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도전 ‘로코’ 완벽 접수…발재간 댄스 애드리브로 ‘조정석 후계자’ 수식어 얻어 영광
“많은 분들이 그러시더라고요. 전작이 끝나고 ‘이 다음에 네가 잘하는 거 할 거지?’ ‘원래 잘하는 스타일로 하면 또 잘 되겠다’라고. 그런데 사실 전작들도 제가 잘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저 역시 ‘저는 이걸 잘합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요. 저는 항상 작품을 선택할 때 그 순간, 그 타이밍에 제가 이거 진짜 재미있겠다고 생각해서 선택하게 돼요. 어딘가 높은 위치에서 이 방향성을 가지고 가야겠다고 선택하고 그런 건 아닌 건 같아요. 그러지 않아야 작품이 잘 되든 그렇지 않든 후회 없는 선택이 되는 거거든요.”
그런 우려들이 그야말로 기우였다는 걸, 김민재는 최근 종영한 KBS2 수목드라마 ‘달리와 감자탕’으로 확실하게 입증해냈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 속 ‘코미디’를 담당하고 있는 남주인공 진무학 역으로 전작의 그림자를 씻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무지, 무식, 무학’의 3무(無)를 갖췄지만 돈 냄새 맡는 코만큼은 확실한 무학이 자신과 극과 극에 놓여있는 여주인공 김달리(박규영 분)를 만나 로맨스와 코미디를 오가며 그리는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헤어 나올 줄을 몰랐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를 제가 처음 접하게 된 거잖아요. 아무래도 부담감이 있었죠. 코미디라고 하면 웃겨야 할 것 같은데 저는 사실 웃긴 사람도 아니고 그런 능력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진무학이란 캐릭터 자체에 집중해서 연기를 하자는 마음으로 임했더니 피식거릴 수 있는 장면이 나온 것 같아요(웃음). 코미디라는 장르가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던 게, 애드리브 자유도가 굉장히 높더라고요. 연기하는 입장에선 정말 너무 재미있었어요.”
‘달리와 감자탕’이라는, 한 번 들어서는 내용을 상상하기 영 쉽지 않은 작품에 출연을 결정하게 된 것도 무학이란 캐릭터에 애정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거칠고, 투박하고, 무식하지만 표면적으로 멋있고 잘난 것보단 뻔하지 않았다는 게 김민재가 느낀 무학의 매력이었다. 그런 매력이 인간 김민재에게까지 스미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실 처음엔 무학과 저는 1%도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저는 ‘똥’이라는 단어도 뱉지 않거든요(웃음). 그런데 무학으로 8개월을 살다 보니 김민재라는 사람에게도 진무학 같은 면이 생긴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성격이 바뀌듯이요. 무학이는 심플하면서도 결단력 있고, 단호하면서도 파이팅 넘치는 그런 에너지가 너무 좋은 친구예요. 무학을 연기하며 8개월 동안 아침에 활기차게 일어나고 촬영장에 들어갈 때도 소리 한 번 지르고 들어가고 그랬어요. 그런 습관들이 저를 이렇게 바꿔준 것 같아요. 무학이의 에너지를 제가 받고 있었다고 할까요?”
김민재가 진무학이 되고, 진무학이 김민재가 되면서 현장은 카메라가 돌아가든 그렇지 않든 어딜 가나 웃음판이었다. 특히 11월 4일 방영된 14회에서 보여준 ‘발재간 댄스’는 김민재로 하여금 ‘조정석을 잇는 몸 잘 쓰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게 만들었다. 바닥에 기름칠이라도 한 것처럼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그를 보고 함께 한 배우들은 물론 스태프들까지 웃음을 참아야 했다고.
“14회 춤이 애드리브였는데 너무 웃겨서 NG가 많이 났어요(웃음). 집에서 준비해 간 건 아니고 그냥 그 자리에 갔을 때 저와 원탁(황희 분), 달리 셋이 모이면 너무 재밌다 보니까 그 애드리브가 돌발 행동으로 나왔던 것 같아요. 그걸 시청자 분들이 또 재미있게 봐 주셨더라고요. 그때 박규영 배우님의 웃음은 정말 ‘찐’ 웃음이었어요. 스태프 분들도 달리 컷을 딸 때 그 웃음이 터지면 안 되니까 저보고 제발 자제해 달라고(웃음). 그래서 메이킹 영상 보면 제가 정말 조심조심 연기하는 걸 보실 수 있어요.”
상대역인 박규영과 김민재는 2018년 영화 ‘레슬러’에서 한 번 마주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서로 맞붙는 신이 없어 많은 친분을 쌓진 못했지만 이번 ‘달리와 감자탕’에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급속도로 가까워졌다고 했다. 연인을 연기하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스킨십 신에서도 서로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었다고. 앞선 인터뷰에서 김민재를 “단단한 배우”라고 칭찬했던 박규영을 향해 김민재도 칭찬 품앗이를 주거니 받거니 이어나가며 탄탄한 친분을 드러냈다.
“저도 잘 몰랐는데 저희가 키스신이 많더라고요(웃음). 항상 키스신을 찍을 때 서로 조심스럽고 배려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신이 예쁘게 나오는 각도를 안다고 말씀 하시는데 그것도 같이 의견을 나누면서 각을 맞춰가며 찍어서 그렇습니다(웃음). 또 박규영 배우님이 달리를 정말 예쁘게 표현해주시기도 했고요. 달리가 감정이 굉장히 오락가락하고 후반부에 수많은 감정신을 보여주는데 ‘나라면 저 감정신을 다 소화해낼 수 있었을까. 달리를 끝까지 잘 지킬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 책임감이 강한 배우예요. 저한테 단단하다고 말씀해주셨지만 사실 진짜 단단한 건 박규영 배우님이죠.”
한 달 보름 정도 남은 2021년을 두고 김민재는 남은 기간 동안 무학을 고이 보내는 일을 집중하려 한다고 했다. 나이보다 속 깊은 모습을 보여줘 왔던 그가 이전에 비해 훨씬 밝아지고, 심지어 인터뷰 도중에 툭툭 농담을 던지는 모습으로까지 변한 데엔 무학의 영향이 컸다. 이미 자신의 안에 자리 잡은 무학을 온전하게 보내줘야 다음 작품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또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을 거라는 게 김민재의 이야기다. 이번 작품으로 코미디 배우로서도 활동 반경을 넓힌 만큼 차기작에서의 그의 연기가 기대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코미디라는 장르를 제가 처음 해 보고 너무 좋은 작품,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재미있었어요. 어떤 상황을 다채롭게 채울 수 있는 그런 장르인 것 같아요. 이전에는 코미디는 사람을 웃겨야만 한다는 부담이 많이 가는 장르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그 장르에 한 발자국 정도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덕분에 다음 코미디 장르에는 조금 더 거리낌 없이 다가설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다음 작품에서는 ‘스물’ 같은 버디 극이나 로맨스가 빠진 정통 코미디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