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오션에서 성과내기 어려울 것” 전망…신한 “수익성보단 데이터, 새로운 금융·비금융 서비스 시도”
신한은행은 오는 12월 22일부터 배달 앱 ‘땡겨요’ 서비스에 나선다. 강남·서초·송파 등 서울 강남권 1만 5000여 개 가맹점으로 시작해 내년 서울 전역으로 서비스를 확대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올 5월부터 137억 원을 투입해 자체 앱을 구축했다.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에서 음식 주문 중개 플랫폼을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 받은 데 이은 행보로, 금융권 최초 배달 시장 진출 사례다. 주문 중개뿐 아니라 라이더 자체 수급·배달까지 맡는 배달의민족·쿠팡이츠와 달리, 땡겨요는 고객이 주문하면 음식점과 라이더를 중개하는 역할만 한다. 배달은 배달대행 플랫폼 '생각대로'가 담당한다.
신한은행이 저렴한 수수료를 앞세우고 있다. 가맹점 입점 수수료와 광고비용을 받지 않고, 중개수수료도 공공 배달앱 수준인 2%를 제시한다는 전략이다. 본업과 시너지도 노린다. 소상공인 매출 데이터 등 관련 데이터를 활용해 신용평가모형을 개발하고, 가맹점과 라이더들의 요구에 맞는 금융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미 지난 10월 말 생각대로의 라이더 데이터와 배달 수행 정보를 수집·분석해 라이더 전용 대출 상품도 내놓기도 했다. 라이더들의 비정기적 소득형태를 고려해 계획적인 대출상환이 가능하도록 배달료 수익 발생 시 대출원금 일정 금액을 자동 상환 가능한 프로세스도 구축했다.
#신파일러 시장, 마이데이터 노린다
신한은행은 배달앱 진출의 목적으로 수익을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배달 플랫폼에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들을 통해 가맹점주와 라이더 등 시장 참여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금융 상품을 출시하겠다고 강조한다. 주목하고 있는 것은 신파일러. 신파일러는 대출·상환 내역과 신용카드 사용 실적 등이 거의 없는 금융 이력 부족자로, 주로 사회 초년생과 대학생·주부·노인 등을 말한다. 플랫폼 업계 성장과 함께 급증하고 있지만 소득 입증이 어려운 긱 노동자(초단기 노동자)들도 여기 속한다.
신파일러들은 그동안 금융 이력이 없기 때문에 신용카드 발급 및 대출 등 금융서비스에서 사각지대에 놓여왔다. 신한은행의 땡겨요는 이런 신파일러를 유치하겠다는 것. 배달앱 운영을 통해 소상공인 매출 데이터·입점 기간, 라이더 근속연수·배송 건수·급여, 고객 결제 정보 등을 확보하고 대출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정교한 신용평가 모델을 만들어 낮은 리스크로 대출 가능 대상자를 확대하는 방식이다.
금융당국이 고강도 가계대출 총량 규제 방침 속 중·저신용자 대출은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점도 인터넷전문은행뿐 아니라 시중은행까지 신파일러 고객 유치에 힘쓰는 이유다.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 시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다. 마이데이터는 은행 계좌, 증권, 보험, 신용카드, 통신사, 핀테크 등 여러 기관에 흩어진 고객 데이터를 고객 동의 아래 한 곳에 모아 파악·관리하며 데이터 기반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으로, 기존 금융권의 새로운 성장 동력원으로 꼽힌다. 카카오와 네이버 등 비금융 데이터가 많은 ‘빅테크’들과의 경쟁을 위해서라도 비금융 데이터 확보는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 은행권 한 관계자는 “가맹점주의 경우 소득이 일정하지 않거나 사업 초기 단계라 소득이 안 잡혀 대출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은행이 매출 정보를 얻어 안정적인 캐시플로를 확인 가능하다면, 금융 거래 내역이 없어도 대출을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파일러들이 취업을 하거나 사업이 잘 안착해 안정적으로 수입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미래 고객 확보 측면도 있다”며 “대안신용평가 모델 구축에도 용이하다. 다양한 비금융 데이터로 신용평가를 해야 차주별로 정확하게 금리를 산정해 관련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굳이 직접? vs 새로운 시도
업계 반응은 엇갈린다.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쪽에서는 이미 플레이어들이 치열하게 경쟁 중인 레드오션 시장이기 때문에, 시도는 좋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배달의민족이나 요기요, 쿠팡이츠 등 고객 기반이 탄탄한 배달앱 강자들과 제휴해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도 방법인데, 직접 뛰어들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다. 하나은행은 지난해부터, 우리은행과 KB국민은행은 올해 9월부터 우아한형제들과 손잡고 배민 내 소상공인들의 데이터를 제공받아 대안신용평가 모델 구축 및 관련 상품을 출시 중이다.
앞서의 은행권 관계자는 “생각대로가 배달대행을 맡는 만큼 배달 관련 민원은 제휴업체가 담당하겠지만, 민원이 많아질수록 신한은행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배달음식은 민원이 많은 서비스인데, 신한이 전면에 나와 서비스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신한은행의 전략이 음식을 주문하는 소비자들에겐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배달앱 입점업체들이 플랫폼을 선택하는 조건은 이용자가 많은지, 어디에도 없는 차별화 서비스가 있는지가 꼽힌다. 고가 수수료 논란에도 배민이 꾸준히 1위 자리를 지키는 이유다. 쿠팡이츠도 후발주자지만 강력한 프로모션과 그간 없었던 단건 배달을 내세워 경쟁력을 확보했다.
KB국민은행이 금융권 최초로 알뜰폰 서비스를 내놨으나 장기간 실적 부진에 시달렸던 것처럼, 신한은행의 배달앱 사업도 종국엔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와 관련, 배달대행 업계 한 관계자는 “주문이 들어와야 입점업체든 라이더든 플랫폼을 쓰는데, 단순 금융서비스를 접목하는 것만으로는 주문 이용자를 늘릴 수 없다. 그렇다고 쿠팡이츠처럼 단건 배달을 통해 배송 경쟁력을 높이기에는 라이더를 자체 수급·관리해야 하기에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며 “신한만의 전략이 필요한데, 수많은 후발 배달앱 전문 플레이어들조차 그 지점을 찾지 못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쉽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수익성보단 데이터 확보를 통한 마케팅과 상품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라면 유의미한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은행권 다른 관계자는 “데이터는 그 자체가 수익원이기 때문에 제휴업체가 일정 정보를 공유할 수는 있어도 오롯이 다 주진 않는다”라며 “신한처럼 직접 뛰어들 경우 오리지널 결제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어느 정도 데이터가 쌓여야 효과가 있기 때문에 시장에 얼마나 잘 자리 잡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신한은행은 수익성보다는 소상공인 부담을 덜기 위한 공공성 위주 사업이고, 금융사만이 내놓을 수 있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배달앱 진출의 주된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최근 라이더 전용 대출상품을 내놓은 것처럼 배달앱을 통해 쌓이는 소비자와 라이더, 가맹점 관련 각종 데이터를 금융 데이터와 결합해 전혀 새로운 형태의 금융·비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시도”라며 “배민, 요기요와 경쟁하는 개념이 아니다. 기존 금융사와 배달앱 사이에서 두 비즈니스를 동시에 영위하며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찾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