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대산업개발 실적 악화 땐 악기·유통·레저 사업 동반 부진 전망…현산 “아직 유동성 충분”
#중국에 밀리는 악기 사업
HDC그룹은 2006년 ‘영창피아노’로 유명한 악기 제조사 HDC영창(옛 영창악기)을 563억 원에 인수했다. 당시 HDC그룹은 “악기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꾸준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중국과 인도 시장 진출을 통해 HDC영창의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한편 세계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지닌 악기 제조업체로 육성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HDC그룹의 기대와 달리 HDC영창은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2017년에야 9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흑자 경영은 오래가지 못했다. HDC영창은 2020년 12억 원의 영업손실을 거두고, 2021년 1~3분기에도 약 1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년 동안 HDC영창의 매출이 절반 이상 줄어들며 사업 규모 자체도 쪼그라들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HDC영창의 매출은 2000년 1819억 원에서 2020년 864억 원으로 하락했다.
악기업계에서는 HDC영창이 중국 악기 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린 것으로 보고 있다. 악기업계 관계자는 “영창의 주요 제품인 피아노의 경우 고급 시장은 미국, 유럽, 일본산 제품이 독점하고 있다”며 “저가 시장은 중국산 피아노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실제 HDC영창의 수출액은 2000년 786억 원에서 2020년 76억 원으로 크게 줄었다.
HDC영창의 실적 부진은 HDC그룹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산 등 HDC그룹 계열사는 2012년과 2015년 유상증자를 통해 각각 76억 원과 365억 원을 HDC영창에 지원했다. 현산은 2015년 HDC영창 인천공장을 236억 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HDC영창은 수차례에 걸쳐 운영자금 수십억 원을 계열사로부터 차입해왔다. 2021년 9월 말 기준 HDC영창이 HDC그룹 계열사로부터 조달한 차입금은 75억 원이다. HDC영창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32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액수다.
HDC영창은 2016년 건설 관련 사업에 진출했다. HDC영창의 2021년 1~3분기 이와 관련된 매출은 190억 원으로 전체 매출(663억 원)의 30%가량을 차지한다. 하지만 대부분 HDC그룹 계열사의 일감이다. 실질적으로는 계열사의 지원을 받는 셈이다. HDC영창은 2021년 1~3분기 HDC그룹 계열사로부터 163억 원의 매출을 거뒀다.
#만년 자본잠식 유통 사업
HDC그룹은 2004년 용산역에 복합 쇼핑몰 ‘아이파크몰’을 개장했다. 아이파크몰에는 백화점과 대형마트뿐 아니라 영화관, e스포츠 경기장 등 다양한 문화공간을 마련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2016년에는 호텔신라와의 합작사 신라아이파크면세점을 아이파크몰에 입점시키면서 면세점 사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아이파크몰 운영법인 HDC아이파크몰은 재무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HDC아이파크몰은 2005년 말 자본총액 마이너스(-) 198억 원을 기록한 후 아직까지도 자본잠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산은 2008년 HDC아이파크몰에 16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했지만 자본잠식 문제를 해결하기는 역부족이었다.
2010년대 들어 HDC아이파크몰이 흑자를 거두면서 재무구조도 개선되기 시작했다. HDC아이파크몰의 자본총액은 2010년 말 -660억 원에서 2019년 말 -323억 원까지 줄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HDC아이파크몰이 부채를 크게 늘렸다는 것이다. HDC아이파크몰의 부채총액은 2018년 말 6393억 원에서 2019년 말 9869억 원, 2020년 말 9436억 원으로 증가했다. HDC아이파크몰의 부채가 늘어나면서 이에 따른 이자 비용도 증가했다. 이 때문에 HDC아이파크몰은 2020년 218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고도 33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현산도 2020년 HDC아이파크몰에 운영자금 330억 원을 대여하는 등 지원에 나섰다. 이밖에도 현산은 2021년 9월 말 기준 HDC(주)와 연대해 1875억 원 규모의 자금보충 및 조건부채무인수 약정을 체결하고 있고, 현산 단독으로도 1325억 원의 자금보충 및 조건부채무인수 약정을 체결한 상태다. 자금보충 약정은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상환 능력이 감소할 경우 출자 등의 방식으로 상환 자금을 보충해주는 약정을 뜻한다.
최민수 NICE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될 경우 비대면·온라인 쇼핑 트렌드의 확대로 유통 및 임대부문의 매출 기반이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HDC아이파크몰의) 재무 부담이 과중한 상태임을 감안할 때 팬데믹의 완화 및 사업실적 회복 여부에 대해 지속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사업 확장 노리는 레저 사업
HDC그룹의 레저 계열사인 호텔HDC와 HDC리조트는 상황이 비교적 낫다. 호텔HDC와 HDC리조트는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2021년 1~3분기 각각 9억 원, 20억 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흑자 경영을 유지했다. 하지만 호텔HDC와 HDC리조트의 재무구조도 안정적이지는 않다. 2021년 9월 말 기준 호텔HDC의 부채비율은 364.27%, HDC리조트의 부채비율은 639.89%에 달한다.
HDC리조트는 사업 확장을 통해 실적 상승을 노리고 있다. HDC리조트는 2021년 11월 현산에 강원도 원주시 토지 3만 2172㎡(약 9732평)를 171억 원을 받고 매각했다. HDC리조트는 해당 토지를 개발해 인근 오크밸리와 시너지를 낼 계획이고, 현산도 개발 사업에 참여할 예정이다. 다만 구체적인 개발 계획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비건설 계열사 지원에 대해 현산 측은 보유 자산을 활용하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산 관계자는 “아직 HDC그룹의 유동성은 충분하다”며 “지주사의 보유 자산을 활용해 계열사를 지원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는 단계”라고 전했다.
HDC현대산업개발 소액주주 운동 ‘의미 있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
참여연대는 3월 29일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의 주주총회를 앞두고 소액주주의 힘을 모으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번 주주총회에서 현산에 △산업안전 및 건설품질 관리 전문 이사 선임 및 안전보건 이사회 설치 △일부 임원들에 대한 연임 반대 등을 요구할 예정이다.
참여연대는 “사외이사 중 경제·금융, 로봇·전기공학, 법률 등 전문가 외에 산업안전 및 건설품질 관리 전문가가 부재한 실정으로 사고의 주요 원인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며 “주주가치 측면에서도 이는 중대한 문제로 광주 참사 당일 2만 5750원이던 현산 주가는 지난 1월 말 기준 1만 4450원으로 43% 이상 폭락했다”고 전했다.
현산도 소액주주들의 의견을 일부 수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산은 지난 3월 3일 경제개혁연대가 네덜란드 연금 투자회사 APG로부터 위임 받은 정관 변경 관련 주주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가 제안한 주요 내용은 △지속가능경영, 안전 경영 등에 관한 회사 의무를 명문화하는 전문신설 △ESG에 관한 권고적 주주제안권 도입 △이사회 내 안전보건위원회 설치 및 안전보건 전문 사외이사 1명 이상 선임 △지속가능경영 공시 도입 등이다. 이에 현산은 정도경영을 실천한다는 내용의 전문을 신설했고, 안전보건 전문가 1명을 포함한 안전보건위원회도 구성하기로 했다.
하지만 참여연대가 주장하는 일부 이사들의 연임 반대는 어려울 전망이다. 현산은 이번 주주총회에서 유병규 현산 사장과 정익희 현산 CSO(최고안전책임자)를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하고 권인소 현산 사외이사는 연임시킬 계획이다. 권인소 사외이사는 로봇 전문가로 참여연대가 요구하는 안전 전문가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HDC(주)와 특수관계자가 현산 지분 43.00%를 갖고 있으므로 참여연대와 소액주주가 정몽규 회장 일가와의 표 대결에서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고 참여연대의 활동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산이 소액주주 등을 의식해 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하고, CSO를 선임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시민단체와 소액주주가 여론을 형성하면서 현산이 APG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등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졌다”며 “표 대결에서 이기기는 어려워도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작지 않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