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이후 투자 줄어들고 ‘메달밭’ 쇼트트랙 악재로 흔들…‘스노보드’ 이상호는 기대주로 꼽혀
#'효자종목'마저 흔들린다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에 압도적으로 많은 메달을 안긴 종목은 쇼트트랙이다. 1992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한 후 2010 밴쿠버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이 나오기까지 대한민국은 4개 대회, 17개의 금메달을 쇼트트랙에서만 따냈다.
우리나라는 세계가 인정하는 쇼트트랙 강국이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팀 내분과 선수들의 이탈 등으로 전력이 약해진 탓이다.
2021년 10월 쇼트트랙 대표팀은 큰 풍파를 맞았다. 지난 두 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차지한 심석희가 코치와 나눈 과거 대화에서 국가대표팀 팀워크를 저해할 수 있는 내용이 발견돼 파문이 일었다. 팀 내 또 다른 '에이스' 최민정을 고의로 넘어뜨렸다는 의혹도 나왔다. 결국 심석희는 자격정지 징계가 내려지며 대표팀에서 제외됐다. 올림픽 출전 의지를 보인 그는 법원에 부당함을 주장하며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까지 했으나 기각됐다.
대표팀에 남은 최민정은 정신적 피해를 호소했다. 사건 직후 열린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충돌로 부상까지 입었다. 월드컵 2차 대회를 건너 뛴 이후 3차, 4차에 연이어 출전했지만 이전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심석희, 최민정과 함께 국가대표 선발전 3위 이내에 입상해 개인전 출전을 준비하던 김지유의 올림픽 참가도 불확실하다. 월드컵 기간 중이던 2021년 11월 발목뼈 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입어 수술을 진행했다. 이후 진천선수촌에 입촌, 올림픽 출전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몸 상태가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유마저 부상으로 빠지면 대표팀은 2명의 대체선수를 추가로 선발해야 한다.
남자 대표팀에도 전력 유출이 있었다. 남자 대표팀의 평창 올림픽 유일한 금메달리스트였던 임효준이 중국으로 떠났다. 임효준은 2019년 선수촌 훈련 도중 성추행 논란을 일으킨 후 중국으로 귀화했다. 임효준은 제2의 안현수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였다.
올림픽이 열리는 곳이 중국이라는 점도 쇼트트랙 대표팀이 경계할 지점으로 꼽힌다. 대한민국과 더불어 쇼트트랙 강국인 중국은 지난 평창 대회에서 금·은·동메달 각각 1개씩만 획득했다. 중국은 이번 대회 명예회복을 노린다. 임효준을 특별귀화로 데려간 것도 한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경기 내 심판의 개입을 무시할 수 없는 종목이니만큼 중국의 견제도 우리나라 대표팀이 이겨내야 할 요소다.
비록 악재가 겹쳤지만 쇼트트랙 대표팀을 향한 기대는 크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목표로 한 '금메달 1~2개'도 쇼트트랙에서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축소된 동계 스포츠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아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되던 동계 스포츠 종목들은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세를 넓혔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이들 종목들은 다시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남북 단일팀 결성 등으로 평창 대회 내내 가장 큰 화제를 모았던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전력의 큰 부분을 담당했던 복수국적, 국적 회복(타국으로 입양됐지만 한국 국적 회복) 등 이력을 갖고 있던 선수들이 대거 자신이 성장하던 나라로 돌아가 대표팀에서 빠졌다.
평창 대회 당시 남녀 대표팀 모두 개최국 자격으로 본선 티켓을 차지했던 아이스하키팀은 베이징대회에서 볼 수 없다. 올림픽 이후 창단된 최초의 여자 아이스하키 실업팀인 수원시청 선수들을 주축으로 대표팀을 꾸려왔지만 올림픽 최종 예선에서 탈락, 이번 대회에서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도 예선 과정을 뚫지 못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전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귀화 선수 다수가 은퇴하거나 대표팀을 떠났다. 남자 아이스하키는 평창 대회 이후 황폐화가 반복돼왔다. 국군체육부대가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선발하지 않게 됐고 대명 킬러웨일즈가 해체되며 국내 실업팀은 한라와 하이원 두 곳만 남게 됐다. 특히 국군체육부대 아이스하키팀 폐지는 선수들에게 충격을 던져줬다. 선수들에게 군 입대는 곧 은퇴가 된 것이다.
정몽원 한라 회장이 적극성을 보였던 아이스하키협회는 정 회장이 물러난 후 위축됐다. 정 회장의 뒤를 이어 최철원 마이트앤메인 대표가 회장으로 선출됐지만 대한체육회가 '사회적 물의'를 이유로 인준을 거부했다. 현재 협회장직은 1년 넘게 공석이다.
대한민국이 전통적으로 약세였던 설상 종목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전까지 많은 관심과 투자가 이뤄졌지만 대회 이후 관심과 투자가 식어갔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적극 지원하던 스키협회는 평창 대회 이후 롯데 출신 다른 인물들이 이끌고 있다.
노르웨이 혼혈 선수이자 짙은 동남 방언으로 관심을 모았던 크로스컨트리의 김마그너스는 평창 올림픽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수 발전을 위해 협회가 발 벗고 나섰는지 의문이 든다"는 말을 남기고 노르웨이 대표팀으로 떠났다. 다만 별도의 종목단체를 운영 중인 바이애슬론에선 지난 대회에서 합류시켰던 귀화선수 티모페이 랍신, 예카테리나 에바쿠모바가 여전히 남아 태극마크를 달고 베이징으로 향한다.
위축된 설상 종목에서 기대주로 꼽히는 인물은 '배추보이' 이상호다. 4년 전 고향 강원도에서 스노보드 은메달을 획득했던 그는 이후로도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베이징 대회에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썰매 종목의 스켈레톤에서도 메달 획득이 기대된다. '평창 올림픽 스타' 윤성빈의 존재감 덕분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썰매종목 최초 금메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이번 대회 전망은 밝지만은 않다. 평창 올림픽이 열리는 시즌 월드컵에서 대거 입상에 성공했던 4년 전 모습과 달리 이번 2021-2022시즌에서 윤성빈은 종합 11위에 그쳤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