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응원·선물 공세…총수이자 왕팬
#이석채 KT 회장
▲ 지난 3월 13일 2010-2011시즌 프로농구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부산 KT의 외국인 선수가 이석채 회장을 목말 태우고 있다. 사진제공=부산 KT |
이 회장은 KT가 운영하는 농구단에도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당시 꼴찌였던 부산 KT 소닉붐 사령탑으로 전창진 감독을 영입한 것. 당시 정규리그 2위 원주 동부 프로미의 사령탑이던 전 감독은 정규리그 감독상만 세 차례 수상한 스타 감독이었다. 이 회장은 전 감독과 함께 KT 소닉붐의 성공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 KT 소닉붐은 정규시즌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우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다음은 농구단의 변화와 성장을 곁에서 지켜본 KT 소닉붐 관계자의 이야기다.
“당시 꼴찌였던 KT가 2년 만에 우승할 거라 예상한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석채 회장님의 관심과 획기적인 지원 덕분이죠. 회장님께선 전창진 감독님과 가진 첫 만남에서 ‘훈련장과 숙소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듣고 속전속결로 해결했습니다. 130억 원을 투입해 훈련장을 지었는데 지상 4층 건물에는 호텔급 숙소와 체력단련실, 선수들의 빠른 회복을 돕는 ‘산소방’까지 설치됐습니다. 우승 후엔 두둑한 상금으로 선수와 코칭스태프 모두 만족했죠. 지난 2년은 모기업 KT와 농구단이 함께 성장한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이 회장이 농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학창시절. 농구명문 경복고를 다니면서부터다. 농구 선수로 활약하는 친구들을 응원하면서 농구에 매력을 느낀 것. 이러한 관심은 KT 소닉붐 농구단에 대한 애정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이 회장은 KT 소닉붐의 경기 결과를 체크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룹 임원 회의와 농구단 경기가 겹칠 땐 회의 도중 중계방송을 지켜볼 정도다.
이 회장의 이러한 관심에 전 감독도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전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하거나, 경기 직후 ‘수고했다’는 문자를 보내오는 것. 이러한 관심에 힘입어 전 감독도 ‘성적으로 보답하겠다’는 약속을 지켜낼 수 있었다. 농구단을 향한 이 회장의 애정은 KT 전 직원에게 전파됐다. KT 소닉붐 관계자는 직원들의 ‘농구사랑’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플레이오프 직전, 선수들 앞으로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각 지역 KT 마케팅 직원 분들이 자필로 쓴 편지와 함께 각 지역 특산물을 보내주셨어요. 예를 들면 조성민 선수는 고향이 전주인데, 전주지역 마케팅 직원 분들이 전주 특산물과 우승 기원 메시지를 직접 적어 보내주신 거죠. 1군 선수들 모두 이 선물을 받았답니다.”
이 회장이 농구단에 관심을 가진 이후, 관중수도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홈경기 땐 평균 3000명의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다. KT 직원들은 ‘올레 응원단’을 조직해 직접 응원에 나섰고, 그 외 500~1000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농구장 좌석을 가득 채우고 있단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 2008년 4월 25일 김준기 회장이 통합우승을 한 원주 동부 프로미 선수와 어깨동무를 하며 자축하고 있다. 사진제공=원주 동부 프로미 |
“회장님 고향이 강원도 동해입니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더라도 당시 강원도 유일의 프로 스포츠구단을 회생시켜 지역 체육활동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셨습니다. 사회공헌 역시 기업 책임의 한 부분이니 농구단 운영을 통해 기업 본질에 충실해지자는 다짐을 하셨다고 합니다.”
미국 생활 당시 NBA 경기를 직접 보러 다닐 정도로 농구에 관심이 많았던 김 회장이다. 당연히 농구단을 인수한 이후 경기장을 찾는 그의 발길도 잦아졌다. 홈경기는 물론 원정경기까지 찾아올 정도라고 한다. 혹여나 선수들이 부담을 느낄까 몰래 오는 편이라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친구들과 함께 응원을 하다 조용히 돌아가곤 한다. 때문에 구단 관계자들도 김 회장이 경기장에 응원하러 왔다는 사실을 몰랐다가 뒤늦게 기사를 통해 알게 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농구 지식도 해박하다. 미국 NBA 선수들 이름까지 줄줄 욀 정도다. 녹화를 해서라도 동부 프로미 경기는 모두 지켜본다고. 경기가 끝나면 강동희 감독에게 전화로 격려한다. 선수단 경조사도 꼬박꼬박 챙긴다. 지난 2008년 5월, 김 회장은 김주성 선수 결혼식에 참석해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등 격의 없는 행보로 농구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비록 구단주는 아니지만 농구단을 직접 인수한 경영자로서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타 구단 오너들과 차별화된 김 회장의 ‘감성 경영’에 대한 동부 프로미 관계자의 자랑을 들어보자.
“매년 선수들을 직접 집으로 초대하십니다. ‘밖에서 먹는 밥보단 집에서 먹는 밥이 훨씬 맛있는 법’이라며 영양을 고려해 손수 만찬을 준비하세요. 선수들과 어울려 농구 이야기 하는 것을 즐기십니다. 만찬 때 반주도 없는 상황에서 멋들어지게 노래도 곧잘 하십니다. 그리곤 선수들에게 마이크를 넘겨 ‘동부 노래자랑’ 시간을 가집니다. 이 정도로 선수들과 친근한 오너는 아마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정상영 KCC 명예회장
▲ 2004년 4월 10일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7차전에서 승리해 우승컵을 안은 전주KCC 선수들이 정상영 명예회장을 헹가래 치고 있다. 연합뉴스 |
정 명예회장의 농구애는 그의 형인 현대그룹 고 정주영 명예회장으로부터 비롯됐다. “농구는 쉬는 사람 하나 없이 다섯 명 모두 열심히 뛰기에 마음에 든다”며 농구 예찬론을 펼치던 정주영 명예회장이다. 생전 그는 현대 소속 선수들을 자주 불러 격려하는 등 선수들과의 소통을 중시했고, 남북통일농구를 성사시키고 평양에 체육관을 짓는 등 농구의 저변 확대에 앞장섰다.
정상영 명예회장이 2001년 자금난에 빠진 현대 농구단을 인수한 것도 형이 바라던 ‘농구 명문’의 전통을 잇기 위해서였다. 그는 현대 여자농구단이 재정적으로 어려울 때 체육관을 대여하거나 메인 스폰서를 맡는 등 후원자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허재 감독이 KCC 사령탑으로 부임해 시행착오를 겪을 땐 “농구 스타가 지도자로도 성공할 수 있도록 힘이 돼야 한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2008-2009시즌 9위로 하락했을 때도 “욕심내지 마라. 5년에 한 번 우승해도 효과는 충분하다”며 허 감독에게 신뢰를 보였다.
KCC 이지스 구단주인 정몽익 KCC 사장 역시 아버지인 정 명예회장 못지않게 농구단에 애정을 쏟고 있다. 최근 허 감독이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동아시아대회에 출전하게 되자 정 사장은 중국 출장 일정을 조정해 국가대표 선수들과 회식 자리를 마련했다. 선수들의 영양 보충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KCC 이지스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확정짓자 수도권 전 직원 체육대회를 열어 사인회를 열기도 했다. 선수들의 우승을 축하하고 직원들에게 이를 알리기 위해 정 사장이 즉석 제안한 행사였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한 지난 4월 26일엔 이례적으로 서초동 본사빌딩 지하 강당에서 축하연을 열었다. 500인분의 출장 뷔페를 준비한 이 자리에는 정 명예회장과 그의 세 아들인 정몽진 KCC 회장, 정몽익 KCC 사장, 정몽열 KCC건설 사장을 비롯한 주요 임직원이 총출동했다. KCC 이지스 관계자는 “구단주를 비롯해 그룹 오너 일가 전부가 농구단에 애정을 보인다는 점이 타 구단과 다른 부분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실제 KCC그룹 임원들은 구단 관계자들에게 “일요일 경기만은 반드시 이겨달라”는 요청을 하곤 한다. 전날 경기 성적에 따라 월요일 회의 분위기가 결정될 정도기 때문이란다.
2010-2011시즌 KBL 상위권 삼각 구도를 형성했던 KT-KCC-동부. 다음 시즌 우승컵을 놓고 벌어질 세 CEO들의 ‘농구애(愛)’ 경쟁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