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스·가짜뉴스·가짜테러 등 수년 전부터 지속…목적은 서방 진출 원하는 ‘이웃’ 경제 기반 약화
군사 전문가들의 말처럼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러시아다. 하이브리드 전쟁이란, 재래식 전투와 더불어 가짜뉴스, 심리전, 사이버 공격, 정치공작 등으로 상대국에 공포와 혼란을 일으키는 현대전을 일컫는다. 전면전으로 비화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도 초기에는 이런 공작부터 진행됐다. 요컨대 우크라이나를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해 고전적인 재래식 전투 방법에만 의존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우크라이나에 대한 하이브리드 전쟁을 벌여왔던 러시아는 총성이 울리지 않는 첨단 전쟁을 통해 천천히, 그리고 은밀하게 우크라이나를 흔들어 왔었다.
최근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이미 오래 전부터 자국을 상대로 하이브리드 전쟁을 벌여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군사 전문가들 역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전형적인 하이브리드 전쟁의 예라고 말한다. 침공하기 전부터 마치 벌써 전쟁이 발발한 듯 혼란과 위기감을 조성해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해왔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사이버 공격과 폭탄 테러 위협에 대해 부인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인 드미트로 쿨레바는 이를 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취약한 민주주의를 내부로부터 파괴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쿨레바는 “우크라이나에 사이버 공격을 가하거나, 금융 시스템에 압력을 가하는 행위 또한 러시아 침공 계획의 일부다”라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민들 사이에서 자국의 지도자가 서방 강대국들에게 휘둘리는 무능한 꼭두각시라는 인식을 조성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를테면 미국이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통제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것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오랜 전술인 ‘허위 정보로 소셜 미디어를 점령하라’는 명령에 따른 러시아 사이버 부대의 메시지라고 말한다. 전직 미 국방장관인 리온 파네타는 “러시아는 그동안 하이브리드 전쟁을 계속해서 발전시켜왔고, 어떤 면에서는 완벽하게 수행해왔다”고 평했다.
그런가 하면 독일 베를린에 있는 독일안보문제연구소(SWP)의 연구원인 마르가레테 클라인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하이브리드 전쟁에 있어 비군사적 방법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미 러시아는 8년째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하이브리드 전쟁을 벌여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클라인은 “이는 영토를 군사적으로 점령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 나라에 대한 영향력에 관한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하이브리드 전쟁은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벌어지는 걸까. 먼저 사이버 공격이 있다. 지난 1월 중순 우크라이나 국방부 웹사이트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최대 상업은행인 프리바트 은행과 국영은행인 JSC 오샤드 은행에 전례 없는 디도스 공격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인터넷뱅킹과 전국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일제히 마비됐으며,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모든 게 러시아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미 백악관 역시 나토에 사이버보안 고위관리를 즉시 파견하면서 “러시아가 사이버 공격을 저지르는 이유는 한 나라의 정부에 대한 신뢰를 흔들어 놓거나, 사태 파악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다”라고 지적했다. 빅토르 조라 우크라이나 사이버 담당관 또한 “이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전쟁의 일부다. 사이버 공간 역시 전쟁 영역 가운데 하나다”라고 말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이런 심리적인 작전을 펼치는 이유는 혼란과 불안감을 조성하기 위해서다”라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가짜 깃발’ 작전도 있다. ‘가짜 깃발’이란, 과거 16세기 해적들이 바다 한가운데서 가짜 깃발을 휘날리면서 상선에 다가간 데서 유래된 표현이다. 이런 작전에 대해 제임스 루이스 CSIS 연구원 겸 기술전문가는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행위는 10년 이상 러시아 군사독트린의 일부였다”면서 “러시아인들이 배운 한 가지 사실은 거짓말을 충분히, 그리고 자주 퍼뜨리면 믿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가 가짜뉴스를 양산한다는 의심은 2016년 미국 대선 때부터 줄곧 불거져 왔다. 러시아인들이 거짓말을 트윗으로 퍼나르기 위해 인공지능을 사용해서 수백 개의 가짜 계정을 만들어낸다는 소문도 있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목적 가운데 하나는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다. 즉, 상대국으로부터 되레 공격을 받은 양 조작해서 전쟁을 일으키는 핑계를 만들기 위해 사용된다. 일례로 자칭 러시아 연방통신사 ‘아비아(Avia.pro)’는 1월 23일 “미국이 중전차와 경장갑차를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러시아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태세를 취하고 있는 듯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팩트체크 웹사이트 스탑페이크(StopFake.org) 조사에 따르면 여기에는 어딘가 수상한 점이 있었다. ‘아비아’라는 매체의 주소지는 네덜란드로 되어 있지만, 오픈 소스 데이터를 조사한 결과 도메인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한 아파트의 개인 주소로 등록되어 있었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상대국을 비난하면서 공포감을 조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1월 19일 푸틴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당국이 평화적인 해결책에는 관심이 없다고 비난하면서 “오히려 그들은 돈바스공화국에 기습공격을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러시아가 침공 구실을 만들기 위해 ‘가짜 깃발’을 휘두르고 있다고 경고했으며, 독일 dpa통신 역시 “러시아가 침공 명분을 만들기 위해 돈바스공화국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러시아인을 대상으로 인종청소를 벌이고 있다는 등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된 가짜뉴스는 지난달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짜 깃발은 SNS에 올라오는 동영상에서도 종종 확인되고 있다. 가령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이 공개한 한 동영상에서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포격으로 다리가 날아간(척하는) 한 남자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무릎 아래가 절단돼 고통스러워하는 이 남성은 하지만 사실 의족을 착용하고 있었으며, 이 사실이 들통나자 결국 이 영상은 삭제됐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 국영 TV 방송국인 ‘로시야 1’이 보도한 또 다른 동영상에서는 한 종군기자가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으로 도네츠크의 도시가 공격받고 있으며, 우크라이나군의 침공이 임박했다고 주장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가짜였다. 이에 라트비아 외무장관인 에드가르스 린케비치는 ‘블룸버그’를 통해 “이 모든 게 할리우드 영화처럼 만들어지고 있다”고 비난했으며, 쿨레바 외무장관은 “러시아여, 가짜뉴스 생산 공장 가동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런 거짓 영상 가운데는 과거 영상을 짜깁기하는 식으로 조작된 경우도 많다. 가령 러시아로 도망가는 우크라이나인들을 공격하기 위한 폭발물을 적재한 차량을 담은 화면의 경우, 사실은 2019년에 촬영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분리주의자들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에 올라온 동영상도 수상하긴 마찬가지였다. 우크라이나 동부 숲에서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과 정부군이 격전을 벌이고 있는 이 영상은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오는 등 매우 긴박해 보였다.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정체 모를 쾅 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 가운데 철모를 쓴 한 병사가 절규하면서 쓰러지는 듯한 모습도 비쳤다.
러시아 국영 채널의 보도에 따르면, 영상 속 병사는 우크라이나군 소속의 공작원으로 친러시아 분리주의 영토로 보내진 작전 부대의 일원이었다. 이 병사의 임무는 호를리프카에 있는 염소 공장을 폭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영상 역시 모두 가짜였다. 분석 결과, 영상 속에서 들리는 총격과 폭발음은 사실 10년이 넘은 사운드 파일이었다. 오픈소스 연구원들에 따르면 이는 2010년 4월, 핀란드 군사 훈련 당시 녹음된 것으로, 영상을 만든 누군가가 인터넷에서 원본 파일을 차용한 듯 보였다. 실제 자세히 들어보면 영상 속에서는 희미하게 핀란드 병사들의 “우(Ooh)”하는 다소 신난 목소리도 몇 차례 들린다. 더욱이 언제 파일이 생성 또는 수정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메타데이터를 조사한 결과, 해당 동영상의 생성 날짜는 동영상이 게시되기 불과 10일 전인 2월 8일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가짜 선전 영상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이런 현상은 러시아의 기성세대들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이와 관련, 영국의 온라인 탐사 매체인 ‘벨링캣’의 이사인 크리스토 그로제브는 트위터를 통해 “(크렘린의) 이런 형편없는 전쟁 선전은 안타깝게도 러시아인들에게 효과가 있다. 러시아의 시골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들은 우크라이나가 진짜 폭격을 한다고 믿고 있었다”고 전했다.
하이브리드 전쟁 가운데는 가짜 폭탄 테러로 불안감을 조성하는 방법도 있다. 신고가 들어올 때마다 우크라이나 전역의 학교와 쇼핑몰에서는 시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고, 이에 일부 학교는 며칠 동안 원격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실제 우크라이나 경찰은 2022년이 시작되고 처음 3주 동안에만 전국에서 무려 3000건 이상의 가짜 폭탄 신고를 받고 출동해야 했다. 올해 들어 벌써 11번째 폭탄 신고가 있었던 지토미르의 시장인 세르히 수코밀린은 “이는 하이브리드 전쟁의 한 요소다. 혼란과 불안감을 조성하기 위해, 그리고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다”라고 비난했다.
한편에서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하이브리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진짜 이유가 우크라이나의 경제 기반을 약화시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지리적으로는 나토에 대항하는 완충지대를 구축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의 서방 진출에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는 의미다. 클라인은 “하이브리드 전쟁은 불확실성이라는 씨앗을 뿌린다. 이는 결국 우크라이나의 잠재적 투자자들을 겁에 질리게 한다”고 상기시켰다.
실제 지금까지 서방국가를 상대로 한 우크라이나의 교역은 성공적이었다. 예를 들어 독일과 우크라이나 간의 무역수지는 1년 만에 코로나19의 충격에서 회복돼 77억 유로(약 10조 원)를 기록했다.
또한 친유럽 성향의 ‘유로마이단 혁명’ 세대가 지금은 우크라이나 경제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도 푸틴의 심기를 건드렸다. ‘유로마이단’ 혁명은 2013년 11월,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가 유럽연합(EU)과의 통합을 무기한 연기하고 친러시아 정책을 펼치자 이에 반대해서 벌어진 시위였다.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고등학생 혹은 대학생이었던 젊은 남녀들이 지금은 우크라이나 경제의 주축이 된 상태다.
푸틴에게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는 의견도 있다. 지난 2년간 러시아는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해 에너지 수출이 감소했고, 경제는 불황에 시달렸으며, 효과적인 백신이나 치료법이 보이지 않아 고통 받았다. 하지만 불과 1년 새 상황은 역전됐다.
이제는 미국 경제가 둔화될 기미를 보이고 있고, 인플레이션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친환경 정책으로 키스톤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철회한 바이든 정부는 고가의 에너지를 다시 수입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점차 떨어지고 있다.
푸틴은 이 뜻밖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재건하려는 오래된 숙원을 달성하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지배하에 되돌려 놓기를 원하고 있다. 과연 역사는 그의 편을 들어줄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듯하다.
트럼프 띄우고 힐러리 비방…러시아 댓글 공장에서 벌어진 일
2018년 ‘뉴욕타임스’는 러시아의 악명 높은 ‘트롤(댓글부대) 공장’인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에 몸담았던 두 명의 전직 직원을 인터뷰해서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미 법무부는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가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여론을 조장했다고 주장하면서 열세 명의 소속 직원들과 관련 회사들을 기소했다.
기소 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가졌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알렉세이(가명)는 처음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에 채용됐을 때만 해도 높은 급여에 만족하면서 기뻐했다. 인터넷에 글을 쓰기만 해도 러시아 청년들이 받는 평균 연봉보다 훨씬 더 많은 주당 1400달러(약 168만 원)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맡은 임무는 미국인들을 내부적으로 분열시키는 시민단체를 지지하거나 혹은 직접 설립해서 미국의 선거 제도에 대한 믿음을 훼손시키는 것이었다. 가령 도널드 트럼프의 후보 지명에는 박수를 보내는 반면, 힐러리 클린턴의 후보 지명에 대해서는 비방하는 글을 올리는 식이었다.
알렉세이를 비롯한 25명의 신입사원들이 입사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인기 블로그 플랫폼인 라이브저널에 세 개의 계정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한 개는 글쓰기와 내용면에서 수준이 높아야 했고, 다른 두 개는 그저 그런 평범한 수준이어야 했다.
알렉세이는 낮이든 밤이든 12시간 교대로 일했으며, 이메일을 통해 수시로 할당되는 새로운 주제들에 맞춰 글을 작성했다. 예를 들어 주제들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버락 오바마 대통령, 혹은 둘을 함께 다뤄야 했으며, 이밖에 우크라이나 문제, 러시아 국방부의 영웅적 행동, 시리아 전쟁, 러시아 야당 인사,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미국의 역할 등이 있었다.
알렉세이는 러시아어 사용권 인터넷 사용자들을 상대로 한 글을 썼다. 한 주제에 대해 7~8개의 블로그에 글을 올렸던 그는 “영어권 댓글부대들은 떨어져서 일했지만 공동 흡연실에서 큰소리로 대화하는 내용을 들었을 때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듯했다”고 회상했다.
러시아와 관련된 게시물의 핵심 내용은 “푸틴 대통령 시절 러시아는 살기 좋았고, 오바마 대통령 시절 미국은 나빴다”는 것이었다. 또한 크림반도 병합은 러시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푸틴 대통령의 역사적 업적으로 묘사돼야 했다. 블로그에 올릴 ‘작문’을 마치고 나면 마법과도 같은 일이 시작됐다. 그가 만든 게시물은 회사가 만든 수많은 가짜 계정에 공유됐고, 그 즉시 엄청난 양의 가짜 조회수를 만들기 위해 컴퓨터들이 빠른 속도로 게시물을 열고 닫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에 대한 흥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알렉세이는 자신이 하는 일에 점차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닌 게 아니라 같은 주제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자신이 쓴 글의 많은 부분이 쓰레기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일은 마치 사람들을 좀비로 만드는 듯했다. ‘모든 게 좋다, 모든 게 좋다. 푸틴은 훌륭하다, 푸틴은 훌륭하다’라고 세뇌했다”라고 말하면서 “당시 나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고 도덕적인 면은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단순히 글쓰기가 좋아서 그 일을 했을 뿐이다. 세상을 바꾸려고 한 일이 아니었다”고 후회했다.
그가 일한 2년 동안 직원들은 1000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2015년 일을 그만둔 알렉세이는 “떠날 때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그건 나쁜 일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일부는 그 일에 중독된 듯 보였다. 이에 대해 알렉세이는 “그들은 정권의 치어리더가 되어 있었다”며 씁쓸해 했다.
지금은 가구 판매원으로 일하고 있는 세르게이(가명) 역시 이렇다 할 노력 없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 끌려서 댓글부대 일을 시작했다. 세르게이는 “당시 25세였던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말하면서 40여 명의 다른 사람들과 한 방에 앉아 ‘작가’들이 작성한 수많은 블로그 게시물들에 댓글을 다는 일을 맡았다. 하루에 최소 80개의 댓글을 썼고, 20개의 글을 공유했다.
세르게이는 “이들의 주된 목적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러시아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미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데 있었다”고 말했다. 더욱이 그가 받은 글들은 서로 다른 작가들이 썼는데도 불구하고 모두 비슷했다. 그래서 더욱 댓글을 지어내는 게 힘들었고, 점점 더 할당량을 채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그는 일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그만두고 말았다.
알렉세이는 “궁극적으로 누리꾼들은 비슷한 글들에 점점 지루해 하고 흥미를 덜 가지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감독관들은 댓글부대들에게 계속해서 기계적으로 글을 쓰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그나마 창의력이 필요했지만, 점차 그 창의적 부분은 사라지고 전부 로봇처럼 변해갔다”고 비난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