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 홍인길부터 이재만까지 새드엔딩…현 정부 출범부터 함께한 이 비서관 퇴임 후엔 과연?

문재인 대통령이 2011년 출간한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 나오는 문구다. 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를 맡으면서 민정비서관의 특징 중 하나를 설명한 대목이다. 군기반장 통제 범위 밖에 있는 직책으로 유일하게 총무비서관이 언급돼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그만큼 총무비서관은 청와대 내에서 독립적이며 독특한 입지를 갖춘 자리로 꼽힌다.
총무비서관은 청와대 재무와 인사업무를 진두지휘한다. 청와대의 살림꾼인 셈이다. 인사관리, 재무·행정, 국유재산 및 시설·물품관리, 경내 행사 운영 등이 총무비서관의 몫이다. 청와대 자금출납 전담도 총무비서관 업무다. 이른바 ‘대통령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역할인 까닭에 청와대 금고지기라는 별칭도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최측근을 총무비서관으로 기용해왔다. 총무비서관이 ‘대통령의 집사’라고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반 기업과 비교하자면 총무비서관은 재무팀이나 인사팀 업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작은 오차가 대형 사고로 회자될 수 있는 청와대 특성상 책임의 무게는 상당하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총무비서관은 김영삼 정부 때까지만 해도 수석비서관급이었을 정도로 청와대 내부에서 안방 살림을 책임지는 핵심 요직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총무수석과 총무비서관을 지냈던 이들은 자신이 모셨던 대통령의 흥망성쇠와 함께 운명의 흐름을 함께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청와대 조직도에서 총무라는 단어는 박정희 정부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는 수석 비서관급으로 총무수석 편제가 있었다. 총무수석 산하엔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5명까지 비서관이 존재했다. 제6공화국 출범 이전인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부에선 강한 청와대 권력만큼이나 총무수석 산하 조직 규모도 컸다. 제6공화국이 출범한 뒤론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가 총무수석 제도를 유지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친인척이자 최측근으로 활동한 홍 전 의원은 상도동계 정치자금 관리자였다. 통일민주당 재정 담당 비서, 총재 비서실 차장을 지내며 ‘집사형 총무’의 초석을 닦았다. 자신이 모시는 김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면서 그는 총무수석으로 합류했다.
하지만 홍 전 의원의 정치적 결말은 그리 좋지 않았다. 청와대 총무수석에 재임하다 1996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홍 전 의원은 대형사건에 휘말렸다. IMF 금융위기 방아쇠를 당긴 1997년 한보 사태였다. 김 전 대통령 측근이 줄줄이 얽혀 있던 한보 사태에 연루된 홍 전 의원은 구속 기소됐고, 1996년 12월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이후 그는 사실상 정치에서 은퇴했다.
한보 사태로 총무수석 출신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뒤 김대중 정부에서는 총무수석 자리를 없애고 현행 총무비서관 체제로 개편했다. 김대중 정부 내내 총무비서관 직을 맡았던 이는 박금옥 전 노르웨이 대사다. 박 전 대사는 국내 경제매체 뉴욕지사 임원으로 일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뒤 1991년 신민당 총재 비서로 발탁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국에 체류하던 시절, 아태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박 전 대사의 밀착 수행이 있었을 정도로 ‘DJ의 최측근’이란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최 전 비서관 후임자론 ‘노무현의 40년지기’ 정상문 전 비서관이 낙점됐다. 정 전 비서관도 구속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정 전 비서관은 2009년 4월 22일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됐다. 정 전 비서관이 구속된 지 한 달여 뒤인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명박 정부에서 총무비서관은 김백준 전 비서관이다. 김 전 비서관은 ‘왕(王) 비서관’이란 별명을 가질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현대그룹에서 인연을 맺어 친분을 쌓은 김 전 비서관은 ‘가신이 아닌 집사’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이었다. 일각에선 ‘이명박 가족사와 재산에 대해선 김백준이 더 잘 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김 전 비서관 또한 2018년 2월 5일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사건’에 연루돼 구속 기소됐다.

총무비서관 자리엔 청와대 금고지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최측근이 임명되기 일쑤였다. 돈을 관리하는 자리에 ‘최측근’ 꼬리표를 단 집사들이 임명될 때마다 총무비서관 잔혹사는 꼬리를 이었다. 김영삼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의 총무비서관들이 잔혹사 중심에 섰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 비서관을 총무비서관으로 발탁하면서 그에 대해 “대표적 흙수저 출신으로 지방대, 7급 출신 기재부 국장을 지내며 공무원 사회에서 신임과 존경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 비서관은 총무비서관 부임 이후 ‘깐깐한 스타일’의 원칙주의자란 평가를 받는다. 정치권 안팎에선 최측근이 아닌 신분으로 청와대에 입성해 실세 반열에 올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만 ‘내부 여론조사 56억 원 활용 논란’, ‘문다혜 씨 청와대 거주 논란’, ‘기재부 재임 당시 셀프 승진 논란’ 등 리스크는 차기 정부 출범 이후 이 비서관이 검증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총무비서관 잔혹사’를 끊겠다는 취지로 깜짝 발탁된 이 비서관이 퇴임 후 행보에 정치권 시선이 쏠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