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알픽쳐스 “제작사 교체, 콘텐츠 강탈 수준”…드라마센터장 “그쪽의 일방적 주장일 뿐”
“그냥 빠지라고!”
이 한마디에 드라마 콘텐츠 이익 분배 권한을 잃었다고 주장하는 고소장이 12월 14일 영등포경찰서에 접수됐다. 원고는 ‘학교 2021’ 원 제작자 에스알픽쳐스다. 피고는 KBS 드라마센터 핵심 관계자 두 명이다. KBS 드라마팀장 A 씨는 강요 및 모욕 혐의, KBS 드라마센터장 B 씨는 업무 방해 혐의로 고소장에 이름을 올렸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고소장에 따르면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장소는 2021년 2월 28일 KBS 방송국 9층 회의실이었다. KBS 드라마팀 관계자들과 ‘학교 2021’ 공동제작사 대표들이 전체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KBS 드라마팀장 A 씨는 “에스알픽쳐스는 ‘학교 2021’ 제작에 관여하지 말라”고 했다. 에스알픽쳐스 관계자는 “우리가 이 작품 원 기획자이자 제작사다.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드라마 제작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느냐”고 반문했다. A 씨는 삿대질을 하며 “그냥 빠지라고”라고 고함을 쳤다. 모욕과 강요 혐의 배경이다.
KBS 드라마센터장 B 씨는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됐다. 에스알픽쳐스는 “B 씨가 7월 ‘학교 2021’ 제작사를 킹스랜드와 래몽래인으로 교체하면서 에스알픽쳐스를 일방적으로 배제했다”고 주장했다. 이 작품 공동제작사 중 하나인 킹스랜드는 6월 출연자에 대한 출연료 미지급으로 구설에 올랐던 곳이다. 또 래몽래인은 KBS로부터 매출액 100% 보장을 약속받아 논란에 휩싸였다. 에스알픽쳐스는 래몽래인 대표와 나눈 대화 내용을 인용해 ‘KBS가 래몽래인에 매출액 100% 보장을 약속했다’는 내용을 고소장에 담았다.
‘학교 2021’은 기획 초기 단계에선 학교 시리즈를 겨냥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원작 소설 ‘오 나의 남자들’ 판권을 구매한 에스알픽쳐스는 2019년 11월 대본 작업을 시작했다.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들의 성장기를 다루는 원작 특성상 교육부 제작 지원을 받는 방향으로 작품 제작을 추진했다.
에스알픽쳐스에 따르면 교육부가 제작 지원 조건으로 가장 빠른 방영 시기를 보장받을 수 있는 방송사를 원했다. 가장 빠른 방영이 가능한 방송사는 KBS였다. KBS는 2020년 내 방영을 골자로 한 편성의향서를 에스알픽쳐스에 보냈다. 에스알픽쳐스는 ‘오 나의 남자들’이라는 원작 제목을 가제로 활용해 대본 작업을 진행했고, KBS는 편성의향서에 ‘학교 2020’이란 가제를 붙였다. 에스알픽쳐스는 “KBS 측에서 해당 작품을 전통이 있는 ‘학교 시리즈’에 편입시키길 원했다”고 했다.
이 작품은 대략 7차례 이상 대본 수정 과정을 거친 것으로 확인됐다. 그 과정에서 ‘봄 다시 봄’, ‘바보물고기’ 등 가제가 붙기도 했다. 그러던 2020년 9월 KBS는 ‘학교 2021’이란 제목으로 편성의향서를 발급했다. 사실상 작품 제목이 확정된 시점이다. 방영시기는 예정보다 1년 미뤄졌다.
두 번째 편성의향서엔 에스알픽쳐스와 함께 킹스랜드가 공동제작사로 이름을 올렸다. 두 제작사는 2020년 2월 에스알픽쳐스가 기획 및 제작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킹스랜드는 제작비용을 대는 방식으로 공동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2020년 12월엔 KBS와 교육부가 해당 작품 제작 지원 관련 MOU(양해각서)를 체결하며 드라마 제작에 가속도가 붙었다.
에스알픽쳐스는 “주연 김요한을 비롯한 배우 캐스팅을 직접 진행했다”면서 “원작 판권 구매, 작가 섭외, 대본 작업 및 시놉시스 작성 등 제작 단계 전반에 걸쳐 메인 제작사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2021년 2월 앞서 언급한 이른바 ‘고함 사건’이 터진 뒤 에스알픽쳐스의 입지는 약해졌다는 후문이다. 4월엔 KBS 드라마센터장 B 씨가 “킹스랜드가 주도적으로 제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에스알픽쳐스에 통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던 6월 제작비 부담을 담당하던 킹스랜드를 둘러싼 ‘출연료 미지급 논란’이 불거졌다. 주연 배우 중 하나인 김영대가 이 사건을 계기로 ‘학교 2021’에서 하차했다. 에스알픽쳐스 측은 2월부터 킹스랜드가 제작비를 부담하지 못할 경우 우리가 제작비를 대겠다고 했다. 에스알픽쳐스 대표이사는 “주택담보대출 및 오피스텔 판매 등을 통해 혹시 모를 사태에 투입할 현금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현금이 쓰일 일은 없었다. 7월 KBS가 드라마 제작사를 전격 교체했기 때문이다. 출연료 미지급 논란에 휩싸인 킹스랜드는 제작사 지위를 유지하고, 에스알픽쳐스는 제작에서 배제됐다. 그 가운데 래몽래인이라는 새로운 제작사로 등장했다. 그러면서 출연진과 작가들은 킹스랜드와 이중계약을 맺는 상황에 놓인 것으로 전해졌다.
에스알픽쳐스 측은 “논란 중심에 선 킹스랜드가 제작사 지위를 유지한 가운데, 래몽래인이 매출액을 전부 가져가는 방식으로 합류한 것 자체가 상식 밖의 일”이라면서 “KBS 경영진이 이런 배경을 알고도 센터장 B 씨와 래몽래인 대표 사이 불공정계약 체결을 승인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에스알픽쳐스 측은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다른 장사꾼이 받는 격”이라면서 “우리가 기획하고 원제작한 콘텐츠를 KBS 측에서 무단으로 도용해 방영하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학교 2021’ 제작 분쟁과 관련해 에스알픽쳐스는 “중소형 제작사가 애써 만든 소중한 콘텐츠를 방송국이 강탈한 것과 다름없다. 콘텐츠에서 생산되는 이익을 특정 제작사에 몰아주는 짬짜미에 당한 셈”이라면서 “그 가운데 KBS 관계자들의 강요와 모욕, 갑질 등에 대한 법리적 검토를 바탕으로 고소장을 제출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업무방해 혐의로 피소된 KBS 드라마센터장 B 씨는 12월 16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업무방해를 한 적이 없다”면서 “그쪽(에스알픽쳐스)에서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고함 논란’ 당사자인 KBS 드라마팀장 A 씨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12월 17일 KBS 측은 “고소장을 접수하고 우리 쪽으로 넘어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전달받은 내용은 아직 없다”면서 “정확한 고소장 내용을 전달받아야 공식입장을 낼 수 있을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고소장 세부내용 사실관계에 대한 질의에도 KBS 측은 “고소장을 아직 받지 못해 공식입장을 내긴 어렵다”고 밝혔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