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고증명서 조작’ 내부통제 어려운 구조…돈 묶인 개미들 발만 ‘동동’ ETF 투자자들도 간접 피해
이 씨는 2021년 10월 1일 동진쎄미켐 주식을 대규모로 매수한 이후 여러 차례 지분을 매각했다. 애초 투자금은 1430억 원이다. 지난 12월 20일까지 이 씨가 회수한 돈은 약 1112억 원이다. 12월 20일부터 동진쎄미켐 주가는 급등하기 시작했지만, 최고가로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55만 주를 팔았더라도 280억 원 남짓이다.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총 횡령액은 1880억 원이다. 450억 원의 행방은 여전히 모호하다.
경찰은 범행 자금이 거쳐 간 계좌를 확인하는 대로 계좌 동결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횡령금이 복수의 계좌에서 여러 경로를 거쳐 빠져나간 정황이 확인되면서 자금 추적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좌 동결을 할 수 있는 영장 발부도 지난 1월 3일에서야 이뤄졌다.
이 씨는 오스템임플란트 이전 상장사 여러 곳에 재직하며 기업공개(IPO·상장), 공시, 자금유치 등의 업무를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식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20일까지 매각분은 3거래일 이후인 12월 23일부터 출금이 가능하다. 회사 측이 횡령사실을 인지한 것은 12월 31일이다. 8일이면 매각 대금을 은닉하고 도주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임원도 아닌 자금담당 팀장급이 어떻게 거액의 회사 자금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는지가 가장 큰 미스터리다. 이 씨는 회사 계좌에서 돈을 빼돌리면서 잔고증명서를 조작해 이를 은폐했다. 최근에는 예전과 달리 기업 자금거래도 거의 비대면으로 진행된다. 인증수단을 모두 가진 자금담당자가 전산으로 돈을 이동시키고 회사에는 자금이 그대로 있는 것처럼 위조서류를 제출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정상 절차를 거친 거래에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회사 경영진이나 상근감사는 잔고증명서만 믿고 실제 자금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셈이다.
오스템임플란트는 8년 전 치과의사들에 대한 로비 사건으로 최대주주인 최규옥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현재 대표이사는 전문경영인이다. 통상 지배주주가 있는 기업에서는 경영권의 핵심인 자금과 인사는 전문경영인에 맡기지 않고 최대주주가 직접 통제한다. 보통 기업의 사내이사는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맡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스템임플란트는 사내이사진 가운에 자금이나 회계담당 전문가가 없다.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가 아닌 상근감사를 두고 있지만 한국거래소 임원 출신으로 자금∙회계전문가로 보기 어렵다. 종합하면 최대주주나 경영진, 감사 등의 자금담당 간부에 대한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웠던 지배구조라 볼 수 있다.
한편 2004년에도 코오롱캐피탈에 470억 원대 대규모 횡령사건이 발생했다. 자금담당 임원이 회사 돈을 빼돌려 주식∙선물∙옵션 등에 투자했다 손실을 본 사건이었다. 코오롱그룹이 하나은행에 회사를 넘기는 과정에서 진행된 자산실사에서 횡령사실이 드러났다. 당시로서는 사상 최대 규모 횡령이었다.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단독 범행으로 결론이 났다. 이후 코오롱그룹은 횡령액만큼 유상증자로 자금을 투입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