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원짜리 밥 먹는 아버지 매일 외제차 바꿔타는 아들
이 두 가지의 시간 개념으로 우리나라의 부자들을 분석해보면 부자가 되는 데 걸린 기간이 상당히 길고 부자로 사는 기간이 비교적 짧은 사람들은 거의 전부 자수성가형 짠돌이다. 반면 그 자손들은 부자가 되는 데 걸린 기간이 상당히 짧고 부자로 사는 기간은 비교적 길다. 이들은 또 거의가 어김없이 ‘상속형 헤픈 이’다.
부자가 되는 데 걸린 기간(PBW: Period for Becoming Wealthy)이란 부자가 되겠다고 마음 먹고 나서 실제로 부자가 되기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통계적으로 볼 때 20세에 결심을 하고 열심히 돈을 모은 이들이 대략 45세쯤이면 10억원 정도를 모은다. 20세부터 45세까지 약 25년이 걸린 것이다. 부자로 사는 기간(PWL: Period for Wealthy Living)은 부자가 된 이후에 이 세상을 하직하거나 혹은 몰락하기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45세에 부자가 된 사람이 70세에 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 사람은 약 25년 동안 부자로 산 것이다.
서울 강북에 사는 K씨는 재산이 수백억원대에 달하나 60세가 넘은 현재에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짠돌이다. 점심은 3천원짜리만 먹는다. 한 달 내내 3천원짜리만 먹다가 어느 날 옆 좌석에서 먹는 것이 하도 먹음직스러워서 보여 큰 맘 먹고 5천원짜리 제육볶음을 시켰더니 식당 아주머니가 “그거 비싼 건데, 5천원짜린데”라고 두 번씩이나 얘기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K씨가 어느 날 30여 년 만에 우연히 전남의 고향친구를 만났는데 너무나 반가워하며 데리고 간 곳은 동네의 허름한 찻집이었다. 이 찻집에 와서 항상 맥주를 달랑 두 병만 시키고 안주는 절대로 시키는 법 없이 공짜로 주는 팝콘만 먹고 가던 K씨가 이날은 국산양주인 딤플을 시키자 주인 여자는 “별일이야. 어쩐 일이지”를 연발하였다. 평소 맥주 2병만 시킬 때는 인사도 잘 안하던 주인 여자가, 딤플을 시킨 이후 옆자리에 앉아서 술도 따르고 친절하게 대하자 K씨는 주인 여자의 손을 은근히 잡고는 “내가 자주 와서 딤플 먹을게”라고 속삭였다나.
K씨 부부는 대학 근처에도 못 가봤다. 배움에 대한 한이 맺힌 이들 부부는 아들 3형제의 교육만큼은 절대 돈을 아끼지 않았다. “아들 셋을 반드시 다 서울대학에 보내겠다”고 공언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한 달에 수십만원 이상 하는 과외선생을 10여 명씩 끌어댔다.
하지만 돈으로만 안되는 것도 있었다. 결국 장남은 전문대를 졸업하고 사업하겠다고 나섰고, 차남은 3수를 한 이후 군대 갔다와서 그냥 사업하겠다며 학업을 접었다. 막내는 아예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보내봤으나 10년째 살면서도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아들 삼형제’ 또한 엄연히 부자다. 부자도 큰 부자다. 이들은 아버지가 가진 빌딩이 여덟 개라는 사실을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다. 큰아들은 “요새 텔레콤들이 뜨니까 나도 텔레콤(회사)이나 하나 차려야겠다”며 사무실을 내고는 명함에 ‘XX텔레콤 대표이사’라고 찍었으나 막상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아침에 여직원 혼자 있는 사무실에 나와서 전날 술친구들에게서 전화 온 것을 체크해두고는 기사가 모는 BMW를 타고 나간다. 차를 타고 다니다가 길거리에서 ‘스타일이 괜찮은 여성’을 발견하면 바로 명함을 주면서 “연락하라”고 유혹한다. 전화가 걸려오는 낯선 여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현재 K씨 장남의 삶의 낙이다.
둘째아들은 하루에 양주 ‘발렌타인 30년산’을 서너 병씩 작살내는 것이 하루의 ‘업무’이자 취미다. 아침에도 술에 취해 있고, 점심과 저녁 때도 마찬가지다. 취미는 ‘카 컬렉션’(car collection: 자동차를 여러 대 가지고 심심하면 바꾸는 것)이어서 자기 소유 차량만 여섯 대다. 페라리, 아우디, 푸조, 렉서스, 다이너스티, 쏘나타 중에서 아침의 술기분에 따라서 그날 탈 차를 고른다. 항상 취한 눈으로 보면 세상 모든 여성이 ‘환상적인 미모’를 지닌 것으로 보이니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 하고 내적(?)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 차남의 하루다.
셋째아들은 10년 이상을 다니는 미국대학이 왜 이렇게 졸업하기 어려운지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으라고 경영학공부를 하라고 해서 하기는 하는데 “영어가 별로 필요없는 경영수학이나 회계원리 과목은 할 만한데, 맨 영어로 하는 기업법이나 마케팅은 무슨 소리인지 도저히 안 들린다”며 푸념이다.
그동안 수없이 다닌 라스베이거스나 아틀랜틱시티의 도박도 이제는 별로 재미없다. 가끔 걸려오는 큰형과 작은형의 전화를 들으면 ‘형들은 한국에서 인생을 즐기며 사는데 나는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만 들고 그때마다 외로움을 달래려고 수많은 여성을 찾아나선다. 어머니가 매월 5천달러 이상씩 꼭 부쳐주니 술값은 충분하다.
필자가 국내외에서 아는 수천 명의 부자들 중에서 ‘자기절제’(self-discipline)가 안되는 부자들은 거의 전부 ‘물질적으로는 풍요하나 정신적으로는 너무나 빈곤하여서 생활은 돈없는 일반인들에 비해 너무나 허망하고 덧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거의 모든 자수성가형 부자들은 돈을 버는 과정에서 겪었던 자신의 참혹한 과거사를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에 소비하는 법을 잘 모른다. 과거 1천원을 아끼려고 수km를 걸었던 기억이 남아서 손자에게 과자값 1천원을 주는 것이 아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반면 상당수 자수성가형의 자녀들은 돌이 되자마자 ‘돌선물(?)’로 자신도 모르는 주식을 몇 억원어치나 물려받고, 초등학교 입학 때 수만 평의 땅을 상속받고, 중학교 졸업선물로 1kg에 2천만원 정도 하는 금괴를 수십 개 받고, 고등학교 졸업선물로 1억원짜리 스포츠카를 받고, 그리고 미국 유학 가서 두 명의 도우미를 두고 산다.
그들은 부자가 되는 데 몇 년 안 걸렸기 때문에 부자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눈물과 한숨이 필요한지 모른다. 생이 편안하다고 느끼게 되면서 생각나는 것은 24시간 동안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증과 그 무료함을 달래줄 자극 같은 것들이다. 그러다 마약과 도박의 향락을 찾아나서기도 한다.
물질이 가져다 주는 헛된 즐거움을 자제시키려면 어떠한 형태든지 ‘종교’에 귀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종교를 불문하고 사이비 종교만 아니라면 거기에 귀의해서 ‘세상은 물질과 정신이 혼합된 조화’라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절제하는 방식을 터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도, 또 계속 부자로 살기 위해서도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절제의 미학이다.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
<부자도 모르는 부자학개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