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방역지원금 철회 이어 정책 후퇴성 발언…“여론조사 꽁무니만 쫓아” 비판도
이재명 후보에게 국토보유세는 전매특허와도 같았다. 대중에게는 기본소득이 가장 널리 알려진 정책이지만 사실 기본소득은 토지 개혁을 통한 부산물로 보는 편이 적절하다. 이 후보의 진짜 무기는 국토보유세를 필두로 한 부동산 불로소득의 근절과 자산 불평등의 해소에 있었다.
우리나라는 유독 토지의 지가가 높고 소유도 편중돼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의하면 한국의 2017년 GDP 대비 지가는 4.30으로 주요 선진국인 미국(1.60), 캐나다(1.86), 프랑스(2.54), 독일(1.25), 일본(2.15)에 비해 최대 3.4배에 달한다.
토지 소유의 편중도 심하다. 2014년 가액 기준으로 개인 토지 소유자 상위 10%가 전체 개인 소유지의 64.7%를, 법인 토지 소유자 중 상위 1%가 전체 법인 소유지의 75.2%를 소유하고 있었다. 반면 2012년엔 40.1%의 세대가 토지를 한 평도 소유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토지)의 양극화는 극심하지만 보유세의 실효세율은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그러다 보니 열심히 일하고 사업하기보다 부동산을 사서 임대료를 받거나 가격이 오르면 되파는 편이 이익을 내기에 훨씬 유리하다. 개인과 기업이 자기계발과 투자, 혁신보다 부동산을 사는 것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토보유세는 부동산으로 인한 불로소득을 환수해 토지배당 등의 형태로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토지를 많이 소유한 이들은 세금을 많이 내고 토지가 없는 국민은 내지 않는다. 그래서 국토보유세는 부동산 투기를 타개하기 위한 해법 중 하나로 꼽혀왔다.
이재명 후보는 과거 국토보유세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2018년 11월 21일 “초등학생의 꿈이 건물주라고 한다. 희소한 국토 자원이 지나치게 특정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대한민국은 부동산 공화국이 됐다”며 “부동산은 헌법에도 표현된 것처럼 우리 모두의 것이다. 부동산으로 인한 불로소득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2019년 3월 8일 더불어민주당-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에서는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가 돼야 하는데 이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병폐가 바로 부동산 불로소득이다. 국토보유세를 당론으로 채택하는 논의만 해도 이 문제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길이 될 것”이라며 당시 이해찬 대표에게 국토보유세 당론 채택을 요청하기도 했다.
올해 7월 6일에도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라면 일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이 너무 광범위하게 퍼진 것이다. 부동산이 투기 자산화되는 것을 막는 문제가 정말 중요한 정책적 과제”라면서 “비필수 부동산에 대한 세금 인상을 국민들이 고통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문제인데, 이게 징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공동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조세 부과 혜택을 나도 받는다고 생각하게 하면 조세 저항은 매우 적어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국토보유세다”라고 했다.
이처럼 국토보유세는 이재명 후보의 지사 시절 도정 철학과 함께했다. 부의 불평등을 해결하려던 시도에 무주택 서민, 노동자, 저소득 청년들은 특히 많은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는 11월 29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되면 바로 국토보유세를 추진할 것이냐는 질문에 “국토보유세는 국민들의 동의를 얻는 전제로 추진할 것이고, 국민들이 반대하면 안 한다”고 했다.
11월 24일 YTN의 여론조사 결과 국토보유세가 부적절하다는 응답(55%)이 적절하다는 응답(36.4%)보다 높게 나오자 빠르게 국토보유세에 대한 입장을 다듬은 것으로 보인다(국토보유세 여론조사는 YTN이 리얼미터에 의뢰, 2021년 11월 22일~23일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1명 대상으로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자동응답 전화 조사(ARS)로 진행.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관위 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토지에 대한 강력한 과세가 부동산 투기를 잡고 노동 의욕을 고취할 수 있다고 공언하던 때와는 다소 달라진 태도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정책적 유연성과 절차적 민주주의를 중시한 것”이라고 했지만, 야당에서는 “주요 공약을 뒤집는 불안한 후보”라는 논평이 나왔다. 최근 종합부동산세 확대로 납세자들의 반발이 심상치 않자 국토보유세 카드를 슬그머니 집어넣으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지금까지 국토보유세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던 기본소득당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기본소득당 오준호 대선 후보는 “이재명의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손잡고 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을 시가 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높였습니다. 선거를 앞둔 감세 잔치로 부동산 보유자들은 즐겁고 월세 생활자들은 허탈하며 국가 과세 기반은 약해졌습니다. 여기에 국토보유세 공약마저 거둬들인다는 건 부동산 보유자의 저항을 이길 정부는 세상에 없다고 광고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했다.
오 후보는 “기본소득도 슬금슬금 지우고 차별금지법도 주저주저하고 이제는 국토보유세까지. '이재명은 합니다'라던 이재명 후보, 다음엔 무엇을 안 하시렵니까?”라고 쏘아붙였다.
양자 대결 구도가 짜인 후 민주당은 교착 상태에 놓인 지지율에 고민이 많았다. 국면 전환을 위해 이재명 후보를 대표하지만, 반발도 만만찮던 공약에 손을 대는 방향을 택한 거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전 국민 방역지원금 철회와 국토보유세 안 한다는 발언이 나왔을 거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매운맛 이재명이 점점 온건하게 다듬어지는 과정에서 선명성과 장점들을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도 들린다. 한 관계자는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던 추진력은 온데간데없고 여론조사 꽁무니만 쫓는다. 대선의 중요성은 이해하지만 이게 과연 맞는 방식인지 의문이 든다”라고 했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