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후보 가장자산 친화적 공약 잇따라 발표…실제 산업 육성 효과 두고는 우려 목소리
#"디지털 자산, 내가 키우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최근 가상자산 투자로 얻은 소득에 대해 비과세 한도를 상향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후보는 특정 금액을 밝히진 않았으나 한도를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윤 후보는 보다 구체적이다. 윤 후보는 현행 250만 원인 코인 양도차익 기본공제를 주식과 동일하게 5000만 원으로 상향하겠다고 약속했다.
두 후보는 정부가 2017년 9월부터 금지한 가상자산공개(ICO) 허용 방침도 내놨다. ICO는 특정 사업자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새로운 코인을 만들기 위해 불특정 다수 투자자들로부터 초기 개발 자금을 모으고 그 대가로 자체 코인을 나눠주는 투자 유치 수단이다. 주식에서의 기업공개(IPO)와 유사하지만, IPO와 달리 주관사가 필요 없고 명확한 상장 기준·규정이 없어 훨씬 쉽게 자금을 모집할 수 있다.
윤석열 후보는 ICO를 허용하되 곧바로 시행하면 다단계 사기 등 투자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거래소발행(IEO) 방식부터 도입한다고 밝혔다. IEO는 사업자가 자체 진행하는 ICO를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대행하는 방식으로, 거래소가 사전에 해당 토큰을 검증한다. 윤 후보는 대체불가토큰(NFT) 거래 활성화에도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후보는 ICO는 물론 실물자산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자산인 증권형토큰공개(STO) 발행 허용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STO는 사업자가 주식·채권·부동산·미술품 등 다양한 실물자산을 토큰화해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는 가상자산이다.
두 후보는 정책 전담 기구의 설립 필요성에도 공감하고 있다. 이 후보는 가상자산 관리·감독 전담기구 설립을 검토 중이다. 윤 후보는 각 부처에 흩어진 가상자산 관련 업무를 디지털산업진흥청을 설립해 전담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가상자산법 제정과 투자자 보호 방안 마련을 두고도 유사한 의견을 제시했다.
이재명 후보는 투자자·사업자 보호 제도 정비, ICO 기준 마련, 공시제도 투명화를 약속했다. 윤석열 후보는 불완전 판매·시세조종·작전 등을 통한 부당 수익은 사법 절차를 거쳐 전액 환수하고 해킹·시스템 오류에 대비한 보험 제도를 확대키로 했다. 또 법률·정책상 허용하는 것만 나열한 뒤 나머지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가 아니라 금지행위 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덧붙였다.
후보들의 공약은 구체적 내용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큰 맥락은 제도화와 육성에 힘쓰겠다는 내용이다. 가상자산을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과세 방침을 내놓는 현 정부의 이중적 태도에 불만을 품은 업계와 투자자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표심을 얻겠다는 전략이다.
#"키워드만 남발하지 말고 구체성 확보해야"
전문가들은 대선 후보들의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현실성과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실제 가장자산 시장에서 최근 주목받는 분야는 탈중앙화 금융시스템 디파이(DeFi)로, 중앙기관의 통제 없이 스마트 계약과 블록체인을 이용해 가상자산 예치·대출·송금·투자 등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탈중앙화 구조로 업비트 같은 중앙화 거래소가 시행하는 고객확인인증(KYC) 절차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손이 닿기 어렵다.
이와 관련, 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는 “대선 후보들이 금융의 디지털 전환에 따라 그간 자산화하지 못한 것들이 기술을 통해 자산이 되는 현상을 인지하고 미래 산업으로서 대전환을 약속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면서도 “디파이와 NFT는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 수 있는 분야가 아니기에 대선 후보가 관련 공약을 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간 정부가 정책적으로 이끌어서 커진 산업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정부가 규제하거나 육성할 수 있는 방법도 기술적으로 없다”고 덧붙였다.
공약을 뜯어보면 과세의 경우 기타소득으로 분류한 가상자산 소득을 금융소득으로 잡히도록 정비하는 작업 등이 선결과제로 꼽힌다. 과세 인프라 구축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글로벌하게 이동하는 자산이기 때문에 국내 인프라만으론 제대로 과세할 수 없다. 중앙화 거래소를 거치지 않아 정부 규제 시스템이 따라갈 수 없는 디파이 같은 시장에서는 거래 자금 추적이 불가능하다. 시장 구조를 잘 모르는 투자자들만 세금을 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되면 성실한 납세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고조될 수 있다.
ICO 허용의 긍정적인 효과는 국내 기술 개발과 인프라 구축, 인력 양성 등이다. 다만 IEO는 투자자 보호 효과가 없다는 반론이 나온다. IEO는 거래소가 정보가 더 많으니 프로젝트를 잘 선별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지만, 거래소가 프로젝트팀과 짜고 토큰을 상장해서 덤핑 판매하거나 거래소가 고액의 상장비용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이미 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다는 업계 전언이다. STO 역시 기존 디지털 자산과 달리 확실한 기초 자산이 있기 때문에 별도의 전용 플랫폼에서 거래돼야 하는 만큼, 디테일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 시점에서는 거래소 독과점 해소가 더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은행 실명계좌를 확보하지 못해 원화 거래가 중단된 중소형 거래소들의 문제를 정리하지 않고 4대 거래소 등 한쪽 입장만 대변한다면 이 시장이 정부가 생각하는 만큼 정책 실효성이 나타나진 않을 것”이라면서 “진흥 공약을 키워드처럼 제시했지만 구체적으로 나오진 않아 아쉽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이유로 일각에서는 유권자들이 원하는 내용만 담은 표심잡기용 공약이라는 혹평을 내놓기도 한다. 지금의 공약들은 방향성이 없다는 것. 당선된 이후에도 실제 실행 의지를 갖고 있을지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같은 후보의 공약에도 어떤 내용은 투자자 보호에 방점이 찍혀있다면 다른 내용은 산업 진흥에 방점이 찍혀있어 모순적이다”며 “큰 그림을 그려놓지 않은 채 그때그때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이슈에 대해 답을 내다보니 생기는 문제”라고 꼬집었다.
피해자들이 불리한 위치에 놓인 구조부터 손을 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규제의 미비로 거래소에서 해킹이나 무단 출금 등이 발생하면 피해를 입은 이용자가 거래소의 고의나 과실을 입증해야 손해를 보전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어떻게 해킹이나 무단 출금이 이뤄졌으며 거래소 보안 조치는 어땠는지 파악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일반인보다 거래소가 데이터 접근성이 높은 만큼 약관 등을 변경해 거래소가 입증하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