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법 적용 김 양 ‘최고 형량 징역 20년’ 논란…박 양 ‘공모 증거 부족’ 무기에서 13년으로 감형
넷플릭스 오리지널 K 드라마 ‘소년심판’ 1, 2회는 만 13세인 백성우(이연 분)가 만 8세인 초등학생을 집으로 유괴해 살인한 뒤 등산용 도끼로 사체를 훼손하고 유기한 사건을 다룬다. 흉악범 백성우는 촉법소년이라 소년원 2년형에 처할 수 있는 소년보호처분 10호가 최대 처분이다. 이렇게 촉법소년의 문제점을 지적하던 드라마는 심은석 판사(김혜수 분)가 공범인 한예은(황현정 분)을 찾아내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살인 및 사체훼손 등이 벌어진 장소는 당시 부모가 없던 백성우의 집이 맞지만 실제 살인을 저지르고 사체를 훼손한 진범은 한예은이라는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것. 한예은은 촉법소년이 아니지만 소년법 적용 대상인 미성년자인 터라 소년법 상 징역 20년이 최고 형량이다.
재판 과정에서 백성우는 상세 불명의 조현병, 상세 불명의 양극성 정동장애, 불안 신경증 등의 정신질환을 호소했고 한예은은 우울증성 행동장애, 신경무력증, 지속성 망상장애 등의 정신질환을 주장했다. 법정에서 한예은 측의 전략은 ‘계획범죄가 아닌 심신미약에 따른 우발적 범죄’라는 점을 부각하는 것이고, 백성우 측의 전략은 ‘살인 공조가 아닌 살인 방조’임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1심 재판부는 이를 모두 인정하지 않고 법이 허용하는 선에서 가장 높은 형량을 선고했다.
드라마 ‘소년심판’이 ‘연화 초등생 살인사건’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문제의식은 우선 ‘촉법소년’이다. 여기에 더해 법정에서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피고인들의 행태, 그리고 요즘 10대 소년범의 민낯이다. 1회에 등장하는 강원중 부장판사(이성민 분)가 “이게 오늘날 소년 범죄의 현실이다”라는 대사가 이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연화 초등생 살인사건’은 2017년 3월 29일 인천 연수구 동춘동에서 발생한 소위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우선 피해자가 초등학교 2학년으로 만 8세라는 점과, 가해자가 휴대폰을 빌려 달라는 피해자에게 “배터리가 없으니 집 전화를 쓰라”며 빈 집으로 데려가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뒤 유기한 정황은 드라마 ‘소년심판’과 동일하다. 두 공범이 “잡아왔다”, “CC(폐쇄회로)TV 확인했어?” 등의 메시지를 주고받은 부분과 피고인이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고 주장한 부분도 같다.
다만 2017년 한국 사회가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으로 논란을 빚은 대목은 촉법소년이 아닌 소년법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생인 피해자를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가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 및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김 아무개 양이 소년법 적용 대상인 만 17세로 최고 징역 20년까지만 선고할 수 있다고 알려지면서 국민들이 분노했었다.
공범 박 아무개 양은 드라마와 달리 실제 살인과 사체훼손 및 유기 현장에는 함께 있지 않았다. 다만 함께 살인 계획을 공모한 혐의와 김 양에게 피해자 시신의 일부를 건네받아 유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결국 2017년 9월 1심 재판부인 인천지법 형사15부(재판장 허준서 부장판사)는 김 양에게 징역 20년, 박 양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실제 살인과 사체훼손, 사체유기를 한 것은 김 양이지만 소년법 적용 대상이라 징역 20년만 받은 것이다.
‘소년심판’에선 두 피고인인 백성우와 한예은의 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내진 않았지만 연상연하 연인 관계 정도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두 피고인인 김 양과 박 양의 관계도 연인 관계로 알려졌는데 사실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애초 김 양의 단독 범행으로 수사를 진행했던 인천 연수경찰서는 사건 발생 12일 뒤인 4월 10일 박 양을 범행방조 및 사체유기 혐의로 체포한다. 사건 당일 김 양이 트위터와 카카오톡 등으로 박 양과 자주 대화를 나눴다는 점이 드러났고 메시지 대화 내용에 “잡아왔다” “지금 목에 전선 감아놨어” “살아있어?” “CCTV 확인했어?” “손가락 예뻐?” 등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 결과 김 양은 살인 직후인 3월 29일 오후 4시 9분쯤 자신의 아파트에서 나와 오후 4시 30분쯤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이동해 오후 5시 44분께 박 양을 만나 절단한 손가락과 신체 일부를 담은 종이봉투를 ‘선물’이라며 건넸다. 김 양과 박 양은 이날 8시 30분까지 종이봉투를 든 채 신촌, 홍대 등지들 돌아다니며 식사를 하는 등 태연한 행동을 이어갔다. 박 양은 김 양과 헤어진 뒤 종이봉투를 그대로 든 채 귀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과정에서 김 양과 박 양도 연인 관계로 파악됐지만 일반적인 연인과는 전혀 달랐다. 이들은 2017년 1월 말경 트위터의 ‘캐릭터 커뮤니티’에서 처음 만난 사이다. 캐릭터 커뮤니티는 각자 캐릭터를 만들어 커뮤니티가 공통적으로 적용하는 시나리오 배경에 맞춰 역할극을 하는 곳으로 이들은 적대 세력끼리 서로 살해하면서 지역을 점령하는 시나리오의 ‘마피아 커뮤니티’에서 만났다. 역할극을 통해 가까워진 김 양과 박 양은 서로가 서로의 ‘애인’인 것처럼 행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양과 박 양이 연인 관계지만 이는 ‘캐릭터 커뮤니티’ 내 캐릭터들이 연인 관계였건 것이다. 다만 캐릭터의 ‘오너’인 사람들도 마치 그 연인 관계가 현실인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부분이 두 사람의 친분을 더욱 두텁게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마피아 커뮤니티’ 내에서 이들의 캐릭터는 연인보다는 상하 관계에 더 가까웠다. 박 양의 캐릭터는 마피아 조직의 중간 보스이고, 김 양의 캐릭터는 중간 보스의 오른팔 격인 조직원이었다. 박 양의 캐릭터가 상대 세력의 조직원을 죽이도록 지시하면 김 양의 캐릭터는 이를 따르는 방식으로 역할극이 진행됐던 셈이다.
실제 ‘마피아 커뮤니티’ 내 캐릭터 대화에서 김 양은 “내가 항상 하는 일은 상사를 따르고, 조직을 따르고, 때로는 누군가를 명령에 의해 죽이기도 하는 그런 것” “상사께서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저를 필요로 하신다면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등의 말을 했다. 여기서 상사가 바로 박 양의 캐릭터다.
상하관계이자 연인관계인 각자의 캐릭터에 동화된 김 양과 박 양은 단순한 친구 이상의 깊은 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이들은 커뮤니티 활동이 끝난 뒤에도 SNS(소셜미디어) 개인 계정을 통해 실제로 만나 친분을 쌓았다.
한편 1심에서 징역 20년과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김 양과 박 양은 2심에서 징역 20년과 징역 13년을 선고받았다. 김 양의 징역 20년은 그대로 유지된 반면 박 양은 “살인 범행을 공모했다고 볼 만한 정도의 구체성을 가진 대화가 이뤄졌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대폭 감형이 이뤄졌다. 2018년 9월에는 대법원이 2심 판결 내용을 그대로 확정했다.
드라마 ‘소년심판’과 실제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가장 큰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판사의 역할이다. ‘소년심판’에선 경찰과 검찰 수사 결과는 백성우 단독범행이었다. 이를 법원에서 뒤엎어 뒤늦게 검찰이 한예은을 유괴, 살인, 사체훼손, 사체유기 등으로 기소해 판결에 이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심은석 판사가 직접 한예은을 찾아가 임의동행을 요구한 뒤 도주하자 직접 추격해 영장도 없이 강제 연행하는 액션 활극(?)까지 벌인다.
그렇지만 실제 사건인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에선 경찰 수사 과정에서 공범 박 양이 체포된다. 애초 김 양 단독범행으로 수사하던 경찰이 김 양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 등을 통해 공범 여부를 파악해 사건 발생 12일 만에 박 양을 체포한 것. 어찌 보면 실제 사건과 드라마의 가장 큰 차이점이 이 대목인데 아무래도 법원을 중심으로 판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 터라 이런 설정이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판사가 직접 수사하는 모습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렇지만 소년부 판사는 소년범들의 사후 감독도 주요 업무로 보호관찰소 관찰관들과 집행 관련 조사를 하는 등 일반적인 판사하고는 다른 영역의 업무를 맡는다. 제작진이 이를 최대한 극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