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카라쿠배당토’ IT 플랫폼 기업으로 ‘탈통신’ 러시…성장에 대한 의문, 보상에 대한 불만 등이 이직 배경
지난 2월 8일 LG유플러스는 내부 통신망에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DX)분야 인재 채용’ 공고를 올렸다. DX분야(S/W 엔지니어,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UI/UX)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해 임직원들의 추천 채용을 받겠다는 내용이었다. 추천을 통해 인재 영입에 성공한 직원에게는 300만 원씩을 지급키로 했다. LG유플러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일 잘하는 개발 직원들이 워낙 많이 퇴사해 새로 인재를 구하는 모양”이라고 귀띔했다.
LG유플러스만의 상황은 아니다. KT 직원 A 씨는 “체감상 개발 직군 젊은 사원들이 대리 달기 전에 절반은 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KT의 다른 직원 B 씨는 “올해가 시작된 지 한 달이 겨우 지났는데 벌써 퇴사자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 마케팅 쪽에서 일하는 직원 C 씨는 “우리 쪽은 아니지만 개발자 쪽은 말 그대로 ‘퇴사 러시’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SK텔레콤의 경우 유선통신사업을 맡은 자회사 SK브로드밴드에서 개발 인력 유출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사를 떠난 직원들이 주로 향하는 기업은 ‘네카라쿠배당토’. 이들 플랫폼 기업들은 경력직 수시 공채와 대규모 신입 공채를 번갈아 열면서 개발인력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LG유플러스에서 IT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D 씨는 “한번은 거의 팀 전체가 카카오로 이직해 우스갯소리로 카카오에서 그 팀장한테 상 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 플랫폼 기업 관계자는 “특히 최근의 이직은 다양한 포지션을 대상으로 연중 상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통신사 및 제조사 등 전통 대기업에서 새로운 도전을 위해 오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통신사 내부 개발 직군들이 ‘탈통신’을 희망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개인의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통신사 개발직군들은 직접 개발에 참여하기보다는 주로 외주업체를 선정해 개발을 맡기고 감독을 맡는다. LG유플러스 직원 E 씨는 “외주 감독을 주로 하다 보면 실력이 녹슬 수밖에 없고 개발자 인력풀 안에서 착실히 도태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앞서의 KT 직원 A 씨는 “통신사 같은 대기업들은 플랫폼 기업들과 달리 개발 장비나 프로그램, 세미나나 스터디 지원이 약하고 내부 구성원이 최신 개발 트렌드에도 해박하지 않아 정말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따르면 SK텔레콤 개발직군들 사이에서 ‘이곳에 입사하면 경력무덤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SK텔레콤 소속 한 이용자는 ‘대우는 좋지만 성장할 수 없고 커리어가 꺾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 가는 걸 추천한다’고 쓰기도 했다. SK브로드밴드 소속 이용자도 ‘은퇴하기 전 더 이상 경력 욕심이 없을 때면 몰라도 여긴 배울 게 없다’고 주장했다. 최근 SK텔레콤에 입사했다고 밝힌 신입 직원 F 씨도 “제대로 된 개발을 하는 조직은 극소수고 대부분은 개발하는 척을 한다”며 “전혀 스펙이 안되는 잡무 투성이”라고 불평했다.
국내 IT 전문 헤드헌터 기업 모멘텀HR의 오지영 부장은 “플랫폼 기업에 있다가 통신사로 이직하신 분들은 굉장히 갑갑해하면서 금방 나온다”며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열심히 일하다가 잠시 쉬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통신사나 대기업 쪽으로 이직해 몇 년 쉬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창업을 하거나 스타트업 쪽으로 빠지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의 성과 대비 보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퇴사를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다. 실제 통신사 내부에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회사가 직원들과 성과를 나누는 데 인색하다는 점에 불만이 터져 나온다. 통신 3사는 2021년 4조 원대의 역대급 실적을 냈다. LG유플러스는 내부에서 최고 645%까지 잠정 집계됐던 성과급이 지급 당일 최고 475%로 삭감 고지돼 직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2021년 1조 6718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KT는 직원 연봉을 삭감하고 성과급이 아닌 특별격려금 명목으로 일괄 100만 원을 지급한 것에 그쳐 빈축을 샀다.
반면 '네카라쿠배당토'에서는 개발직군들에게 업계 최고의 대우를 제공하면서 그야말로 ‘모셔오고’ 있다. 헤드헌팅업체 온리원파트너스에서 IT·재무회계 담당 헤드헌터인 임동준 차장은 “경력자를 모셔오면서 스톡옵션을 준다거나 사이닝 보너스(새로 합류하는 직원에게 주는 일회성 인센티브)를 1억 원까지도 지급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의 LG유플러스 직원 D 씨는 “쿠팡에서 60% 이상 연봉을 인상해주겠다며 이직을 제안해 흔들린 적 있다”고 고백했다. KT의 B 씨는 “우리 회사 대리급 연봉이 네카라쿠배 초봉보다 적어 이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경직된 기업 문화도 개발직군들 이탈에 속도를 더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의 LG유플러스 직원 E 씨는 “연차 높은 분들이 데이터 툴을 다룰 줄 몰라 사원급들에게 업무를 모는 현상이 반복되고 사원급 고과는 안 중요하다며 인사평가를 낮게 준다”며 “사원들은 처음 입사할 때와 달리 잔뜩 실망해서 떠나고 결국 내부적으로 평사원 비율이 1~2%에 불과한 역피라미드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KT 직원 A 씨는 “1년마다 프로젝트를 계획하는데 임원의 말에 따라 기존 프로젝트를 폐기하는 경우가 많아 업무가 휙휙 바뀌는 정도가 심하다”며 “1년 이상 프로젝트나 직무를 유지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지속적인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라고 비판했다. 최근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힌 SK텔레콤 직원 G 씨는 “소위 말하는 ‘꼰대’들이 개발 업무를 잘 몰라 아랫사람한테 일감 몰아주는 경우가 많고 하나도 키워주지 않으면서 생색만 낸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앞서의 임동준 차장은 “2030 개발자들이 젊고 트렌드에 민감한 데다 ‘꼰대 문화’가 덜한 플랫폼 기업을 선호하는 분명한 흐름이 있어 쏠림현상이 심화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한 통신사 관계자는 “대기업들 대부분 우리 회사처럼 외주를 주고 있기 때문에 업계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꼭 코딩을 직접 해야만 개발인 것이 아니라 개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관리하는 것도 개발 업무”라고 반박했다. 다른 통신사 관계자는 “일부 불만을 가진 분들도 있을 수 있지만 통신사는 큰 조직이기 때문에 모든 팀의 분위기가 다 같지 않다”며 “만족하며 일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