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김병준 임명 불만” 중론…윤석열, 김종인 영입과 선대위 구성 분리 ‘투트랙’ 가동
하지만 제1야당 대선 후보로 정치 초보가 등장하다보니 훈수가 난무하는 상황이다. 초보운전자에게 족집게 연수를 시켜주겠다면서 운전강사들이 쇄도, ‘사공 많은 배는 산으로 간다’는 격언을 소환해내고 있다. 당내에 극심한 혼란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종인에 흔들리는 윤
국민의힘은 11월 5일 경선을 끝낸 이후 선거대책위 출범을 둘러싸고 지루한 논쟁만 벌였다. ‘윤석열호’를 이끌 총괄선대위원장으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선임하는 건을 두고 최종 결론을 내지 못한 것은 물론, 볼썽사납게 다투는 모습을 곳곳에서 노출시켰다.
윤석열 후보 측과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경계수위를 넘어서는 어휘를 사용하면서 극한 감정 대립을 보였다. 김 전 위원장은 11월 25일 서울 광화문 그의 사무실에서 ‘윤석열 대선 후보 측이 김 전 위원장에게 조건 없는 합류 선언이 없으면 끝이라고 최후통첩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 기자들이 의견을 묻자 “주접을 떨어놨던데…”라고 언급, 윤 후보 측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그 뉴스 보고 ‘잘됐다’고 그랬다”면서 선대위 합류에 대해 거부 의사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앞서 윤 후보는 11월 24일 서울시내 한 식당에서 김 전 위원장과 만찬을 하면서 담판을 시도했으나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회동을 마친 후 윤 후보는 김 전 위원장의 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대위원장 합류에 대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발언, 합의에 실패했음을 시인했다.
김 전 위원장은 만찬 직후 선대위 참여에 대해 “아직은 거기에 대해 확정적인 이야기는 안 했다. 내가 왜 지금과 같은 입장을 견지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후보에게 했다”고 말했다. 입장 차가 커서 합류가 어렵다는 예기로 읽혔다. 결국 국민의힘은 11월 25일 당 최고위원회를 열어 김 전 위원장 자리는 일단 남겨 놓고 실무를 책임질 6개 총괄본부장 명단만 공개했다. 선대위 진용이 완전히 꾸려지지 않은 채 일단 개문발차한 셈이다.
김 전 위원장이 총괄선대위원장 취임을 두고 윤 후보와 갈등을 빚는 이유는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 인선에 대한 불만으로 보인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 시각이다. 교수 출신으로 정책과 메시지 발신에 능한 김병준 위원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김종인 전 위원장과의 역할 충돌이 벌어지고, 결국 이는 ‘김종인에 대한 견제’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김 전 위원장 입장에서는 나이도 열 살 이상 어리고(김종인 전 위원장은 1940년생, 김병준 위원장은 1952년생이다) ‘박근혜 문재인’ 두 사람의 대통령까지 탄생시킨 자신의 경력 등을 감안할 때 김병준 위원장과 동급 위치에 세워두는 결정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말도 흘러나온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이를 확인해주는 말을 했다. 이 대표는 11월 23일 유튜브 채널 ‘팩폭시스터’에 출연, “김종인 전 위원장이 상임선대위원장 보직에 이견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왜 이 분(김병준)이 상임선대위원장이냐는 불만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공방이 가열되는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도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11월 23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MBN 보고대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김종인 전 위원장 선대위 합류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모르겠다. 그 양반 말씀하는 건 나한테 묻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양반’이라는 단어는 하대하는 투의 어휘인데 이 말을 함으로써 김 전 위원장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털어놨다는 해석도 나왔다. 국민의힘 한 현역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정부가 세금 퍼주기 등을 통해 극명하게 폐해를 보여준 것처럼 국가가 전권을 쥐고 국민들의 작은 일상에까지 관여하는 방식의 국가주의에서 탈피, 국민 개개인의 자유를 회복시키는 상식적인 나라를 만들고자 한다. 이를 잘 뒷받침해주는 이론가가 김병준 위원장이어서 모신 것이고, 호남과의 화합을 위해 민주당 출신 김한길 전 대표를 영입한 것인데 김종인 전 위원장이 이를 곡해해서 자꾸만 ‘1타 강사는 나 혼자뿐’이라는 식으로 얘기하니 답답해하고 있다.”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대선을 여러 번 치러봤는데 이번처럼 대선 후보 흔들기가 심한 경우는 처음이다. 0선 후보라 1타 강사를 자임하는 사람들이 강사로 나서 가르치려드는 것”이라며 “대선 후보가 당헌상 당무우선권을 갖고 지휘를 해야 함에도 김종인 전 위원장은 바깥에서, 이준석 대표는 안에서 보이지 않는 흔들기를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경고등 켜진 제1야당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끝난 뒤 11월 중순까지만 해도 경선 컨벤션 효과가 나타나면서 윤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10%포인트 이상 격차가 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연이어 발표됐다. 민주당이 발칵 뒤집어지고 선대위 전면 쇄신 목소리가 나온 것은 물론, 이재명 후보는 자신의 주특기 중의 주특기인 전국민 재난지원금마저 거둬들였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지기도 힘든 싸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신감이 역력하게 감지됐다.
하지만 선대위 구성을 둘러싸고 지루한 집안싸움이 계속되자 두 후보 간 격차는 다시 오차범위 이내로 좁혀졌다. 국민의힘 후보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갈등 피로감이 생겨난 것으로 분석된다. 경고등이 켜지면서 각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당내에서는 무엇보다 선대위 인선 과정에서 싸움만 보여주고 참신한 새 인물을 등장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한목소리로 내놓고 있다.
임승호 대변인은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선대위 구성 과정이 진정 당원과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있나”라며 “경선 이후 우리 당은 줄다리기와 기싸움으로 시간을 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신인규 상근부대변인 역시 페이스북에서 “지금 비치는 선대위 모습은 이미 선거는 다 이긴 듯한 모습이고 전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김재원 최고위원도 라디오 방송에 나가 “대통령 후보의 동정이 아니라 김 전 위원장의 동정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최승재 의원 등 일부 초선들은 파열음이 커진 11월 25일 김 전 위원장 사무실을 찾아 선대위 합류를 직접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자칫 후보 책임론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김 전 위원장 방문을 일단 접었지만 초선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나섰을 만큼 당 내부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있다.
실제로 민주당은 김종인 전 위원장을 둘러싼 국민의힘 선대위 구성 과정에서의 내홍과 관련, 국민의힘을 ‘구세력’으로 몰아가는 프레임 씌우기 전략을 적극 가동하고 있다.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11월 25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가 윤 후보를 지목, “검사는 과거를 보는 사람”이라며 “소위 3김(김종인 김병준 김한길)과 같은 올드보이들을 귀환시키려고 하는, 그리고 그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보는 그런 리더십이 이번에 드러나고 있다”고 직격했다.
#윤, 투트랙 전략 시동
윤석열 후보는 김 전 위원장 영입을 위해 노력하되, 긴 시간을 끌면서까지 매달리지는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놓은 것으로 보인다. 자타가 공인하는 ‘킹메이커’ 김 전 위원장을 모셔오려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불협화음이 생긴다면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연장선에서 김 전 위원장 영입과 선대위 구성작업을 분리, 투트랙으로 가져가면서 위험을 최대한 줄인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윤 후보는 상대인 이재명 후보가 이미 전국을 다니며 선거운동을 하는 상황에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 실제로 윤 후보는 11월 25일 최고위에서 6개 선대위 총괄본부장과 대변인 등 인선안을 추인 받은 뒤 “선거운동이 더 지체돼서는 곤란하고 1분 1초를 아껴가며 우리가 뛰어야 할 상황”이라고 밝혔다. ‘원톱’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유력시되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합류를 결정짓지 못했지만 더 이상 선대위 구성을 늦출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윤석열 후보는 “선대위 구성은 한 번에 전부 마무리해 발표하기보다 일단 당에서 출발하는 선대위 조직을 먼저 구성해나가면서 외부 영입 인사는 순차적으로 삼고초려를 해서 모시고 최고위에 부의해 순차적으로 발표하는 식으로 하겠다”고 부연했다.
이양수 선대위 수석대변인도 이날 최고위 이후 기자들과 만나 ‘김종인 전 위원장이 확답을 주기 전까지 추가 선대위 인선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렇진 않고 추가 인선과 김종인 거취는 별도로 이해해 달라”고 했다. 김 전 위원장 영입과 다른 선대위 참여 인사들을 분리하는 투트랙 인선을 진행할 것이라는 의미다.
윤 후보 측은 인맥을 총동원해 김 전 위원장을 설득하겠지만 ‘만약의 사태’에도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위원장 설득에 실패, 선대위 합류가 불발되더라도 윤 후보의 영입 전략에 잘못이 있었다는 ‘후보 책임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윤 후보 경선을 도왔던 국민의힘 한 현역 의원의 말이다.
“명분은 윤 후보가 갖고 있다. 대화합하는 차원에서 노장청을 어우르는 용광로 선관위를 계획했지만 김 전 위원장이 여러 이유로 좋은 그림을 거부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지 않느냐. 2017년 대선 직전에 민주당에 몸담고 있던 김 전 위원장이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와 각을 세우며 당을 뛰쳐나오는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가 ‘나를 따르라 식의 (김종인) 리더십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일침을 김 전 위원장에게 가한 바 있다. 이번에도 만약 나쁜 결과로 귀결된다면 국민들은 민주당 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김 전 위원장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