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는 장손 빠진 형제경영?
▲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 장례식에 참석한 유족들. 왼쪽부터 장남 재영씨, 부인 마거렛 클라크 박 여사, 딸 미영씨, 재영씨 부인 구문정씨, 박삼구 현 회장의 아들 세창씨, 고 박정구 회장의 아들 철완씨. 임준선 기자 | ||
창업주 박인천 선대회장의 작고 이후 경영권은 장남 박성용 회장부터 그 형제들이 차례로 이어 받았다. 박성용 회장은 지난 96년 회장직에서 물러나 둘째인 박정구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긴 뒤 문화사업에 매진하며 그룹경영과는 일정 거리를 둬 왔다. 2002년 박정구 회장이 타계한 이후로는 셋째인 박삼구 현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지분 구조 변화 등 그룹의 주요 결정사항은 형제들이 머리를 맞대 결정해왔다. 그룹 관계자도 “박삼구 회장이 그룹 총수에 오른 지 3년밖에 안된 만큼 당분간 현 체제가 유지될 것”이라며 박성용 회장 타계 이후 형제경영 구도에 큰 변화가 없을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갈등의 씨앗이 전혀 없을 거라 단언할 수 있을까. 재계에서도 3대를 넘어가는 동업경영이 성공한 예가 거의 없다. 3대쯤 가서 한번 매듭을 짓는 게 통상적인 예이다. 이와 관련, 재계 일각에선 박성용 회장 유족을 중심으로 한 금호아시아나 그룹 내 경영권 변화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박 회장의 유족으로 부인 마거렛 클라크 박 여사(73)와 딸 미영씨(39), 아들 재영씨(35)가 있다. 경영참여나 지분 배분과정에서 아들 중심적 관행을 보여온 그룹 내 풍토에서 볼 때 관심사는 단연 재영씨다. 그는 현재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본인 의지에 따라 영화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박성용 회장 등 금호 경영에 참여한 4형제는 모두 아들을 한 명씩 두고 있다. 둘째인 고 박정구 회장 아들 철완씨(27)는 현재 미국 경영대학원(MBA) 입학을 준비하고 있으며 박삼구 현 회장 아들 세창씨(30)는 미국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다. 넷째 박찬구 부회장의 아들 준경씨(27)도 학업중이다. 때문에 다른 3세와는 달리 문화쪽에 치우쳐 있는 재영씨 행보가 주목을 받는다. 3세 경영시대가 왔을 때 장손 직계인 재영씨가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한 ‘때이른’ 관측도 나오는 것이다.
박성용 회장 미망인이자 재영씨 모친인 마거렛 클라크 박 여사는 그룹 내 지분도 없으며 경영에 대한 영향력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3세 경영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칫 장손 집안이 다른 형제들 집안에 밀릴 가능성도 고려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룹 관계자는 “(재영씨가) 경영과 관련 없는 공부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두고 경영권 배제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라며 일축했다. 현 상황에서 20대~30대인 3세들의 경영시대는 먼 훗날에 찾아올 이야기이며 그때 일을 지금 논하는 것은 근거 없는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룹 관계자는 “언젠가는 3세들이 그룹경영에 나서겠지만 ‘형제경영’의 틀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금호석유화학(지난해 말 기준)의 지분 구조를 보면 형제간 균등 배분구도를 실감할 수 있다. 그룹 안팎의 예상대로 박성용 회장 지분(4.79%)이 아들 재영씨에게 상속될 경우 기존의 재영씨 지분 4.16%에 합쳐져 8.95%가 된다. 둘째인 고 박정구 회장은 본인 몫을 아들인 철완씨에게 상속해 철완씨 지분이 8.94%에 이른 상태다. 셋째인 박삼구 현 회장은 4.73%를 보유하고 있어 아들인 세창씨 지분(4.21%)과 합하면 역시 8.94%가 된다. 넷째인 박찬구 부회장 몫은 4.73%이며 아들 준경씨의 4.21%와 합치면 다른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8.94%다. 어느 쪽에도 지분이 쏠리지 않아 상호견제와 협조가 가능한 구도인 셈이다.
박성용 회장 유족에 대한 다른 견해도 있다. 박 회장을 그룹 경영권과 거리가 먼 문화사업가로만 봐야한다는 시각이다. 고 박성용 회장은 금호문화재단 이사장,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 등을 지내며 우리나라 문화계의 대표적 후원자 역할을 해왔다.
한 재계 인사는 “96년부터 문화사업에 몰두했던 박성용 회장에게 대권(그룹 경영권)에 대한 큰 뜻은 없어 보였다. 그 아들 역시 선친처럼 문화쪽에 더 관심이 큰 것 아닐까”라 밝혔다. 박성용-재영 부자가 그룹 경영권에 큰 애착을 갖고 있지 않음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박성용 회장 형제들 중 넷째이자 금호석유화학의 대표이사인 박찬구 부회장은 그동안 경영권·지분과 관련해 형제 간의 조정역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형제경영 관점에서 볼 때 박삼구 회장 다음 차례는 박찬구 부회장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조정자’에게 ‘대권’이 찾아올 수도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그룹 관계자는 “박삼구 회장 나이가(60세) 아직 한창인데…”라며 “후사를 거론할 시점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먼 훗날에 대한 섣부른 예측을 경계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