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실력이면 수비 잘하는 선수 위주 선발…오직 금메달만 보고 갈 것”
2022년 다시 한 번 기회가 찾아왔다. 관중석을 열고 닫기를 반복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에는 관중들과 함께 리그를 개막할 전망이다. 또 오는 9월에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야구 강국의 자존심을 구긴 대표팀은 명예회복을 노린다. 흔들리는 대표팀을 이끌 새 선장으로 류중일 감독이 선임됐다. 대표팀 사령탑 선임 이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류중일 감독을 '일요신문'이 만나봤다.
지난 2월 대표팀 수장으로 선임된 류중일 감독은 "갑자기 바빠졌다"며 근황을 전했다.
"오늘(8일)도 KBO에서 기술위원회와 회의를 하고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유 있는 생활을 했는데 갑자기 달라졌다. 쉬는 동안에도 야구는 봤다. 그렇지만 시각이 달랐다. 야구팬의 입장에서 즐기는 마음으로(웃음). 이제는 또 달라졌다. 어쩌면 '즐거운 스트레스'가 아닐까."
류 감독은 지난 2월 23일 대표팀을 이끌 새 감독으로 선임됐다. 흔들리는 대표팀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2020시즌을 끝으로 LG 트윈스와 계약기간을 마치며 현장을 떠났던 류 감독은 약 1년 만에 대표팀 감독 유니폼을 입게 됐다.
류 감독은 당초 대표팀 감독에 지원할 생각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주변 분들의 권유가 많았다. '당신이 적임자'라며 다들 떠밀더라(웃음)"라며 "성화에 못 이겨 지원서를 냈다. 다른 훌륭한 지도자들도 많이 지원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협회에서 좋게 봐주셔서 발탁됐다.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 보여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신호탄으로 대표팀은 전성기를 보냈다.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프리미어 12, 아시안게임 등 다수의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왔고 이는 KBO리그의 전성기로 연결됐다. 하지만 이따금씩 대표팀에도 그림자가 드리웠다. 2017년 WBC에서는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는가 하면 전임제 감독이 실시된 이후 사령탑에 오른 선동열·김경문 감독은 모두 불명예 퇴진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류중일 감독도 어려운 상황임을 인지하고 있다. 그는 "다들 '야구가 위기'라고 말한다. 작년 올림픽에서 실패했고 코로나19 탓에 KBO리그도 하향세를 걷고 있다"며 "그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대표팀 감독직은 어려운 자리다. 그걸 모르고 대표팀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모습으로 야구 위상을 조금이나마 높이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아시안게임에서 2010년 광저우 대회부터 3대회 연속(광저우-인천-자카르타) 금메달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환경이 달라졌다. 선수 선발 등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자 선발 규정에 변화가 생겼다. 24세 이하 또는 KBO리그 3년 차 이하 선수만 선발하고 전 연령에서 선발 가능한 와일드카드 3명을 포함시킨다. 연령별 대표팀이 나서는 축구 종목과 유사해진 것이다.
류 감독은 "감독으로선 아쉬운 상황"이라며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특히 팀당 최대 3명, 최소 1명을 선발해야 하는 부분이 그렇다. 아마추어 선수도 포함해야 한다. 이해는 한다. 특히 아시안게임은 국가대표 선발이라는 것이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말했다.
선임 직후인 현재 그가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도 선수단 구성이다. 그는 선수 선발과 관련해 "어떻게 해도 욕을 얻어먹게 돼 있다. 나는 아시안게임을 한 번 해봤으니 잘 안다(웃음)"면서 "각오는 돼 있다. 이번 대회는 리그 중단 없이 진행하기에 더 조심스럽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인터뷰 당일 있었던 기술위원회 회의에 대해 류 감독은 "큰 틀에서 선수단 풀을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기술위원들과 리그에서 활약하는 24세 이하 선수 대부분을 살펴봤다. 단 한 시즌 현장을 떠나 있었는데 생소한 선수들도 많더라. 이제부터 얼굴도 익히고 실력도 확인해야 한다"며 "앞으로 바빠질 것 같다. 대구에서 지내고 있는데 대구 경기는 물론 수도권으로도 자주 올라올 것 같다. 수도권에 팀들이 몰려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아시안게임까지 약 6개월이 남았다. 아직 후보군을 좁히기에는 이른 상황이다. 류 감독은 "현재로선 원론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성적 위주로, 컨디션 좋은 선수 뽑아야 한다. 선수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은 부상이다. 잘해놓고도 대회를 앞두고 부상은 없어야 한다. 당연히 코로나19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는 대회를 준비하는 대표팀에 변수가 될 수 있다. 앞서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은 팀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연속적으로 발생하며 농구 월드컵 예선 참가를 포기해야 했다.
새롭게 대표팀을 맡았지만 기존 류 감독의 색깔은 유지될 전망이다. 그는 "내가 어떤 스타일인지 팬들도 다 알고 계실 것이다(옷음). 어떤 감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볼 빠른 투수, 발 빠르고 수비 잘하는 야수를 좋아한다"며 "비슷한 실력의 선수라면 수비 잘하는 선수를 뽑을 것이다. 같은 투수라도 수비가 약한 상황에서는 잘 던지기 어렵다. 수비가 탄탄하면 투수의 볼이 달라질 수 있다. 이 같은 기조는 유지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연령과 관계없는 와일드카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기도 했다. 류 감독은 앞서 투수와 포수 쪽에 와일드카드 선발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기술위원하고도 이야기를 심도 있게 나눠봐야 하겠지만 포수 쪽은 24세 이하 선수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양의지나 강민호 같은 그간 대표팀에서 활약해온 카드를 써야 한다. 선발 투수 부분은 김광현이 SSG 랜더스에 돌아왔다는 것이 힘이 된다. KIA 타이거즈로 복귀한 양현종도 마찬가지다. 둘은 리그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다. 누가 감독이 되더라도 당연히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는 카드다. 베테랑 선수들이 어린 선수들과 융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팀마다 선후배 관계가 있고 다른 팀이라고 하더라도 리그에서 자주 마주한다. 와일드카드 선발 과정에서 연령대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적지 않은 장애물이 존재하지만 류중일 감독은 금메달만 바라보고 있다. 그는 "다른 대회는 몰라도 아시안게임은 금메달을 목표로 해야 한다. 기대하시는 팬분들을 위해, 열심히 하는 선수들을 위해, 흔들리는 한국 야구를 위해서도 금메달이 필수"라며 각오를 다졌다.
누구보다 단기전 경험이 많다는 점도 그에게 자신감을 더하는 요소다. 그는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 한국시리즈에 5년 연속 나선 경험이 있다. LG 트윈스에서도 가을 야구를 경험했으며 삼성 감독과 대표팀 감독을 겸임하기도 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단기전 비결은 무엇일까.
"많이 해봤지만 특별한 비결이랄 것이 있겠나. 간단하다. 선취점이 중요하고 역전을 허용해선 안된다. 24세 이하 선수들을 살펴보니 좋은 중간 투수들이 많다. 중간이 많다는 것은 단기전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어쨌든 내가 아시안게임을 치러봤다는 것은 장점이 될 것이다. 단기전이기에 컨디션이 좋은 선수 위주로 선발해야 한다."
8년 만에 다시 잡은 대표팀 지휘봉, 그는 아시안게임 이후도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현재로선 오직 아시안게임 금메달만 바라보고 있다. 물론 대회 이후로도 대표팀 감독을 계속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들과 국제대회에 나서는 것은 지도자로서 영광이고 좋은 경험이다. 하지만 그 전에 눈앞에 닥친 대회가 중요하다. 금메달 못 따면 계속 시켜주지도 않을 뿐더러 나 스스로도 집어 던지고 나올 것이다"라며 웃었다.
어린 선수들과 함께하게 된 만큼 류 감독은 남다른 사명감도 밝혔다.
"일단 (감독직을) 맡았으니까 욕 먹을 각오로 뛰어들었다.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 마음을 더 단단히 먹게 한다. 어린 선수들과 함께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다. 국제 경험으로 그 선수들이 한층 더 성숙하면 KBO리그도 한 단계 올라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야구가 조금이나마 다시 올라 설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