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은평·강북·도봉 등 아파트값 하락 전환…대출규제 강화·금리 인상 전망 속 ‘일본 전철’ 우려도
#멈춰버린 수도권 매매·전세 시장
서울 은평구에 이어 강북·도봉구 아파트값이 하락 전환했다. 2021년 12월 30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12월 넷째 주 강북구와 도봉구는 각각 0.02%, 0.01% 하락했다. 2020년 5월 셋째 주(18일) 이후 1년 7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12월 셋째 주에 이미 0.03%를 기록해 내림세로 접어든 은평구는 넷째 주에도 0.02%로 하락세를 이어갔다. KB부동산이 발표한 2021년 12월 주택 가격 동향 통계에 따르면 경기도 광명의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이 마이너스(-) 0.01%를 기록했다. 2년 6개월 만의 하락세 전환이다.
부동산 거래가 급감하고 가격 상승세가 주춤한 가운데 호가를 대폭 낮춘 급매물만 팔리면서 아파트값이 내리는 지역이 속출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신고 기간이 한 달 남아있지만, 12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493건으로 전년 동월보다 93%나 줄었다. 2008년 11월 글로벌 금융 위기 때 기록한 역대 최저 거래량(1163건)을 갈아치울 가능성이 크다.
대출규제와 금리 인상 영향까지 맞물리면서 2022년 부동산 시장도 이 같은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2021년 12월 30일 금융위원회는 2022년 1월부터 총대출액이 2억 원을 넘으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적용된다고 밝혔다. 7월부터는 이 기준이 총 대출액 1억 원으로 더욱 강화된다. 카드론 사용액도 2022년부터 DSR에 포함된다. DSR은 개인이 보유한 모든 가계대출의 원리금 상환액 합계가 연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다.
2021년 12월 30일 한국은행(한은)이 발표한 ‘2021년 11월 중 금융기관 가중평균 금리(잠정)’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전월 대비 0.25%포인트(p) 상승한 3.51%로 나타났다. 이는 2014년 7월(3.54%) 이후 7년 4개월 만에 최고치다. 신용대출 금리도 연 4.62%에서 5.16%로 0.54%p나 뛰었다. 2014년 9월(5.29%) 이후 최고 기록이다.
이에 대해 송재창 한은 경제통계국 금융통계팀장은 “코픽스와 은행채 등 지표금리가 올랐고, 은행들이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가산금리를 높이는 등 금리를 올렸기 때문”이라며 “신용대출 금리는 대출한도를 연소득 이내로 제한하자 고신용자보다 중·저신용자 비중이 늘었고 중금리 대출 취급이 확대된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수도권 매매시장과 전세시장 움직임은 사실상 중단된 분위기다. 향후 DSR 2단계 도입과 금리 인상, 대통령 선거, 매물량 증가, 정비사업 활성화, 입주물량 감소 등 다양한 변수들이 혼재돼 미래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며 “2022년에는 전·월세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입주 물량이 줄어든다. 거래가 잘 안되는 분위기인 만큼 당분간 입주물량과 임대차 시장의 움직임에 따라 매매시장의 움직임도 동조화돼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부동산 버블 붕괴 신호탄?
집값 폭등 원인인 ‘저금리, 과잉 유동성’의 시대가 끝나고 ‘금리 인상, 긴축의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실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인플레이션 압박이 40년 만에 최고 수준에 달하자 물가 상승세를 잡기 위해 시중 돈줄 조이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1년 12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속도를 현재의 2배로 높이고, 금리 인상도 테이퍼링을 마치고 멀지 않은 시점에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 3월 테이퍼링이 종료된 후 3회에 걸쳐 금리가 인상된다는 것이 미국 월가의 지배적인 시선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연일 시사하고 있다. 이 총재는 2022년 신년사에서 “미 연준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높아진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응하여 금리 인상을 이미 시작하였거나 예고하고 있다”며 “이 같은 각국의 통화정책 정상화 과정에서 국제금융시장의 가격변수와 자본유출입의 변동성이 증폭될 수 있다. 불안 요인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필요한 경우 시장 안정화 조치를 적기에 시행해야 할 것”이라며 금리 인상 방침을 재확인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022년 1월 14일과 2월 24일 중에서 한 차례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
주택시장은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실제 한국 주택시장은 2021년 8월과 11월 두 차례의 금리 인상으로 기준금리가 0.5%에서 1%로 오르자 하락세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국토연구원은 기준금리가 1% 상승할 때 수도권 집값이 연간 0.7%p 하락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2021년 12월 28일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KBS ‘더 라이브’에서 “2022년 말까지 기준금리가 1.5%까지 오르면 서울 전반에 걸쳐 집값이 2021년 6월 대비 최대 17% 떨어지고, 기준금리가 2% 오르면 2021년 6월 대비 최대 20%까지 하락할 수 있다”며 “집값이 2020년 수준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급격한 금리인상이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2021년 3분기 기준 가계부채는 1844조 9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7% 늘었다. 이는 2017년 2분기(10.4%)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같은 기간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4%p 상승한 219.9%에 달했다. 1975년 통계편제 이후 역대 최대 수준이다. 특히 우리나라 가계의 총자산 대비 실물자산 보유 비중은 64%에 달한다. 미국(29%), 일본(38%) 등 선진국보다 크게 높은 상황이다. ‘영끌·빚투’로 부동산에 투자한 대출자들이 이자 비용 부담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면 부동산 가격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자칫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21년 12월 23일 한국은행은 “우리나라와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등 통화정책 긴축을 본격화하면서 가계의 부채 상환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자산시장 거품이 꺼지는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나라 집값이 폭락하고 경제성장률이 최악의 경우 -3%로 떨어질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2021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박근혜 정부 때 침체된 부동산을 활성화시키고자 세금을 낮추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췄더니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 미국에서도 2년에 걸쳐 기준금리를 3%p 올렸더니 부동산 가격이 반값이 되는 사례가 있었고 일본도 마찬가지”라며 “미국은 3월부터 기준금리를 3차례 정도 올릴 것으로 보이고 한국은행이 이에 발 맞춰서 기준금리를 1.75%까지만 올려도 상당한 조정이 일어날 것 같다. 심각하면 부동산 버블 붕괴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반면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12월 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의 경우 장기간 저금리 정책을 편 이후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인한 자산가격 하락, 구매력 약화 등의 상황이 산업·가계 부실로 옮아가며 부실의 악순환을 야기한 것이 잃어버린 20년의 시작이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은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이 큰 상황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