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모 대표 야심작 ‘시즌’ 후발주자 ‘쿠팡플레이’에도 밀려…투자 전략 수정 목소리
#미래 방향의 핵심은 콘텐츠라더니…
시즌은 구현모 대표의 핵심 사업 중 하나다. 구 대표는 지난해 3월 취임한 이후 통신기업(텔코)에서 디지털 플랫폼 기업(디지코)으로의 전환을 미래 방향성으로 설정했다. 이 같은 로드맵의 핵심으로 미디어 콘텐츠 사업을 제시했다. 올해 1월에는 KT스튜디오지니를 설립해 콘텐츠 투자와 기획, 제작, 유통까지 아우르는 미디어 밸류체인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청사진에 맞게 사업구조도 개편했다. 지난 8월 KT의 시즌 사업부를 전문법인 ‘KT시즌’으로 분사하고, 지난 11월 스튜디오지니의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이로써 시즌 아래 있던 지니뮤직(음원 플랫폼)→밀리의서재(전자책 구독)까지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스튜디오지니는 이밖에도 스토리위즈(웹소설·웹툰 플랫폼), 미디어지니(전 현대미디어)를 자회사로 두고 있으며, 스카이라이프TV 지분도 22% 확보해 KT 콘텐츠 사업을 총괄하게 됐다.
최근에는 실탄을 채웠다. 지난 9월 KT스튜디오지니에 유상증자 방식으로 1750억 원을 추가 투자했다. 설립 이후 2278억 원을 출자했다. 스토리위즈를 통해 발굴한 원천 IP(지적재산권)를 중심으로 자체 제작하거나 국내 제작사들과 협업해 연간 20여 개 드라마를 제작해 선보이고, 2025년까지 1000여 개의 IP 라이브러리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구현모 대표의 야심찬 포부와 달리 성적표는 초라하다. 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시즌의 10월 월간 활성이용자수(MAU)는 185만 명으로 여전히 200만 명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증가세도 경쟁사에 뒤처진다. 지난 2월(168만 명)보다 10%가량 늘었다. 경쟁업체들의 10월 MAU는 △넷플릭스 1288만 명 △웨이브 479만 명 △티빙 377만 명 △쿠팡플레이 272만 명을 기록했다. 넷플릭스와 웨이브가 각각 2월보다 28.7%, 21.3% 증가했다. 특히 티빙과 쿠팡플레이는 각각 42.3%, 318.5% 증가하며 시장 내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시즌의 부진을 두고 관련 업계는 부족한 콘텐츠 경쟁력을 그 배경으로 꼽는다. 시즌은 최근 자체 영화 '어나더레코드', 드라마 '크라임 퍼즐'을 내놨다. 그러나 시즌 신규 가입자 유치로 이어지진 못했다. 콘텐츠 라이브러리 규모가 절대적으로 작고, 킬링 콘텐츠도 부재하다는 평가다. 차별화 포인트도 없어 기존 IPTV를 형태와 이름만 바꿔 서비스를 운영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
경쟁사의 경우 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 △지옥 △디피(D.P.) 등 자체 콘텐츠로 글로벌 시장에서 흥행했다. 웨이브는 △검은태양 △원더우먼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등 자체 콘텐츠를 연이어 내놓으며 유의미한 소비자 반응을 이끌어냈다. 티빙은 △술꾼도시여자들 △유미의 세포들 등 드라마를 비롯해 △환승연애 △여고추리반 등 예능까지 포함된 자체 콘텐츠 여러 작품을 히트시키며 가입자 유입률을 높였다. 또 CJ ENM 콘텐츠로 tvN, 엠넷 등과 동시 방영한 드라마와 예능 △지리산 △스트릿 우먼 파이터 등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어내며 빠르게 웨이브를 뒤쫓고 있다.
특히 쿠팡플레이에 밀린 점은 시즌에 있어 더 뼈아픈 대목이다. 쿠팡플레이는 시즌처럼 라이브러리 규모가 작고, 국내 OTT 중에서는 가장 늦은 지난해 12월 출범했다. 그러나 독점 공개한 에스엔엘코리아가 킬링 콘텐츠로 뜨면서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또 손흥민이 활약 중인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 황의조가 뛰는 프랑스 축구 리그1 경기를 생중계했고, 12월 4일에는 콜드플레이 콘서트를 라이브 스트리밍 하는 등 스포츠와 음악 분야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국내 톱 배우로 분류되는 김수현, 차승원 주연의 오리지널 드라마 '어느 날'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다.
#"시즌, 가입할 이유가 없다"
시즌의 OTT 콘텐츠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배경 중 하나는 강력한 파트너의 부재다. 웨이브는 지상파 방송 3사의 대규모 콘텐츠를 등에 업었다. 티빙은 모회사 CJ ENM과 스튜디오드래곤의 콘텐츠 공급 및 제작 관련 지원 사격을 받는 동시에, JTBC와 네이버라는 막강한 파트너사 콘텐츠도 활용 중이다. 시즌은 오롯이 홀로 KT 내 주어진 여건 하에서 자본을 조달해 드라마를 만들어보겠다는 전략인데, 그러기엔 다른 플레이어들 사이즈가 너무 커졌다는 분석이다. 스튜디오지니의 경우 제작사로서의 역량을 아직 보여준 바 없다. IP 확보 수단인 다른 콘텐츠 사업 상황도 다르지 않다. 지난 2016년 론칭한 웹툰 플랫폼 케이툰과 2018년 선보인 웹소설 플랫폼 블라이스는 카카오와 네이버의 웹툰 웹소설 플랫폼과 비교해 인지도가 크게 떨어지고 이용하는 작가 및 유저들도 현저히 적다.
김현용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올해부터 웨이브와 티빙을 필두로 국내 OTT들도 공격적으로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며 “티빙은 2대주주 네이버의 IP로 오리지널 콘텐츠화하고 있고, 언어 장벽이 낮은 엠넷 음악 콘텐츠를 보유했다는 점에서 경쟁력이 높다”고 관측했다. 이어 “시즌은 걸음마 단계로 히트작이 나와야 하고, 콘텐츠 사업은 하나 터진다고 되는 게 아니라 누적이기 때문에 많은 라이브러리를 확보해야 한다”며 “웨이브는 지상파 3사가, 티빙은 CJ ENM과 JTBC, 네이버가 손잡으면서 이미 진영이 짜졌다. 시즌이 경쟁력을 가져가긴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OTT 춘추전국시대에서 시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투자가 필수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용희 숭실대 교수는 “글로벌 애니메이션 OTT ‘크런치롤’이 매물로 나왔을 때 인수 금액은 1조 원으로, 우리나라 기업들도 투자 가능한 수준이었다”며 “KT가 케이블TV 인수나 5G 정비 등에 쓰는 비용을 보면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크게 투자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OTT에 대한 의지는 있지만 돈이 되는 사업이라는 확신은 없는 듯하다”고 봤다. 이어 “국내시장만 바라보면서 투자의 폭을 좁게 가져가지 말고, 과감한 M&A나 타사와의 제휴, 해외 진출 등 어떤 방식으로든 가입자를 크게 늘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크런치롤은 결국 지난해 말 소니의 품에 안겼다.
OTT업계 한 관계자는 “KT는 시즌 투자금 늘리면서 콘텐츠 산업의 불을 지핀다고 하는데, 투자금이 콘텐츠 제작비용인 건지, 투자 주체는 미디어지니인지 OTT인지 등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다”며 “공격적으로 콘텐츠 제작에 힘쓰지 않는 모습을 보면 아직 기조 자체가 통신이 우선인 듯하다. 콘텐츠 사업에 접근하는 방식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T 관계자는 "최근 디지털 방송용 소프트웨어 솔루션 개발사 알티미디어 인수 작업을 마무리하고 그룹사로 편입하는 등 미디어 강화를 위해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즌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룹 내 여러 미디어 계열사와의 시너지를 노리고 있다. 스토리위즈를 통해 IP를 원천 확보하고 기가지니 스튜디오를 통해 제작하며, 시즌과 케이블TV 쪽으로 유통하는 등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 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