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는 후원 중단 목소리, 중국 매출도 무시할 수 없어…도쿄올림픽처럼 조용한 후원 가능성
#남북올림픽 위해 후원 연장 해석도
삼성전자는 1988년 서울올림픽 지역 후원사로 올림픽과 인연을 맺었다. 삼성전자는 1997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계약을 맺은 후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부터 글로벌 파트너로서 올림픽을 공식 후원하고 있다. 2018년 12월에는 2020년까지였던 올림픽 공식 후원 계약 기간을 2028년으로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구체적인 후원액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4년마다 1억 달러(약 1184억 원) 수준을 후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은 당시 “인류의 혁신을 이끌어 온 무선 및 컴퓨팅 분야 제품 기술과 미래를 열어갈 4차 산업 기술을 통해 올림픽 정신을 확산하고 전세계인들의 축제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IOC와의 계약을 연장할 당시 재계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굳이 거액을 들여 마케팅을 할 필요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삼성그룹은 2015년 삼성증권 테니스팀과 삼성중공업 럭비팀을 해체했고, 영국 프로축구팀 첼시 후원도 중단하는 등 스포츠 마케팅 비용을 축소해왔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후원 연장이 문재인 정부가 당시 추진한 ‘2032년 남북 올림픽 공동 개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8년 11월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제가 알기로 이미 2016년에 (삼성이 2020년까지만 올림픽에 후원한다고) 내부적인 방침을 굳혔다”며 “남북 정상이 2032년 공동 올림픽에 합의를 했는데 삼성이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2032년 올림픽 개최지로 호주 브리즈번이 선정돼 남북 올림픽 공동 개최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2036년 남북 올림픽 공동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유용 서울시 의원은 지난 11월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유치를 위한 특별간담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문제는 영국, 중국, 독일, 러시아 등도 2036년 올림픽 유치를 추진하고 있어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2036년 남북 올림픽 공동 개최를 위해 삼성전자에 올림픽 후원 기간 연장을 추가로 요청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은 지난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2036년 올림픽과 관련해 “현재로서는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 언급조차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
삼성전자는 마케팅 효과를 노리고 올림픽에 후원하지만 최근에는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도쿄올림픽이 진행되는 동안 삼성전자는 그 흔한 홍보자료 하나 내지 않았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갤럭시 노트8 올림픽 에디션’ ‘삼성 올림픽 쇼케이스’ 등 각종 제품과 시설을 홍보한 것과 비교가 된다. 도쿄올림픽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인해 무관중으로 진행됐고,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욱일기를 이용한 응원을 허용하면서 반일감정이 악화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2022년 2월 개최 예정인 베이징동계올림픽 관련해서도 아직 이렇다 할 홍보를 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을 앞두고 2013년 8월부터 올림픽 관련 홍보자료를 냈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서도 2017년부터 홍보에 나섰다.
최근 외교적 논란이 불거지면서 삼성전자의 올림픽 관련 홍보도 조심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은 중국 정부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인권탄압을 한다는 이유로 올림픽에 외교관을 파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들과 일본 등도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월 13일 호주 캔버라에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후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는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미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로부터도 보이콧에 참가하라는 권유를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삼성전자의 올림픽 후원 중단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마르코 루비오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은 지난 12월 8일(현지시간) 올림픽 파트너사들에게 “올림픽 파트너 멤버들은 집단 학살하는 정권을 미화하고, 홍보하는 격”이라며 “과장이 아니고, 삼성 등 올림픽 파트너들은 이익에 눈이 멀어 진행 중인 집단 학살을 무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나 레이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지난 12월 9일(현지시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각각의 회사가 하는 것들은 전적으로 그들에게 달려있다”며 “어느 쪽으로도 그들에게 압박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앞서 지난 8일에는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기업에게 신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보를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 업무이고, 기업들은 이에 근거해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올림픽 후원 반대를 요구하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한국이 외교적 보이콧에 참여하지 않고, 미국 정부가 직접적인 압박을 하지 않더라도 세계적 기업인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현 상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2022년 상반기에 170억 달러(약 20조 원)를 들여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신규 파운드리 반도체 생산라인을 건설할 예정이다. 미국 현지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후원을 진행하면서 홍보 효과는커녕 비판을 듣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삼성전자가 IOC와 맺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도 없다. 삼성전자와 같은 올림픽 파트너사들은 후원에 대한 해명을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해외 언론에 따르면 올림픽 파트너사인 독일 알리안츠생명보험은 올림픽 관련 광고 축소를 검토 중이다. 또 스티븐 로저스 인텔 수석부사장은 지난 7월 미국 의회 산하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CECC) 청문회에서 “인텔의 베이징동계올림픽 후원은 올림픽 파트너 프로그램에 따른 것이지 인권 존중에 대한 우리의 약속을 부인하거나 인권을 훼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중국에 대한 공식적인 비판은커녕 언급조차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로 전해진다. 중국 역시 삼성전자의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1~3분기 중국에서 34조 2677억 원의 매출을 거뒀다. 전체 매출 203조 393억 원에서 16.88%에 해당하는 수치다. 결국 베이징동계올림픽도 도쿄올림픽처럼 이렇다 할 홍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조용히 후원만 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관계자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