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폭적인 그룹 지원 속 시가총액 10조 원 전망도…공모가 거품론·얼어붙은 투자심리 악재 이겨낼지 주목
#또 다른 대어가 될까?
1월 25~26일간 현대엔지니어링은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공모가를 확정한 뒤 2월 3∼4일 일반 청약을 받는다. 이어 2월 15일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할 예정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이 공모하는 주식은 모두 1600만 주다. 이 중 구주매출이 1200만 주(75%), 신주 모집이 400만 주(25%)다. 구주매출이란 기존 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 지분을 일반인에게 공개적으로 파는 것이다. 공모 희망가는 5만 7900∼7만 5700원이고, 예상 시가총액은 4조 6300억~6조 520억 원. 공모 예정 금액은 9264억∼1조 2112억 원에 이른다.
일각에선 시가총액이 최대 10조 원까지 가능하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1월 5일 비상장 주식거래 플랫폼 ‘증권플러스 비상장’에서 현대엔지니어링 주식은 12만 5000원에 거래됐다. 이를 기준으로 한 예상 기업가치는 9조 4942억 원 수준이다. 경기 변동성이 큰 건설사 입장에선 대한민국 재계 2위인 현대차그룹사 물량만으로도 큰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차 신사옥 글로벌 비즈니스센터(GBC) 건설 등 그룹의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실제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차그룹의 지원 아래 성장해왔다. 지난 2013년 현대엔지니어링은 2014년 현대차그룹 건설 계열사인 현대엠코를 흡수합병했다. 당시 현대엠코 합병 배경으로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자산 5조 원 이상 대기업집단 계열사가 총수일가 지분이 20% 이상인 계열사)이 꼽힌다. 당시 현대엠코는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35.6%로 그룹 계열사 공사 대부분을 수주해 성장세를 보였다. 그 결과 2004년과 2005년 현대엠코 지분 25%를 375억 원에 확보한 정의선 회장은 합병 전까지 476억 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지분 가치는 2000억 원대로 불어났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의 칼날이 현대엠코를 향했다. 공정위 제재를 피해 그룹사 물량은 현대엠코에서 현대엔지니어링으로 옮겨갔다. 2013년 2조 5899억 원이던 현대엔지니어링 매출액은 이듬해 5조 6675억 원으로 2배 넘게 늘어났다. 화공·전력 플랜트 매출 비중이 94%에 달했지만, 합병 이후 주택·건축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지난해 3분기 플랜트·인프라와 주택·건축사업의 매출 비중은 각각 42%, 45%다. 현재 현대엔지니어링 전체 매출의 25%가 현대차그룹에서 나온다. 이에 현대엔지니어링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연속 모회사 현대건설보다 많은 영업이익을 냈다. 2021년도 이 같은 추세에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총수일가는 현대건설 지분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IPO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신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현재 에너지 전환과 친환경 분야에서 6가지 사업을 추진 중이다. △폐플라스틱 자원화 △암모니아 수소화 △초소형원자로 △자체 전력 생산사업 △CO2 자원화 △폐기물 소각 및 매립 사업 등이다.
#투자심리 악화에 거품 논란까지…
시장 상황은 현대엔지니어링에 우호적이지 않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조기 긴축’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국내를 포함한 글로벌 증시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1월 24일 코스피 지수는 13개월 만에 2800선이 무너진 데 이어 25일 2720까지 떨어졌다. 최근의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올해 IPO 최대어 LG에너지솔루션에 몰린 자금이 현대엔지니어링으로 흘러갈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건설주 전반의 투자심리가 악화된 점도 변수다. 지난 1월 11일 HDC현대산업개발의 광주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했고, 주가는 연일 하락하며 10일 2만 5800원에서 24일 1만 4300원으로 급락했다. 지난 1월 20일 DL이앤씨도 서울 성동구 ‘아크로서울포레스트’ 업무동인 디타워에서 이상 진동이 접수된 후 다음날 주가는 7.69% 내린 11만 4000원에 장을 마쳤다. 1월 25일 비상장 주식거래 플랫폼 ‘증권플러스 비상장’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 주가는 10만 5000원으로 시가총액은 7조 9751억 원으로 20일 만에 12.5% 감소했다. 1월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과 부동산 시장 하락세 등도 악재로 부상하고 있다.
공모가 거품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공모가를 산정할 때 국내외 주식시장에 상장된 대우건설·GS건설·삼성엔지니어링 등 국내 건설사 3곳과 글로벌 EPC 건설사 9곳을 비교 기업으로 택했고, 기업가치 대비 상각 전 영업이익(EV/EBITDA) 방식을 적용했다. 해외 건설사 9곳의 EV/EBITDA는 약 11.64배에 달하지만, 국내 건설사 3곳의 EV/EBITDA 평균은 약 5배 수준에 그친다. 그간 현대엔지니어링은 해외 플랜트 사업을 줄이고 국내 주택 사업에 집중해왔다. 해외 매출 비중은 2019년 50.8%에서 2020년 45.9%, 2021년 3분기 말 43.6%로 매년 하락해왔다. 같은 기간 주택·건축 매출 비중은 38.3에서 43.5%, 45.7%로 늘어왔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1월 24일 기준 현대건설 시가총액이 4조 6714억 원, GS건설은 3조 4233억 원, 대우건설은 2조 3649억 원이다. 지난해 이들의 시공능력 평가 순위는 각각 2위, 3위, 5위”라며 “반면 현대엔지니어링은 같은 순위에서 6위라는 점에서 과대평가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모회사인 현대건설을 뛰어넘는 덩치나 기술력을 갖고 있지 않아 제2의 크래프톤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김창학 현대엔지니어링 대표는 “국내 비교 기업 3개사 중 삼성엔지니어링을 제외한 2개사는 종합건설사이긴 하지만, 최근 들어 국내 주택 및 건축사업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반면 현대엔지니어링은 매출의 상당 부분이 해외 경쟁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글로벌 플랜트 회사들을 비교 대상으로 포함했다”고 말했다.
총수일가 물량을 포함해 구주매출이 공모주의 75%에 달하는 것도 부담이다. 구주매출은 공모로 조달한 투자금이 회사로 유입되는 것이 아니고, 기존 주주의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정의선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이 각각 534만 주, 142만 주를 처분한다. 이는 전체 구주매출의 절반 이상이다. 상단가로 계산하면 정의선 회장은 약 4000억 원, 정 명예회장은 약 1000억 원을 확보하게 된다. 이에 현대엔지니어링 노동조합은 “구주매출이 신주모집의 3배나 되는 과도한 비대칭 공모는 신주 발행을 통해 새로운 투자금을 끌어들이려는 IPO의 취지를 해치고 개인 대주주의 투자금 회수에 악용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신주 규모 및 기존 주주의 자금 소요 등을 고려해 구주매출 수준을 결정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향후 6개월 후에 보호예수물량 매도 계획도 현재로서는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는 것이 사측 설명이다. 신사업 추진을 위한 유상증자 관련해서 1조 8000억 원의 순현금을 보유하고 있어 대규모 신주를 발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선을 긋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구주매출 물량이 많긴 하지만, 오너일가 지분이 여전히 남아 있다. 현대차그룹에서 일감을 몰아줄 것으로 기대된다”며 “현대건설은 기술 경쟁력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굳이 그룹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상장 후에도 정의선 회장은 356만 1308주(지분율 4.5%)를, 정몽구 명예회장은 213만 1404주(2.7%)를 계속 보유하게 된다.
이에 대해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지난 25일에 진행한 온라인 기자간담회 내용 이상 추가로 밝힐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