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건조 기간 부족에 무자격자가 화약 설치 만연…장비기사 사고에 업체 책임 회피 꼼수 논란도
터널은 산이나 일반 지형을 뚫어 자동차나 철도차량, 사람들이 통행할 수 있도록 만든 통로다. 터널을 만들기 위해선 먼저 암반을 파내야 한다. 브레카(땅을 파내려가는 장비)를 이용해 암반에 구멍을 내고 터널을 뚫어나간다. 이후 터널공사에 쓰이는 시공법은 NATM 공법, TBM 공법 2가지로 나뉘며 NATM 공법을 주로 쓴다. NATM 공법은 굴착한 터널 안쪽 천장과 터널 벽면에 2~3m 길이의 고정봉을 일정 간격으로 박은 후 그 위에 콘크리트를 입히는 방식으로 암반의 붕괴를 방지하면서 터널을 뚫어 나가는 방법이다.
이후 점보드릴기사의 천공 작업을 거쳐 다이너마이트를 삽입하는 장약, 발파, 버력처리, 부석정리, 콘크리트 타설·양생 등을 진행하는 숏크리트(시멘트), 록볼트 시공, 터널 계측 순으로 이어나간다.
# “언제 무너질지 몰라…빠른 진행을 더 중요시해”
이 중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작업은 숏크리트다. 숏크리트 작업은 시간을 두고 양생(건조작업)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재 대부분 터널공사 현장에서는 빠른 공정을 위해 숏크리트 작업을 한 뒤 바로 다음 작업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터널공사 노동자 A 씨는 “양생을 제대로 거치지 않아 (터널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며 “현장에서는 빨리 진행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최근 붕괴된 광주 서구 화정 아이파크도 콘크리트 양생 기간이 부족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건설노조 광주전남본부가 확보한 화정 아이파크 201동 콘크리트 타설 일지에 따르면 12~18일 정도 양생기간을 거쳐야 할 층이 6~10일 만에 타설됐다. A 씨는 “수십 년간 터널공사 현장에서 일해왔는데 양생 기간을 지키는 터널은 거의 없었다”며 “공정 단계를 준수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일부 터널공사 현장에서는 화약 설치를 자격이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하는 것으로도 전해진다.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령 제28조 제1항에는 ‘국가기술자격법에 따른 화약류제조·화약류관리 및 화약취급 분야 국가기술자격취득자는 행정안전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시·도경찰청장의 화약류제조보안책임자면허 또는 화약류관리보안책임자면허를 받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제28조 제2항에는 ‘제1항에 따른 면허를 받지 아니한 사람은 화약류제조보안책임자 또는 화약류관리보안책임자가 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즉, 터널 내 화약 설치는 화약 취급인만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A 씨는 “현장에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화약 설치를 하면서 불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음 공정을 운에 맡긴 채 일한다. 그런데 사고가 나면 정작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고 넘어가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외국인 노동자는 단순 보조 작업만 실시한다”며 “조만간 선제적으로 서울시 전 공사현장을 확인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 '근로자성' 부여 안된 개인사업자 고용
붕괴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터널공사 기사를 관리하는 일부 업체들은 사고 발생 시 책임을 피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터널공사의 경우 특수장비 기사들은 각각 자신이 조종하는 특수장비를 가진 업체와 고용 계약을 한다. 이때 대부분 장비 업체는 기사를 근로자성이 부여되지 않는 개인사업자로 고용한다. 근로자성이 없는 개인사업자기에 기사에게 사고가 발생해도 업체에 책임을 묻기 힘들다.
그러나 업체 계약서를 보면 기사의 근로자성이 다분히 작용한다. 일요신문i가 입수한 국내의 한 한 특수장비 기사의 계약서를 보면 ‘계약일반조건’에 ‘계약시간’이 존재한다. 포괄임금제도 명시돼 있다. 포괄임금제란 근로계약 체결시 법정기준 노동시간을 초과한 연장, 야간근로 등이 예정되어 있는 경우 연장·야간·휴일수당을 미리 정해 매월 급여와 함께 지급하는 임금 산정 방식을 말한다.
해당 계약서를 살펴본 산업재해 전문 법무법인 마중의 김용준 변호사는 “계약시간과 포괄임금제 명시만으로 근로자성이 입증된 것”이라며 “장비업체가 사고 발생시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의도가 너무나 잘 보인다”고 강조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것은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실질적으로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고 돼 있다.
김 변호사는 “2018년 대법원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에 대해 근로자성을 부여했다”며 “당시 개인사업자로 고용된 공사 작업 인력이 건설사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았다고 해서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고 전했다. 위드유HR컨설팅 소속 류순건 노무사도 계약서를 살펴본 뒤 “건설장비회사와 건설장비를 운전하는 운전원으로 보인다”며 “운전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할 것으로 보이며 또 해당 건설장비가 사측 소유면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애초 터널 붕괴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책임자와 감리사의 정확한 감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터널, 지하철 등은 공사 과정에서 근로자가 사망해도 건물처럼 시민들 눈에 확 띄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사건이) 묻힌다”며 “숨은 공사현장이 건물 지을 때보다 안전수칙을 더 잘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터널공사의 경우, 24시간 가동되기에 매뉴얼과 안전수칙을 잘 지키는지 현장 책임자와 감리자가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며 “중대재해 사고 발생 확률이 높은 곳일수록 현장 투입 인원 관리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