동산 가치 때문에라도 일부분이나마 협상이 가능했다”며 “한진그룹 입장에서도 채권단이 자구안을 요구해서 계열사를 대거 매각한 것이므로 안 팔리는 매물을 억지로 매각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진그룹도 당장 한진관광이나 칼호텔네트워크의 매각 계획은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대한항공이 자구안을 대부분 이행해 현금이 급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3월 3조 3160억 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했고, 진에어 역시 지난해 1050억 원 규모 유상증자를 진행한 데 이어 최근 1238억 원의 유상증자를 추가로 진행했다. 한진칼은 유상증자 과정에서 대한항공에 8637억 원, 진에어에 1083억 원을 각각 투입했다.
대한항공은 유상증자를 통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쓰일 1조 5000억 원을 제외하고도 1조 8000억 원 이상의 현금을 손에 넣었다. 한진그룹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관련해서도 각국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만 통과하면 금전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관련기사 대한항공, 베트남으로부터 아시아나항공 인수 관련 기업결합 승인 받아). 즉, 지난해와 달리 어느 정도 자금 여유가 생겼고, 비주력 계열사를 지원할 여력도 되는 상황이다.
또 대한항공은 올해 1~3분기 7142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등 실적도 회복세에 있고, 향후 전망도 좋다. 방민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대한항공에 대해 “4분기 평균 운임이 2020년 4분기 대비 30%가량 상승할 것으로 보이며 물동량 역시 10% 이상 증가할 전망”이라며 “글로벌 경기 회복세와 미국의 낮은 재고율 등을 감안할 때 내년도 항공 화물 시장은 연착륙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평가했다.
#한진관광의 미래는?
일부 항공사들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면서 여행·호텔 계열사를 설립하곤 한다. 일례로 제주항공은 2018년부터 ‘홀리데이인 익스프레스 서울 홍대’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 하이난항공을 계열사로 둔 HNA그룹도 한때 하이난여행, 힐튼호텔 등을 계열사로 뒀다. 항공 업계 관계자는 “항공사가 전세기를 띄울 때 여행사가 고객을 모으고, 호텔이 숙박시설을 제공하는 등의 상품을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HNA그룹의 경우 기대만큼의 투자 효과를 보지 못했고, 결국 경영난에 빠지면서 현재 파산 절차가 진행 중이다. 항공 업계 다른 관계자는 “제대로 된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외국인 관광객을 모집해야 하는데 단순 계열사 상품을 연계하는 것만으로는 인기를 끌기 어렵다”며 “여행사나 호텔의 경쟁력이 부족하면 오히려 회사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라고 전했다.
한진관광은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인 2019년에도 매출 494억 원, 영업손실 23억 원을 기록했고, 칼호텔네트워크도 매출 1110억 원, 영업손실 33억 원을 거뒀다. 코로나19가 종식된 후에도 두 회사의 흑자 전환은 장담할 수 없다. 그나마 칼호텔네트워크는 제주칼호텔 매각으로 유동성을 확보할 예정이지만 한진관광은 매각할 자산도 많지 않다. 적자가 이어지면 한진칼의 지원을 다시 받아야만 한다.
한편에서는 한진관광이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시대에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적지 않은 중소 여행사가 폐업해 경쟁사가 줄었고, 보복소비 심리로 여행객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행 업계 관계자는 “내년은 본격적인 해외여행 수요 회복이 맞닿은 시기”라며 “급증하는 수요를 위해 항공권과 호텔 등의 공급을 원활하게 받아올 수 있는 여행사는 지극히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인지 한진관광은 최근 실적 회복을 위해 여러 상품을 내놓고 있다. 한진관광은 지난 11월 1일 여행 플랫폼 ‘여담(여행을 담다)’을 정식 오픈했고, 내년 1월에는 태국 치앙마이 겨울 골프 전세기 여행 상품을 개시할 예정이다. 앞서의 한진그룹 관계자는 “여행사들이 하나둘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진관광도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