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사면론·김부겸 유임론 등에 핵관 그림자…지방선거 공천 놓고 이준석 대표와 갈등 가능성 등 권력다툼 조짐도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 기간 대부분 이재명 후보보다 지지율이 높았다. 하지만 위기는 있었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올해 1월 중순까지 이재명 후보에게 골든크로스를 허용하면서였다. 오마이뉴스 의뢰로 리얼미터가 1월 10일 발표(1월 2~7일 조사, 표본오차 95%에 신뢰수준±1.8%포인트)한 조사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34.1%로 이 후보(40.1%)보다 6.0%포인트 낮았다. 윤 당선인이 오차범위 밖에서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원인은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이었다. 이 대표는 ‘윤핵관’을 비판하며 당무를 보이콧하고 잠적했다. 그러자 윤 당선인의 2030 남성 지지율은 급락했고, 이는 이 후보의 역전으로 이어졌다. 당시 이 대표에 대한 비판도 많았지만, 윤 당선인 일부 측근들의 전횡과 독단적인 캠프 운영도 구설에 휩싸였다. 윤 당선인은 매머드급 선대위를 선대본부로 축소 개편하면서 ‘핵관’으로 지목된 인사들을 정리했고, 삼고초려해 모셔온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결별하는 강수를 둬야만 했다.
국민의힘 내홍 진원지로 꼽히며 2선으로 물러나 있던 윤핵관들은 선거 승리 후 다시 전면에 나섰다. 대표적인 ‘핵관’ 장제원 의원은 윤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장 의원은 ‘윤석열의 복심’으로 불리며 차기 정부에서 요직 발탁이 유력하다. ‘핵관’의 맏형격인 권성동 의원은 주요 현안마다 목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장제원 권성동과 함께 ‘핵관 3인방’으로 꼽혔던 윤한홍 의원은 윤 당선인이 가장 의지를 보이고 있는 청와대 집무실 이전을 총괄한다.
이들 외에도 정가, 서초동, 학계 등 대략 10여 명이 윤 당선인 핵심 관계자로 지목받는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민주당 의원은 “정치 경력이 전무한 윤 당선인으로선 지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평생을 검찰에만 몸담았는데 인재풀이 넓을 수 있겠느냐”면서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임기 동안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과 수시로 만나야 할 것이다. 특정인에게만 의존할 경우 이는 윤 당선인 불행이 아니라, 국가의 불행”이라고 지적했다.
정가에선 이미 핵관에 대한 비판이 고개를 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민주당이 아니라 집권당이 된 국민의힘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선 기간 핵관으로 인한 갈등은 윤 당선인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이었다. 이는 정부 출범을 앞두고 다시 핵관 논란이 불거질 경우 윤 당선인에게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논란의 핵심은 윤 후보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핵관 몇몇이 공식 라인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관된 메시지가 나오지 않아 혼선을 주고 있다는 비판도 뒤를 잇는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소위 핵관이라 불리는 인사들이 발언을 한 후 당이나 인수위에서 해명 또는 뒤처리를 하는 상황이 빈번해졌다. 개인적인 생각이 마치 윤 당선인 뜻으로 비쳐질 수 있다. 집권당 실세로 통하는 만큼 신중한 언행을 해야 할 것”이라면서 “몇몇이 밀실에서 국정을 논의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신구 권력 충돌로까지 번지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MB) 사면 문제가 핵관 논란의 트리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윤 당선인 일부 측근들이 이를 거론하면서 ‘뜨거운 감자’가 됐지만 정작 당에선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높다. 앞서의 국민의힘 의원은 “당에선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사안이다. 통합 차원에서 MB 사면을 요구한다는 논리를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납득할지 모르겠다.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괜한 분란만 일으켰다”고 했다.
김부겸 국무총리 유임론도 뒷말이 무성하다. 핵관으로 꼽히는 한 인사의 아이디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여기엔 안철수 인수위원장 향후 거취에 대한 셈법이 깔려 있다. 안철수 위원장에게 총리가 아닌, 경기지사 출마 등 다른 선택지에 대한 시그널을 보내기 위해 현실성이 떨어지는 김 총리 유임론을 외부로 흘렸다는 것이다. 김오수 검찰총장 사퇴 가능성 역시 ‘윤핵관발’로 알려져 있다.
일련의 사례들에 대해 민주당은 불쾌감이 역력하다. 김오수 사퇴 얘기가 나오자 ‘정치보복신호탄’이라며 발끈했고, 윤 당선인과 문 대통령 회동이 무산된 데에 대해선 “점령군식으로 밀고 들어온다” “예의가 없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김 총리 유임에 대해선 실소를 금치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허니문이고 뭐고 과반 의석 실력행사를 제대로 보여주자는 의원들이 많아졌다”고 귀띔했다.
민주당뿐 아니라 국민의힘에서도 우려가 높다. 또 다른 국민의힘 의원은 “거대 야당 도움이 절실한데, 도대체 왜 이러느냐. 압도적인 정권교체 여론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간신히 이긴 것을 떠올려야 한다”면서 “여론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대로 가다간 대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에서 진다”고 했다. 그는 “언론 등을 활용해 정제되지 않은 입장을 흘리고 간을 보는 식의, 구태 정치를 하는 이들이 문제”라면서 ‘핵관’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정치권에선 핵관을 둘러싼 잡음이 윤석열 정부 권력다툼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1차 분수령은 주요 자리를 놓고 벌어질 힘겨루기다. 핵관들이 이를 ‘나눠 먹기식’으로 독점할 경우 국민의힘 내부 반발은 불가피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만사형통’ 이상득 전 의원 라인이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 인사를 좌지우지하다 역풍을 맞은 게 대표적 사례다. 문재인 정부 초반에도 운동권 인사들과 친문들이 대거 요직에 기용되자 친문-비문 계파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정권 초 인사에서 소외됐던 정파들의 불만은 대통령 임기 내내 리스크로 작용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핵관들과 이준석 대표 간 마찰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방선거 공천을 놓고서다. 벌써부터 윤 당선인 주변에선 주요 지역 후보자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 여의도 정치권엔 서울, 경기, 인천, 부산 등의 출마 예상자 명단이 돌았는데 이 역시 한 윤핵관의 ‘작품’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가 지방선거를 본인 주도 하에 치르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는 만큼, 대립 발생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지점이다.
윤석열 당선인 측 한 관계자는 “지방선거는 윤석열 정부 명운을 쥔 중요한 선거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당이 알아서 할 테니 모른 체해라’는 말이 안 되는 것 아니냐. 핵관으로 알려진 정치인들 대부분 당의 중진들이다. 의견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당에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선거를 준비하면 되는 일이다. ‘윤심’을 빙자해 핵관들이 선거에 관여하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