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 확실하지만 서비스는 ‘글쎄요’
▲ 상조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아예 상조업체를 인수해 상조시장에 진출하는 보험사도 있다. |
경기 김포시에 사는 최 아무개 씨(42)는 지난 추석 친지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상조보험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최 씨는 이미 5년 전 한 상조회사에 가입한 상태다. 당시 부산지역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하는 단계라고는 하지만 상조회사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때였다. 최 씨가 상조회사에 가입하게 된 까닭은 회사 동료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탓이다.
사실 최 씨는 상조회사에 가입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마치 부모에게 큰 불효라도 저지르는 것 같았다. 아직 이렇다 할 지병도 없는 부모가 돌아가실 일을 대비한다는 것도 께름칙했거니와 설사 돌아가신다 해도 뒷일을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것도 마음 한 구석에 무척 찜찜한 일이었다. 하지만 최 씨는 동료의 간곡한 부탁을 뿌리칠 수 없었다. 한 달 2만 원이라는 액수가 그리 큰 부담이 되지도 않았다.
최 씨가 가입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상조가 유행처럼 번졌다. 그러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횡령, 계약해지 거부 등 상조회사들의 문제점이 잇달아 터지면서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됐다.
최 씨도 상조회사와 갈등이 생겨 지금까지 10개월 정도 납입하지 않고 있다. 딱 한 번, 그것도 딱 하루 입금이 지연돼 상조회사에 전화를 걸어보니 고객이 직접 밀린 미납금을 완납한 후 다시 자동이체를 신청해야 한다는 답변을 들은 이후 돈을 내지 않고 있다. 그러던 차에 친지들로부터 상조보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신뢰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 대형 보험사에서 상조업을 한다는 사실에 최 씨는 일단 믿음이 갔다. 납입금을 떼인다거나 계약 해지에 따른 불이익을 받을 염려가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나서 최 씨는 기존 상조회사와 맺은 계약을 해지하고 보험사·은행권의 상조 관련 상품을 알아보리라 다짐했다. 다행스럽게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상조 해약환급금 산정기준 고시’를 제정해 지난 1일부터 시행했다. 해약해도 납입금의 85%를 돌려받을 수 있다.
최 씨가 들은 것처럼 최근 보험사나 은행 등 금융권에서 상조 관련 상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개념과 특징에 조금 차이가 있다. 먼저 상조 관련 상품에 힘을 쏟고 있는 곳은 손해보험사(손보사)들이다. 생명보험사(생보사)도 관련 상품을 출시하고는 있지만 손보사들의 그것과 성격과 내용이 모두 다르다.
상조와 관련한 생보사들의 상품으로는 대한생명의 ‘가족사랑준비보험’, 교보생명의 ‘교보행복한준비보험’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 생보사의 2, 3위 자리를 두고 각축전을 벌이는 두 생보사의 상품은 그러나 엄밀히 말해 상조보험이라기보다 ‘종신보험’의 성격이 짙다. 장례비용을 준비할 수 있도록 사망보험금을 지급할 뿐, 보험금을 꼭 장례비용으로 쓰라는 법은 없다. 보험금을 장례비용으로 쓰든 말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객의 선택이다.
교보생명 측은 “비록 장례준비보험으로 돼 있기는 하지만 상품 자체는 종신보험으로 보면 맞다”며 “시중에 알려진 것처럼 상조보험이라고 분류하기는 다소 무리”라고 말했다. 종신보험과 다른 점은 대부분 1억 원 이상인 종신보험의 사망보험금과 달리 ‘행복한준비보험’은 보장금액을 낮춘 대신 가입 연령을 높였다.
▲ 최근 상조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보험사에서도 상조보험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생명보험사보다는 손해보험사 쪽에서 상조업체와 제휴를 통해 상조 서비스 진출에 활발한 편이다. 사진은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상조 보험 상품들. |
현물 지급을 위해 한화손보는 한화 직원들을 대상으로 해온 상조업체와 제휴하고 있다. 한화손보 측은 “장기적으로 봐서 고령화 사회로 갈 것이고 핵가족인 탓에 상조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돼 상품을 기획했다”며 “현재 출시 초기보다 못해 한 달에 800~900건 판매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린손해보험은 더 적극적이다. 이 회사는 상조업체와 제휴하는 데 그친 다른 손보사들과 달리 지난 7월 상조업체 중 선수금 규모에서 9위(공정거래위원회 2011년 5월 기준)인 우리상조개발을 인수해 상조시장에 직접 진출했다. 그린손보는 우리상조개발의 사명을 ‘그린우리상조’로 바꾸었다.
그린손보 측은 “현재 그린우리상조와 제휴하는 상조보험 상품을 개발하는 단계”라며 “이르면 오는 10월 상품을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단, 기존 우리상조개발에 가입한 고객들은 그린손보와 관계없이 그린우리상조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최근 출시된 LIG손해보험의 ‘가족안심상조보험’도 눈에 띈다. 자산총액 10위에 해당하는 상조업체인 ‘좋은상조’와 제휴한 이 상품은 일을 당했을 때 장례도우미, 지도사, 차량, 용품 등을 직접 제공한다. 일부에서는 ‘보험금이 아닌 현물형 상조보험으로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확인 결과 이미 한화손보의 현물지급형 상품이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고 LIG손보의 ‘가족안심상조보험’이 무조건 현물지급형인 것도 아니다. 보험금으로 수령할 수도 있는 선택형이다.
LIG손보 측은 “기본적으로 현물형 상품으로 출시된 것이기는 하지만 보험금으로 받을 수도 있다”며 “고객의 선택에 따른다”고 밝혔다. 또 “생각보다 아직 큰 호응을 얻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3~4개월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왜 보험사들이 상조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상조회사들의 신뢰성이 크게 훼손됐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전에도 보험사들의 상조 관련 상품은 있었지만 최근처럼 적극적이지는 않았다”며 “아마 상조회사들이 크고 작은 말썽의 진원지로 지목되면서 신뢰도 높은 보험사들이 기회라고 판단한 듯하다”고 말했다. 즉 앞으로 점점 더 커질 상조시장을 보험사들이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은 까닭이라는 얘기다.
업계에 따르면 상조시장은 현재 7조~8조 원 규모로 파악되고 있다. 게다가 수년 내에 1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농협, 대명그룹, 삼성그룹 계열인 에스원 등 대기업들이 상조시장에 입맛을 다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 교직원공제회, 재향군인회 등 자본력이 탄탄한 집단이 상조시장에 진출하기도 했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상조는 활동이 부진하고 에스원은 상조사업의 뜻을 접은 상태다. 에스원의 경우 ‘그런 것까지 해서 돈을 벌려 하느냐’는 이건희 회장의 질타가 있어 상조사업을 포기했다는 후문이다. 농협은 ‘농협상조’의 설립 승인을 신청해놓은 상태로 알려져 있으며 대명그룹은 지난해 말 ‘대명라이프웨이’라는 상조법인을 설립했다. 교직원공제회(더케이라이프)와 재향군인회도 상조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대기업과 공제회들의 움직임만으로도 상조시장이 얼마나 크게 성장할지 짐작할 만하다. 생명·질병과 관련된 시장에 보험사들이 가만있을 리 만무하다. 계약금액을 완납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을 당할 때 상조업체의 경우 미납분을 전부 지불해야 하지만 보험사들의 상조 상품의 경우 계약 기간이나 금액과 상관없이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보험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험사들의 상조 관련 상품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계약 조건과 형태, 제휴 상조업체 등을 꼼꼼히 체크하지 않고 가입한다면 자칫 큰일을 당했을 때 상조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할 수 있다. 전적으로 상조서비스만 원하는 사람이라면 탄탄한 상조업체에 가입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보험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보험사들의 상조상품이 아직 완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며 “이것이 보험사들의 상조상품이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조언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명절을 지내는 등 시기적으로 이슈가 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