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 ‘게더타운’ 회의·팬미팅 등 업무 활용…Z세대 ‘로블록스’ 직접 콘텐츠 만들어 용돈벌이
메타버스는 가상·초월을 뜻하는 영어 단어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가 합쳐진 것으로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를 통해 처음 소개된 단어다. 단순히 가상현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에서의 생활이 현실 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공간을 의미한다.
메타버스에서는 단순한 아바타 놀이뿐만 아니라 여기서 더 나아가 사회·경제적 활동까지 가능하다. 즉 가상현실 속 아바타의 행동이 현실세계 속 나의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고 또, 이를 통해 게임머니가 아닌 실제 수익까지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가상현실 이용 목적이 게임 등 취미 활동에 그쳤다면 메타버스는 이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셈이다. 영화계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속 세상은 가장 궁극적인 형태의 메타버스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기성세대와 Z세대의 차이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기성세대의 메타버스 이용이 다소 인위적이었다면 Z세대라 불리는 10대들의 메타버스 이용은 생활 속에 녹아든 자연스러운 현상 가운데 하나다.
#이용 목적 뚜렷한 기성세대
일요신문이 연령대별 메타버스 이용 현황 및 목적을 살펴본 결과, 기성세대는 뚜렷한 목적과 이유를 가지고 메타버스 플랫폼을 이용했다면 10대들은 특정 플랫폼보다는 SNS(소셜미디어)나 게임을 통해 일상에서 메타버스를 즐기고 있었다.
기성세대의 경우 2021년 처음 메타버스를 인지한 이들이 상당수였다. 그리고 이를 특정 사업에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코로나19로 비대면 일상이 정착하면서 모임이 불가하자 이를 대체하는 용도로 쓰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스타트업과 일부 기업에서는 종무식 및 송년회 등을 메타버스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기성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은 ‘게더타운’이었다. 게더타운은 미국 스타트업 ‘게더’에서 만든 컴퓨터를 이용한 가상현실 기반의 화상회의 플랫폼이다. 비대면 시대 화상회의를 목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일반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 등 정부에서 많이 활용하는 플랫폼 가운데 하나다.
게더타운의 가장 큰 특징은 화상회의 플랫폼인 ‘줌’에 가상현실의 맵과 아바타를 접목시켜 상대방의 실제 얼굴과 목소리를 들으며 아바타를 구동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직접 아바타를 이동해 대화를 원하는 사람 가까이로 가면 자동으로 카메라가 켜지면서 대화를 할 수 있다. 대화를 마치고 다시 아바타를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카메라 화면은 꺼진다.
주최자는 게더타운 맵을 모임의 특성에 맞게 미리 꾸며 놓을 수 있다. PDF 문서나 동영상 공유가 가능해 채용설명회, 간담회, 회의 진행에도 무리가 없다. 이 밖에도 게임장과 공연장, 캠핑장 등 다양한 공간 구현이 가능하다. 참여인원 25명까지는 무료이며 그 이상은 인원수에 따라 요금을 결제해야 한다. 참여는 주최자가 제공하는 접속링크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원하는 사람만 초청하거나 모임을 즐길 수 있다.
기업들도 트렌드에 맞춰 부랴부랴 메타버스 관련 사업을 론칭했다. 실제로 KB국민은행은 게더타운 내에 KB금융타운을 만들고 경영진 회의를 열기도 했다. 12월 21일 콘텐츠랩 ‘비보’에 따르면, 방송인 송은이와 김숙은 20일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에 개설된 ‘비보타운’에서 ‘2021 비보타운 메타버스 송년회’를 열어 팬미팅을 하기도 했다.
SK텔레콤의 메타버스 서비스 앱인 ‘이프랜드’에서는 자연스러운 만남보다는 강연이나 공공기관이 주최하는 페스티벌 등이 주를 이루는 모양새다. 대표적인 메타버스 플랫폼인 네이버Z의 ‘제페토’의 사용 연령층은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했으나 아직까지는 ‘아바타 꾸미기’를 위해 가입한 유저들이 더 많았다.
2020년 처음 제페토를 접했다는 한 10대 이용자는 “옷 입히기가 재미있어서 가입하게 됐다. 제페토 아바타 옷만 만드는 디자이너가 따로 있어서 계속 새로운 아이템이 나오는 것이 장점이다”라면서도 “유저들끼리 딱히 무언가를 하진 않는다. 아바타를 꾸미고 ‘좋아요’ 많이 받는 것이 가장 큰 재미였는데 점점 고연령층 이용자가 늘어나는 것 같아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유 없는 Z세대의 메타버스
흥미로운 점은 태어날 때부터 온라인 속 가상현실이 더욱 익숙한 이른바 메타버스 네이티브 세대들이 사용하는 플랫폼이 달랐다는 것이다. 이들의 메타버스 이용법은 기성세대보다 가볍지만 복합적이었다. 메타버스 플랫폼을 이용해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를 유튜브와 틱톡 등 기존 SNS에 활용하곤 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를 수익화했다.
사용자가 직접 콘텐츠를 만드는 ‘로블록스’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 10대들이 활발하게 이용하는 게임 플랫폼이다. 실제 사람을 형상화한 이프랜드나 제페토의 아바타와 달리 로블록스의 아바타는 레고와 유사한 블록 형태다. 로블록스는 서버만 제공하고 이용자가 직접 서버 내 모든 콘텐츠를 창작하고 운영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게임은 역할놀이부터 탈출게임, 술래잡기, 전투, 장애물 달리기까지 다양하다. 창작자는 이를 통해 수익을 낼 수도 있다.
최근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로블록스에서는 오징어 게임 속 화면을 그대로 구현한 맵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하는 것이 큰 유행이었다.
유튜브 등 SNS에서 최근 큰 두각을 보이는 플랫폼은 ‘플로타곤’이다. 플로타곤의 아바타는 3차원 컴퓨터그래픽을 구성하는 기본단위인 다각형의 폴리곤으로 만들어져 마치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생겼는데 플로타곤이 유행하는 이유는 바로 이 아바타들의 독특한 발음에 있다. 플로타곤은 아직 한글을 지원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국내 이용자들은 한국어 발음을 알파벳으로 입력해 표현하는데 이것이 마치 AI나 외국인이 한국어를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플로타곤이 주목을 받는 곳은 다름 아닌 유튜브다. 창작자들은 플로타곤 아바타과 이들의 독특한 발음을 이용해 여러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자연스럽게 수익을 창출한다. 특히 플로타곤 아바타를 이용한 MBTI별 상황 영상은 최근 유튜브 트렌드 가운데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플로타곤 자체만 놓고 보면 메타버스로 보기 어렵지만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를 SNS에 결합하여 현실 수익을 창출한다는 점은 그만큼 Z세대의 가상현실 활용 범위가 넓어졌음을 반증한다. 즉, 메타버스 이용이 자연스러운 Z세대들은 기성세대와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목적부터 결과까지 다른 셈이다.
한편, 게임업계에서는 메타버스가 기존 가상현실 속 아바타 꾸미기나 온라인 게임과의 큰 차이점을 모르겠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부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같은 MMORPG(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에서는 유저들이 각자의 캐릭터로 현실 세계와 다름없이 교류를 해오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게임 내에서 아이템을 사고팔고 이를 현실에서 사용 가능한 돈으로 현금화하는 것 역시 이들에겐 매우 익숙한 행동이며 게임업계에서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등이 도입된 차세대 MMORPG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IT 업계 종사자는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대중의 관심이 온라인으로 집중함과 동시에 게임업계의 마이너한 문화가 수면 위로 올라온 점을 무시할 수 없다.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유저들 간 교류를 한다는 점이 같기에 MMORPG 게임을 즐겨하던 분들이 메타버스 개념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하는 편이다. 최근 메타버스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대기업에서 플랫폼 선점을 위해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면서 투자자들과 언론의 관심이 쏠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존에 온라인 게임을 즐겨하던 분들이 ‘내가 하는 게임과 메타버스의 차이점이 뭐지?’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국내 메타버스 기술이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기술이 점차 발전한다면 게임뿐만 아니라 은행업무나 실물 쇼핑 등을 가상현실에서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