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경제적 발언 “국민 혈압 오른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부처 수장들이 자신감 있게 쏟아냈던 말들이 시간이 지난 뒤 ‘허언’으로 변하면서 신뢰를 잃거나 질책을 받고 있다. 가뜩이나 경제 사정이 좋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경제부처 수장들의 가벼운 말이 도마에 오르고 있는 셈이다. 구설에 오른 그들의 말끝을 따라가 봤다.
최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자신감 있게 했던 말 때문에 여러 곳에서 뭇매를 맞고 있다. 박 장관은 지난 6월 30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물가 상승률을 4%로 수정, 발표하면서 “올해 성장률을 5%에서 4.5%로 낮추고 물가는 3%에서 4%로 현실화했다”고 말했다. 물가를 4%로 억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최근 돌아가는 분위기를 봐서는 올해 물가를 4%에 맞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있다. 7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4.7%로 올 들어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소비자 물가가 7개월 연속 4%대를 넘으면서 7월까지 물가상승률은 4.4%를 기록했다. 올해 물가를 4%에 억제하기 위해서는 향후 남은 5개월간의 물가를 평균 3.4%에 맞춰야 한다.
그러나 재정부는 최근 물가 전망에서 “최근 중부지방 집중호우 및 이른 추석의 영향으로 8월에도 채소, 과실류 가격 강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른 추석의 영향으로 8월 소비자 물가도 4%대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사실상 올해 소비자물가가 4%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박 장관은 또 정유사의 휘발유 값 인하 방침이 종료될 당시 “휘발유 가격이 리터(ℓ)당 2000원 수준은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해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말을 한 지 하루 만인 지난 7월 12일 서울지역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ℓ당 2013.89원으로 2000원을 넘어선 것이다. 이후에도 가격 상승세는 지속돼 지난 2일에는 ℓ당 2028.59원까지 오르면서 사상 최고가(2008년 7월 13일, 2027.79원)를 갱신했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현재 ℓ당 2000원을 넘긴 곳은 강남 강동 관악 마포 서초 용산 종로 등 18개구에 달하는 실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박 장관의 발언은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굳이 정하지 않아도 되는 휘발유 가격 수준을 이야기한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이미 ℓ당 2000원을 넘겨버린 서울 지역 시민들의 반응이 좋지 않고, 일각에서는 ℓ당 2000원을 ‘박재완 라인’이라며 부담을 주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2일 현재 ℓ당 1952.44원으로 2000원대를 향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박 장관은 자신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8·5제’로 인해 또 다른 비판도 받고 있다. 그는 지난 7월 2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선진국의 경우 하절기에 일광절약시간제(서머타임) 적용으로 사실상 오전 8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이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도 근무시간을 바꿀 때가 됐다”면서 “앞으로 나부터 오전 8시까지 출근하고, 오후 5시에 퇴근해 공공부문 근로시간 조정에 앞장서겠다. 가급적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저녁 약속을 오후 6시로 잡아 5시가 지나면 사무실을 떠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취임 초부터 내수 활성화를 위해 8·5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그는 실제 이날 회의 뒤에 인사과에 유연근무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하필 이날부터 서울과 중부지방에 폭우가 쏟아져 인명과 재산피해가 속출하면서 박 장관이 행보가 도마에 올랐다. 8·5제에 대한 공직사회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집중호우 기간에 시급하지도 않은 유연근무제를 강행했다는 지적이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도 자신이 했던 말이 허언이 되거나 현재 상황을 반영하지 못해 비판을 받고 있다. 최 장관의 대표적인 허언은 기름값 원가계산 발언이다. 최 장관은 취임 초기 석유제품 가격과 관련, “내 전직이 회계사 아니냐. 오랜만에 (회계사무소) 단기 개업한다는 마음으로 직접 원가계산을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이후 정부는 지경부를 중심으로 석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석유가격 분석에 들어갔다.
7월 18일 기자간담회에서는 “(기름값 상승의 책임 소재를 놓고) 정유사와 주유소가 서로 손가락질하는데 누가 옳은지 들여다보겠다”면서 “가격이 제일 높은 주유소부터 500개를 표본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석유가격이 부풀려졌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고, 결국 석유회사들을 압박해 정유사 자율(?)로 기름값을 인하하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언론의 뭇매를 맞았던 최 장관은 최근에 물가와 관련한 발언으로 또다시 좋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최 장관은 지난 6월 “지금의 물가인상은 대외적 요인이 크다. 정부가 정책을 잘못해서 물가가 많이 올라간 것으로 모는 사람이 있는데,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라면서 “누구를 비난할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견디고 가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 장관이 재정부 차관으로 있을 당시 고환율 정책을 지휘하다 물가 급등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대기업, 수출기업 우선 정책이 옳은지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다.
또 다른 국가보다 높은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정부 물가 정책에도 문제가 없다고 하기는 힘들다. 우리나라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소비자 물가 상승률(3.1%)보다 1.3%포인트나 높았다. 특히 식품물가 상승률은 8.5%로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높았고, OECD 평균 식품물가 상승률(4.0%)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았다.
경제부처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물가 안정에 대한 지시를 하고 있고, 국민들을 상대로 물가 대책 아이디어를 모으는 등 범정부적으로 물가 안정에 주력하는 상황”이라며 “서민들과 관련된 식품물가 상승률이 급등하면서 민심이 좋지 않은데 경제부처 수장이 세계적인 일이니 참고 견디라고 말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해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한은의 금 매입 때문에 도마 위에 올랐다. 그동안 언론과 민간 경제전문기관들은 금값 상승 가능성을 지적하며 한은의 금 보유량 확대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하지만 김 총재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금 보유량 확대 필요성 지적에 “금 가격과 변동성을 감안해 금 비중 확대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면서 사실상 금 매입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해 11월에는 감사원이 한은에 금 투자 확대까지 권고하고 나섰지만 금 매입에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7월 한국은행은 13년 만인 외환보유액 12억 4000만 달러를 들여 금 25톤(t)을 매입했다. 이에 따라 1998년 이후 14.4t이었던 한은의 금 보유량은 39.4t으로 뛰었다. 하지만 그동안 금 매입에 부정적이었던 한은이 금값이 사상 최고치인 온스당 1600달러를 넘어선 뒤에서야 대량 매입하면서 상투를 잡았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