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온상’ 보이콧 확산, 주관단체 향한 개혁 요구 봇물…작품상 등 주요 부문 후보 올라 수상 여부 촉각
‘오징어 게임’이 텔레비전 시리즈-드라마 작품상 부문(BEST TELEVISION SERIES–DRAMA) 후보로 선정됐다. 이정재는 텔레비전 시리즈-드라마 남우주연상 부문, 오영수는 TV 남우조연상 부문 후보에 올랐다.
‘오징어 게임’이 3개 주요 부문 후보로 선정된 것은 사실 골든글로브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볼 수도 있다. 그만큼 골든글로브는 현재 위기다.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는 이미 수년 동안 불투명한 재정 관리와 시상식 운영 의혹 등을 받아왔으며 HFPA 회원들이 값비싼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게다가 HFPA 회원 가운데 흑인이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아 너무 폐쇄적이고 백인 중심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지난 3월 할리우드 대형 홍보대행사 100여 곳이 성명을 통해 “골든글로브에 차별 행위와 배타성, 비전문성이 만연했다”며 “일부 영화 제작사와 방송사에서 자금 지원을 받아 부패 의혹을 받고 있다. 대대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요구하며 당장 시정하지 않으면 소속 스타들의 골든글로브 참여를 막겠다”고 경고했다. 결국 할리우드 유명 스튜디오와 홍보 담당자들의 시상식 보이콧 선언으로 이어졌고, NBC는 골든글로브 중계방송을 2022년까지 취소했다.
이에 HFPA는 직급을 다양화하고, 선물을 금지하고, 대가성 여행을 제한하는 등 개혁을 시작했고, 전체 회원의 13%를 흑인으로 채우겠다는 약속도 했다.
각종 의혹과 비판이 수년 동안 지속되어온 골든글로브의 문제점이 정면으로 부각된 결정적인 계기 가운데 하나는 영화 ‘미나리’다. 한국계 미국인인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이 연출하고 역시 한국계 미국인인 스티븐 연이 주연과 제작을 맡았으며 할리우드 유명 스타 브래드 피트의 제작사 플랜B가 제작한 ‘미나리’는 엄연히 미국 영화다. 대부분의 대사가 한국어로 돼 있고 한국 배우 등 아시아계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지만 분명 미국 영화다.
그럼에도 골든글로브는 ‘미나리’를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분류해 작품상과 각종 배우상 등 주요 부문 수상을 가로막았다. 당장 미국 현지 매체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뉴욕타임스는 “이민자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작품상이나 각본상에 올리지 않은 것은 나쁜 선택”이라며 “이미 수십 개의 비평가 단체상을 수상한 윤여정을 후보로 지명하지 않은 것은 골든글로브의 가장 큰 실수”라고 지적했다. 버라이어티 역시 “골든글로브는 ‘미나리’가 미국 영화임에도 외국어영화상에서 경쟁하도록 한 것은 매우 기이한 결정”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미나리’는 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는 데 만족해야 했다. 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 당시 수상 소감에서 봉 감독은 “자막의 장벽,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은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할리우드 유명 스튜디오와 홍보 담당자들의 시상식 보이콧, NBC의 골든글로브 중계방송 취소 등으로 최악의 위기에 내몰린 골든글로브의 선택은 ‘오징어 게임’이었다. 대사가 외국어인 한국어로 된 드라마이며, 감독과 출연진 역시 대부분 한국인인 한국 드라마다.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공개됐을 뿐이다. 그럼에도 79회 골든글로브는 ‘오징어 게임’을 텔레비전 시리즈-드라마 작품상 부문 후보로 선정했다. 이정재를 텔레비전 시리즈-드라마 남우주연상 부문 후보로, 오영수는 TV 남우조연상 부문 후보로 선정했다.
물론 수상 여부가 관건이다. ‘오징어 게임’이 수상하게 된다면 한국 작품 최초의 골든글로브 주요 부문 수상이다. 후보 선정만으로도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 때문에 미국 영화가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 된 아이러니한 골든글로브의 한계가 어느 정도는 극복됐다.
역시 백인과 남성 중심이라는 비난에 시달렸던 아카데미 시상식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안겨주며 그 장벽을 넘었다. 과연 ‘오징어 게임’도 작품상이나 배우상을 수상해 골든글로브의 권위를 되살려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2022년 2월 28일에 진행된다.
김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