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적으로 내부통제 기준 마련 CEO 책임 인정…금감원 중징계 효력도 심판대
지난해 8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1심 법원의 판단이다. 사모펀드 불완전판매와 관련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에 따른 금융감독원의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제재가 합당했는지에 대한 재판 결과다.
승부만 따지면 손 회장이 이겼지만, 내용까지 따지면 금감원은 지지 않았다. 재판의 쟁점이 과연 ‘마련’ 의무 위반으로 CEO를 제재할 수 있는지 여부였는데, 법원은 가능하다고 봤다. 내부통제기준 운영자의 직속 감독자가 아니므로 징계 대상이 아니라는 손 회장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마련’ 위반 정도에 비해 금감원의 문책성 경고 제재는 너무 무거워 취소해야 한다는 판결이다.
‘제대로 못한 것은, 안 한 것이니 잘못이 맞다.’
지난 3월 14일 나온 하나금융지주 회장 후보자 함영주 부회장에 대한 1심 법원의 판단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날 함 부회장이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로 중징계를 받은 데 불복해 금융당국을 상대로 낸 업무정지 등 처분 취소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손태승 회장과 같은 쟁점을 다투는 재판이다. 승부를 따지면 함 부회장이 졌고, 금감원이 이겼다. 내부통제 ‘마련’ 의무 위반의 정도가 손 회장 사건보다 더 크다고 재판부는 봤다.
특히 재판부는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면서 “일부 처분 사유가 인정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불완전판매로 인한 손실규모가 막대하고, 원고들이 투자자 보호의무를 도외시하고 기업이윤만을 추구하는 모습은 은행의 공공성과 안전성에 대한 신뢰와 신의를 저버린 것이므로, 임원진은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DLF 불완전판매와 이후 이어진 라임∙옵티머스 사태는 엄청난 사회적 파장과 함께 금융회사 지배구조까지 뒤흔들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손태승 회장과 함영주 부회장에 대한 1심 법원의 판결은 잇따른 사건들에 최종 조치를 향한 첫 단추다. 결과에 따라 지배구조는 물론 금융권의 경영 행태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24조1항은 금융회사에 법령을 준수하고, 경영을 건전하게 하며, 주주 및 이해관계자 등을 보호하기 위해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해야 할 기준 및 절차(‘내부통제 기준’이라 한다)를 ‘마련’하도록 했다. 시행령에서는 CEO를 위원장으로 하는 내부통제위원회를 두고, 내부통제가 ‘실효성’ 있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준 및 절차는 일정 요건들을 충족하도록 했다. 동법 34조와 35조에서는 24조를 위반하면 그 정도에 따라 금융당국이 금융회사와 임직원에 대한 제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으면 금융회사 임원이 될 수 없다.
일각에서는 법원이 같은 사안에 상반된 판단을 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판결문을 자세히 보면 두 재판부는 내부통제기준 ‘마련’은 CEO의 의무이고, 위반하면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같은 일관된 판단을 했다. 차이는 내부통제 기준 마련의무의 기준에 대한 해석이다.
손태승 회장 재판부는 ‘마련’ 의무만 CEO의 책임으로 보고, 제재 대상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마련’ 의무 위반에 대한 잘못만 인정하고, ‘준수’ 의무 위반은 제재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이와 비교해 함영주 부회장 재판부는 ‘마련’ 의무의 범위를 넓게 해석했다. 제대로 마련하지 않아 실효성을 잃은 것도 ‘마련’ 의무 위반으로 보고 중징계가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2심에서도 내부통제 기준 마련이 CEO의 책임인 점은 바뀌기 어려워 보인다. 쟁점은 마련 의무의 범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손태승 회장 판결처럼 좁게 해석한다면 손 회장과 함영주 부회장 모두 중징계 대신 경징계로 대체하는 수순을 밟을 수 있다. 반대로 함 부회장 1심처럼 넓게 해석된다면 두 사람 모두 중징계가 확정되며 연임이 좌절되거나 현직에서 물러나야 할 수 있다. 1심처럼 2심에서도 재판부별 판단이 다를 수 있다. 같은 DLF 불완전판매 건이지만,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상황이 달라서다.
손태승 회장은 2020년 3월 금감원에서 제재를 받았고, 이에 불복해 소송을 내면서 그 달 열린 주총에서 연임에 성공한다. 함영주 부회장의 판결은 3월 말 회장 선임 주총을 앞두고 내려졌지만 항소를 하면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후보 자격에는 문제가 없다. 김정태 회장의 연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사회가 추천한 단일 후보인 만큼 자진사퇴 시 경영 공백이 우려된다는 명분도 있다. 대법원 판결까지 거치려면 2~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주총만 통과하면 함 후보는 상당기간 회사를 이끌 수 있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박정림 KB증권 공동대표 등 현직 금융회사 CEO들의 제재도 달라질 수 있다. 법원의 최종 판단 전에 금융당국이 제재를 확정한다고 해도, 이들 역시 승복하지 않고 소송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 금감원의 CEO 중징계는 상당부분 힘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제재에 맞서 소송을 하면 수년간 임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는 선례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번 하나금융 주총에서 함 후보자가 낙마한다면 무죄추정 원칙에도 불구하고 직무상 잘못으로 금융당국 제재로 재판 중이라면 임원 후보가 될 수 없다는 관례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함영주 부회장의 회장 후보 안건에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는 반대할 것을 조언했다. 하나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율은 70%가 넘는다. 지분율 9.94%로 단일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판단도 중요하다. 함 부회장 안건 외에 퇴임하는 김정태 회장에 성과급과 퇴직금 외에 50억 원의 특별공로금을 별도로 지급하는 안건에도 주주들의 표심이 어떻게 갈릴지 주목된다.
최근 미국에서는 주주에 의한 CEO 보상 통제가 ‘뜨거운 감자’다. 전임자인 김승유 전 회장도 10년 전 같은 액수의 특별공로금을 받았지만 논란이 일자 사회환원을 약속했었다. 김 회장은 아직 특별공로금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